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이올렛 Apr 17. 2023

당신은 참 진지하시군요.

첫 책을 출간하고 출판사에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추진했다. 책을 만들기까지는 하루에도 여러번 편집자와 전화 혹은 메일로 연락을 주고 받았다면, 책의 꼴이 나오고나자 그때부터는 마케터와 한 팀이 되어 유튜브 방송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실로 처음 있는 일들이었다. 어떤 유튜브 채널은 나의 성향과 잘 맞기도 했지만 어떤 채널은 너무 낯이 간지러워서 차마 출연할 용기가 생기지 않아 정중히 거절한 것도 있다. 그래도 출판사에서 어렵사리 출연 기회를 얻어 제안해주신 것은 성심성의껏 출연해서 책을 알렸다.


때로는 당일에 촬영장소가 바뀌기도 했다. 나는 책을 처음 출간한 무명의 작가이고 강의를 시작한 지도 얼마되지 않아 중요한 게스트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때를 빼고 광을 내서 최대한 단정한 모습으로 약속한 시간보다 한참을 일찍 찾아가곤 했다. 물론 꿈의 시각화라는 특별한 분야에 대한 책이다보니 토크 형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강의자료를 준비해서 가면 그걸 함께 보면서 이야기하는 형식이었다. 때로는 무시를 당하기도 했다. 나는 게스트로 참석한 것이고 초대받은 손님이라면 마땅히 받을만한 호의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도 있었다. 그래도 꿋꿋하게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몇 군데의 방송에 출연했고 내 인생은 마치 책을 출간한 적이라도 있냐는 듯 무심하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출간 후 꼭 1년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문자가 도착했다. 00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신 것을 아주 감명깊게 보았습니다. 선생님을 특별강연에 꼭 초청하고 싶습니다. 문자를 보고 가슴이 뛰었다. 다시 이런 일이 생길 수 있구나. 강연 의뢰가 신기할 만큼 뚝 끊겼고 나는 회사로 돌아왔고 다시는 그런 방향으로는 기대하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던 시간을 지나고 지나, 심장을 뛰게 하는 연락이 오다니. 이제는 강연 의뢰를 받은 경험도 몇 차례 쌓여서 그런 문자가 왔을 땐 어떻게 응대해야 하는지 나만의 노하우도 생겼다.


그렇게 강의 일정을 조율하고, 구체적인 강연의 맥락을 공유하고, 나는 다시 예전처럼 강연 준비를 시작했다. 회사에 다니면서 외부 강연을 하는 것은 처음이라 우선 상사에게 내 상황을 말씀드렸다. 책을 출간했던 것, 강연 경험, 이후 회사에서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까지도. 그리고 이제는 관련 규정을 꼼꼼히 살펴서 사전에 정당히 보고하고 강의하러 가겠다고도 담담히 말씀드렸다. 나는 구두 승낙을 받고 결재 문서를 올렸다. “강의하러 다녀오겠습니다. 업무에 더 정진하겠습니다.” 그런 마음을 담아서 결재를 받았다.




주변 정리는 끝났지만 정작 강의 준비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평일은 아침부터 밤까지 직장과 가정 두 가지를 돌보다보면 하루가 후딱 지나간다. 주말은 또 어떤가, 평일보다 더 바쁘지 않던가. 한 주, 두 주, 한 달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그리고 강의 준비에 집중해야지 했던 때에 그만 감기에 걸려버렸다. 아주 낭패였다. 아픈데 어떻게 책상에 앉아서 열정을 쏟겠는가. 나는 병원에 가서 무조건 빨리 나아야 된다고 이야기했다. 의사선생님은 그런 약은 없다고 했고, 약국에서도 같은 말을 했다. 최대한 빨리 나아야 한다. 콜록콜록 기침을 하면서 강의할 수는 없다. 비타민을 들이부었고, 쌍화탕을 들이부었으며, 보양식을 사먹었다. 그렇게 기적적으로 강의 며칠전 목소리를 되찾았다.


