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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현 Dec 31. 2021

2021년 마지막 하루를 지내며

뇌종양 7년 차, 폐암 2년 차 암환우가 말하는 시간의 의미

오국장 : "부장님 00 프로젝트 어떻게 진행 중이에요?"

A 부장 : "국장님, 말도 마세요. 저 그거 때문에 암 걸릴 뻔했어요"

오국장 : "ㅎㅎ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한테 암 걸릴 뻔했다는 말하시면 안돼요~~"

A 부장 : "왜요?"

오국장 : "저 암 두 번 걸렸거든요. 뇌종양, 폐암"
A 부장 : "예? 진짜요?"

그렇다. 내 인생 2번의 종양 제거 수술을 했다.
2014년 8월 25일 뇌종양 3기 - 9시간 수술
2019년 12월 19일 폐암 1기 - 3시간 수술


뇌종양 이전의 삶은 여느 직장인처럼,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다.
일잘러 속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저기에서 밀려오는 업무들을 묵묵히 쳐내는 방법뿐이었다. 그 속에 불안함이 있었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거다. 내색을 하지 않거나 엄두를 못 냈을 뿐.


뇌종양 수술 당시, 병원에서 예상한 내 수명은 길어야 2년 6개월.
당시엔 몰랐고, 4년 지난 후에 아내 통해서 알게 됐다.

만약 수술 직후에 남은 내 수명을 알았다면?
만약 당신이 시한부 인생이라면 어떻게 살겠는가?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겠는가?




'내 지식/경험들을 누군가에게 공유하고, 그 누군가의 성장에 작은 단초가 될 수 있다면 내 삶은 의미 있다'

'지난 3개월 동안 안 했던 일을 하나 해보자'

'내 작은 행동이, 나중에 어디서 어떻게 연결될지 모르니까, 한번 해보자'

'설령 잘 안되더라고 괜찮아'

뇌종양 이후 연결 가치를 믿고 바뀐 내 삶의 기준이자 방향성이다.

그러다 보니 2021년 다양한 직업 N 잡러로 살게 됐다.


DDB코리아 디지털 플래너, 오국장으로 많은 프로젝트 제안/실행/리포트 업무하며 살았고
계원예술대학교 디지털미디어디자인과 겸임교수, 오교수로 많은 학생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살았고
한양사이버대학원 광고미디어MBA 원우회장, 오회장으로 배움과 관계 개선을 위해 살았고
OJH 광고기획 코칭, 오코치로 광고회사 취준생/현업의 연결가치를 위해 살았고
연세대 캠퍼스타운 마케팅 멘토링, 오멘토로서 스타트업에게 내 경험을 나누며 살았고
따로가치 가족의, 아들/신랑/아빠로서 최대한 소중한 경험 쌓기를 바라면서 살았고
무엇보다 뇌종양 7년 차, 폐암 2년 차 암환우로 내 몸속 암세포를 자극하지 않고 절친으로 생각하면서 살았다.


내 라이프를 타인이 볼 땐 이렇게 말한다.

"우와~ 대단하세요" 

"되게 열심히 사시네요" 

"되게 바쁘게 사시네요"

나 스스로 이것저것 하면서 열심히 사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 1년을 돌이켜보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었다.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다양한 일을 하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로 인해 내 식습관, 생활습관, 수면습관이 무너져있었고, 운동은 머릿속 생각뿐이었음을 인정하고 반성한다. 거울에 비친 배 나온 모습이 그 증거다!


메타인지 = 내 생각을 생각하는 것


뇌종양 이후 달라진 또 하나는 메타인지 개념이다.

메타인지를 알게 된 이후 내 생각과 습관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살펴본다.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 핵심이다. 문제를 알아야 답을 찾을 수 있듯이, 원인을 스스로 깨달아야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회사/학교/대학원 수업 등이 몰릴 땐 솔직히 벅찰 때도 있었는데, 다 내가 자초한 일이니 어디 하소연도 못하고, (뇌종양 이전처럼!) 묵묵히 쳐내는 경우가 많았다. 1년은 그렇게 보낼 수 있어도 앞으로 계속 이렇게 살다가는 3번째 암 진단서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 모든 암은 본인의 잘못된 습관 때문에 생긴 병이지 않는가.


2022년에는 단순, 심플 라이프를 지향한다. 지향해야 한다.
오국장, 오교수로서 회사/학교에 충실히 하고, 그 외 업무는 당분간 끊기로 했다.

내년엔 건강에 집중하고, 내 몸속 근육들을 찾아오는 한 해가 되고 싶다. 


1년 후 타인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면 성공이다.

"되게 심심하게 사시네요"
"되게 재미없게 사시네요"
"요즘 운동하세요?" 


"앞으로 뭐하고 살지?"


우리집 10대 아들딸, 대학교 20대 학생, 회사 3-40대, 선배 50대 이상 분들을 만나면 공통으로 하는 얘기다.

위드코로나 시대, 어수선한 대한민국 모든 분들이 하는 생각일것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삶에 너무 매달리다보니 '지금'의 삶에는 소홀한 사람들이 많다. 


'지금' 내 주변의 사람들, 상황에 감사하고 즐기면서 

많은 사람들이 '현재'가 주는 행복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암카페에는 부정적인 얘기 투성이다. 대부분 언제 죽냐, 얼마 살 수 있을까 얘기들 뿐이다. 건강한 정상인들도 꾸준하게 읽기 힘든 내용들이 많다.


내일부터 뇌종양 8년 차, 폐암 3년 차 삶의 시작이다.
내가 알고 있거나 모르는 암환우에게 내 삶이, 내 모습이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기위해서는 하루하루 헛되이 보내기엔 너무 아까운 시간이다.


항상 생긴대로 겸손하게 베풀며 살고 싶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암등록본부는 국가암등록통계사업을 통해 수집된 우리나라 2019년 국가암등록통계를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국민이 기대수명(83세)까지 생존할 경우 암에 걸릴 확률은 37.9%로 집계됐다. 성별로 보면, 남자(80세)는 5명 중 2명(39.9%), 여자(87세)는 3명 중 1명(35.8%)에서 암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됐다.  < 출처 : 한국인, 죽기 전 '암' 걸릴 확률은? 헬스조선 2021.12.29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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