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몇 번, 쓰지 않고는 도저히 날을 넘길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이 찾아오곤 한다. 다행히 쓰고 나면 좀 나아지는 정도라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의 조여옴, 압력의 날을 보냈다.
매주 토요일 딱 두 시간 동안 글쓰기를 배우려고 철도를 타고, 지하철로 갈아타서 강의장에 도착한다. 거기엔 내가 바라던 달짝지근하고, 보들보들하며, 친절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마치 젤리같이 폭신폭신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자신의 세계를 글자로 표현해보겠다고 각자 전구를 밝힌 듯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내성적인 공기가 얼마나 마음에 드는지, 그 교실 생각만 해도 사실 봄바람이 불어오고 배시시 웃음이 날 것 같다. 그렇게 글을 쓰려고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옷에서 행여나 음식 냄새가 배어있진 않을까를 신경쓰며 아이 둘을 겨우 떼어놓고 달려와 앉는다.
거기에 가기 위해선 나의 컨디션 조절을 잘 해야 한다. 금요일까지 직장에서 너무 힘을 빼도 안 되고, 덜렁 덜렁 몸만 가서 앉아 있으면 되는 수업이 아니라 일주일 내내 시간을 잘게 쪼개어 미리 정해진 소설 두 편을 단단히 두 번씩 읽고 가야 한다. 물론 나는 이해가 잘 안 되어 세 번 정도 읽었다는 사실을 시원하게 말하지 못했다. 잘 지치는 체력을 가지고 있기에 소설을 잘 쓰고 싶어서 운동도 더 열심히 한다. 글 쓰고 싶어서 운동을 하는 것이다. 잘 쓰고 싶고 뻥 뚫리고 싶으니까.
제일 중요한 것은 남편의 협조다. 매주 토요일 집 밖으로 걸어나가서, 집 안으로 걸어 들어오기까지 대략 6시간 동안 아이들을 온전히 봐달라고 누차 부탁했었다. 수강신청하기 전에도, 수업 듣는 중에도. 물론 그렇게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건 아이를 낳고 아이와 단 둘이 집에 남겨지는 것이 불안했지만 그의 야구 동호회 일이 매주 토요일 있었기에 기꺼이 보내줬던 과거가 있었기에 이번엔 10년이 지나 열 살이 된 첫째와 한 살 어린 둘째를 단단히 좀 봐달라고 이야기하고 매주 길을 나선다.
그렇게 혼자가 되어 기차를 탄다. 여행용 캐리어를 든 사람들 사이에서 A4 사이즈로 출력한 단편소설 두 편을 닳도록 들여다본다. 남이 쓴 것을 보는 것은 짧고 간단하게 느껴지는데 점점 다가오는 내 습작소설 합평 순서를 준비하며 내가 몇 글자라도 써보면 단 한 문장도 쉽게 호락호락하게 나오는 법은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도대체 무엇을 쓸 것이냐에 직면하고 나면 그야말로 낭떠러지 끝에 발발 떨며 혼자 남겨진, 괴물 앞의 작은 먹잇감이 된 기분을 느낀다.
그렇게 어려우면 그만두면 될 것을. 그런 일은 없을 거라는 두둑한 배짱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뭐라도 써내고 싶어서 무슨 이야기라도 절절하게 풀어내고 싶어서 계속 빙빙 둘러 애먼 이야기만 끌어내고 있다. 정작 써보고 싶은 이야기 근처엔 겁이 나서 가지도 못한채.
사실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이 이야기 써도 될까? 물론 이 이야기를 쓰려고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건데, 그래도 정말 써도 될까? 그러면서 내 인생에 일어났던 온갖 불행하고 괴로웠던 일들이 모두 떠올랐다. 그런 괴로운 동굴 벽화를 손으로 찬찬히 쓸어보면서 몇 주를 살아왔다. 이건 내 발로 걸어들어간 동굴 체험이다. 그러고 싶었다. 내가 가진 작은 불씨는 ‘글을 쓸 줄 안다‘는 것 뿐이다. 그것 하나만 믿고 그 동굴에 내 발로 찾아들어간 것이다.
거기에 더해 실제로 말할 수 없는 아픔의 근원인 장소를 실제로 찾아갔다. 아이들을 맡기려면 어쩔 수 없었다. 남편에게 토요일에 일이 생겨서 아이 둘을 맡기러 그곳으로 갔다. 친정 찬스라는 단어, 아빠 찬스, 엄마 찬스라는 말을 쓰며 원 가족과 행복하게 보내는 엄마들을 보면 저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하지만 나의 엄마, 아빠 생각을 하면 왜 아픈 기억부터 떠오르는 걸까? 특히 소설을 쓰려고 구상을 하면 죄다 어렸을 때부터 성장 과정에서 불만스러웠던 일들이 떠오르는 건 왜 그럴까? 모든 소설 쓰는 사람들이 당연히 겪는 과정일까? 유독 나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까?