강의 10여일 전에는 파마를 했다. 촌스런 단발머리는 세련된 에스컬로 변신했다. 화장을 안하고 사니까 편하다는 생각에 화장품 구입을 한지도 꽤 되었는데 실로 오랜만에 올리브영에 가서 립스틱을 발라보고 두 가지를 구매했다. 하나는 사고보니 너무 빨개서 물장미 라는 이름의 연한 립밤을 하나 더 샀다. 그 둘을 발라 문질러보니 그럴듯한 색깔이 나왔다. 립스틱도 이거면 합격이구나. 옷은 강의용 옷이 몇 벌 있다. 과거에 영상 강의 촬영을 위해서 구입했던 것을 다시 꺼내입었다. 강연에도 초기투자비가 필요하다. 강사를 돋보이게 하는 예쁜 옷이 필요하다. 그 옷이 닳을만큼 강의를 더 하고 싶다.


강의 이틀 전 강의자료 준비를 마쳤다. 물론 내가 가진 고유의 콘텐츠가 있지만 인트로와 엔딩은 꼭 새롭게 손봐야 한다. 강연 대상과 친해지려면, 최대한 자연스럽게 아이스 브레이킹 하려면 꼭 필요한 과정이다. 전날 강연 자료를 파일로 보냈고 그때부턴 짐보따리를 쌌다. 아무리 파일을 보냈다고 해도 당일에 수정해야 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므로 노트북을 챙긴다. 어깨가 끊어질 것 같아도 내 강의에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을 담는다. 레이저 포인터는 가장 성능 좋은 것으로 샀더니 아주 먼 거리에 있는 노트북과도 잘 연동되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다행이다. 내 강의를 살렸다. 스타킹도 여벌로 하나 더 챙기고, 화장품도 챙긴다. 강연장에 도착해서 화장을 한다. 최대한 산뜻한 모습을 유지하기 위한 작은 노력이다. 노트와 필기구, 양치도구, 휴대용 휴지, 물, 간식, 핸드폰, 지갑, 이어폰, 귀마개, 마스크 여분을 챙긴다. 가방이 뚱뚱해진다.


강의 이틀 전부터는 매일밤 마스크팩도 했다. 외모 꾸미기에 무관심한 스타일이라는 생각은 잠시 내려두고 외모 꾸미기에 진심이라는 마음을 가져본다. 좋은 강사가 되려면 내 외모는 곧 청중이 바라보고 싶은 그것이 되어야 한다. 그런 생각으로 없던 관심도 끄집어내본다. 다행히 단골 미용실에서 파마를 마친 내 눈썹도 다듬어주셨다. 그때 결이 난 방향으로 눈썹도 손질해본다.




강연하러 가는 날 아침, 이럴 땐 가족 중 누가 아프면 안된다. 평소에 건강 관리를 해야 하고 특히 아이들의 컨디션을 더 잘 살펴야 한다. 아이가 아픈데 편한 마음으로 강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이들 교문까지 데려다주고 바삐 들어와서 한번 더 씻고 강연 복장을 입고 한 보따리 준비해둔 백팩을 메고 드디어 집밖으로 나선다. 일찌감치 도착해서 담당자를 만나 대기실을 안내받는다. 이번 강연장은 최고급 시설이다. 와우! 너무 좋다.


리허설을 하고 식사 후 스텝의 안내를 받아 강연 무대에 올랐다. 설레는 엄마들의 눈빛이 반짝인다. 내가 좋아하는 장면이다. 그들의 눈빛을 마음에 담아 나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을 시작한다. 예전에 블로그에서 직접 수강생을 모집해서 강연한 적이 있다. 그때 미련하게 강의자료를 수백장씩 만들며 책상을 떠나지 않는 나를 보고 그러지 말라는 말을 듣곤 했다. 그래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내 콘텐츠에 책임을 다하고 싶었다. 그런 시간이 쌓여서 강연에 대한 만족도가 조금씩 올라갔다.


이번 강연엔 질문의 내용이 너무 좋았다. 진심으로 듣고 있었구나 하는 걸 느꼈다.

- 그림을 잘 못 그리는 사람은 어떻게 꿈을 시각화 해야할까요?

-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까요?

- 강사님은 예전에, 꿈을 그리며 어떤 마음에 중점을 두고 살아오셨나요?