소설은 커녕 마음만 뻥 뚫려서 부쩍 노쇄하신 부모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만 신경이 곤두서서 저런 말은 이렇게 다 큰 내 마음도 후벼파는구나를 따져가며 가족의 제일 아픈 지점을 기어코 찾아내서 글로 파헤쳐야겠다는 생각을 해보는 심정은, 떳떳하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그렇게 흔들리는 마음으로 한 문장을 얻어내려 기를 쓰고 있다.
단 두 시간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 여섯 시간 동안 아이 둘만 집에 남겨놓을 수가 없어서 일박 이일 코스로 친정에 머물다 집에 돌아왔다. 어디서 하룻밤 자고 오는 일은 피난 봇짐 같은 짐을 쌌다 푸는 과정, 빨래 산더미를 처리해야 하는 것, 친정에서 얻어온 음식을 적절히 소분해서 썩지 않게 관리하며 잘 먹는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이 들어 만나는 부모 앞에서 여전히 나사를 풀었다 조였다 하며 힘들게 감정 처리를 해야 하는 나를 지켜내는 일이 못견디게 힘이 들었다. 가장 마지막 일을 해내느라 아이들에게 애꿎게 야단을 치며 내 감정을 무난함으로 덮어보려 애썼던 것도 죄스럽고, 집에 돌아와서도 며칠 후유증을 안은채, 나에게 가족이란? 나에게 친정 부모란? 같은 질문을 해대며 며칠을 연이어 나를 더 못 살게 굴까봐 겁이 난다.
소설은 커녕 요즘은 살이 찌는 것을 막을 도리 또한 없다. 연년생 아이 둘을 기르느라 임신 때부터 날씬한 몸을 유지했던 나였다. 배만 볼록 나와서 아이를 낳았고, 출산 후에도 붓기가 며칠 가지 않고 내내 피죽도 못 먹은 것처럼 늘 말랐었다. 코로나 기간에도 육아 하느라 살이 찔 새가 없었고 휴직 중에도 바삐 돌아다니며 새로운 일을 펼쳐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결국 살 찔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요즘 드디어 살이 찐다. 힘든 일을 지나보내고 나니 몸의 특정 부위에 살이 차오르고 있다. 바지가 작아졌다. 사무실 의자에 앉으면 배가 볼록해졌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쪘다하면 10킬로그램 쯤은 우습게 살이 찌곤 했는데 외국에서 사는 것도 아닌데, 한국에서 이렇게 살이 찌다니 나도 당황했다. 약 3년의 시간, 회사에서 마치 수감생활 하듯 하루 하루를 별 일 없이 흘려 보내야지 마음 먹고 지내고 있는데 살이 찐다. 이것은 편안함에서 오는 것인가? 이젠 괴로운 일은 다 지나갔으니 다신 힘들지 않을 거라는 안도감에서 오는 것일까? 나의 통통한 살들은 도대체 무엇에 근원을 두고 있을까?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꼭 술을 먹은 것 같은 글이 되었다. 아마도 내가 글을 쓰기 위해 나의 가장 깊은 부분까지 가까워지고 있어서 그런가보다. 인생이 화려한 껍질을 축적하느라 바쁜 것이라면, 나는 요즘 아무도 보지 않는 가장 깊은 동그라미의 중심으로 내가 깊이 들어가고 있다. 남에게 보여지지도 않는, 나도 무심히 보면 볼 수 없는 것을 보려다보니 시추공이 된 듯 진동과 소음에 시달리고 있지만 이런 시간이 나를 깊은 사람으로 만들어주겠지 하는 담담한 확신을 가져본다.
계속 도서관에서 마음에 드는 소설가를 찾고 그들의 소설집을 몰두해서 읽어가며 내 세계를 꾸며본다. 남의 집이 어떻게 꾸며져있는지를 보면서 내 집을 한 번 돌아본다. 아팠던 기억이 한 켠에 걸려있고, 영광의 기념품들도 한 구석에 모여있다. 하지만 나를 위로하는 것은 고요함 그 자체이다. 떠들썩한 인사치레에 이를 보이며 웃는 날도 있겠지만 내가 진짜 바라는 것은 부드러운 촉감, 고소한 냄새와 아무 일 없는 텅빈 시간이다. 뭘 해서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뭘 하지 않아도 단정하게 말끔한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서 가장 정적이지만 가장 동적인, 글쓰는 일을 더 많이 하고 싶다.
글 쓰는 나와 잘 지내고, 글 잘 쓰고 싶어서 한없이 자신에게로 침잠해 들어가는 과정을 존중하고,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하는 일상을 존경하면서, 조금이라도 좋은 글에 다가가기 위해 애쓰고 싶다. 그게 지금 가장 잘 하고 싶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