- 아이를 키우며 자기계발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요. 강사님도 그런 시간이 있었나요?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하나 하나 충실히 대답하면서 참 기뻤다. 너무 좋았다. 질문은 정말 멋진 일이구나, 한번 더 느꼈다. 성실히 강연과 답변을 마치고 대기실로 들어왔다. 스텝분께서 대기실로 에스코트 해주셨다. 감사했다. 자리에 돌아와 물을 연거푸 들이키고 한껏 흥분된 마음을 찬찬히 가라앉혀보았다. 나오는 길에 강연 관계자분들을 만났다. 강연 반응이 너무 좋았다고 다음 강연에도 초청하고 싶다는 말씀, 꿈 시각화 말고 다른 콘텐츠를 가지고 있냐는 질문, 명함의 교환이 이어졌다. 예전에도 그런 적이 있다. 내가 강연하는 모습을 보더니 다른 업무를 가지고 와서 새로운 것도 함께 하고 싶다고 제안하셨던 적이 있다.


그렇게 매번 지금 내게 온 기회 앞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다. 강연 전날까지는 망치는 꿈을 꾸고, 걱정을 산더미처럼 하고, 남편에게 무슨 S대학 출강가는 거냐면서 왜 그렇게 긴장하는 것이냐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그렇게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부산을 떨었다. 그만큼 잘 하고 싶었고 좋아하는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늘 진심을 담는 것, 정말로 심장 터지게 전심전력으로 준비해서 그만큼 표현력을 길러 잘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 뿐이다.


이렇게 강연을 마치고 오면 체력적으로는 상당히 피곤한데 정신적으로는 흥분 상태가 잘 가라앉지를 않는다. 현장의 열기가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젠 강연 경험이 쌓이면서 단시간에 자신감을 확 끓어올리는 법을 갈수록 터득해가고 있고 극도의 긴장감을 다스리는 법 또한 익혀가고 있다. 그리고 가장 늦게 터득하고 싶은 기술은 이렇게 강연을 마치고 느끼는 보람과 행복감을 편안한 일상으로 전환해내는 방법이다. 사실 이 부분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나는 평범한 아이 둘 엄마이다. 그런데 조금 특별하게 가끔 강의를 하러 다닌다. 나는 다시 일상복으로 갈아입고 설거지를 하고, 딸의 머리를 감겨주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분리수거를 한다. 아이들 저녁 먹을거리를 고민하고, 인터넷으로 장을 볼 것이다. 그런 일상들이 내겐 또 하나의 큰 행복이다. 글 쓰는 일, 말 하는 일, 아이들의 엄마로 사는 일, 나로 사는 일. 각각이 서로를 침해하지 않고, 서로 더 행복하도록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고 있다.


강연 전 잠을 잘 자기 위해서도 많이 노력했다. 쩔쩔매며 강연 망치는 꿈을 꾸기도 했다. 푹 깊게 자지 못하고 설잠을 자며 설친 날도 많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발 뻗고 자고 싶다. 개운하게 씻고 퉁퉁부운 다리를 쉬게 하고 열심히 일한 머리도 쉬라고 하고, 무엇보다 많이 사용해서 칼칼하게 변해버린 내 목도 정상을 되찾으면 좋겠다. 오늘밤 자고 일어나서 내일 눈을 뜨면 나는 평소처럼 출근을 할 것이다. 다시 하던 업무를 하고 그렇게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상에 적응해서 내 꿈을 조용히 간직한 채 전날의 기억을 살짝 열어볼 지도 모른다.


평범한 일상을 무시하지 말고, 꿈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지도 않으면서 딱 하루씩 용감하고 슬기롭게 살아가고 싶다. 그저 내게 오는 기회 하나 하나에 감사하며 또 하루를 뚜벅뚜벅 묵묵히 성실히 살아가야지. 그게 내가 가장 잘 하는 일이고,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면이니까.

 



오늘 정말 수고했어.

적어도 1년은 오늘의 일로 뿌듯해 할 것 같다.

이제 새로운 꿈을 또 품어보자.

꿈 하나가 이루어진 특별하고 감사했던 날.

내 주변 사람들의 응원과 지지 덕분이다.

나도 타인의 꿈을 응원하는 사람으로 계속 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테드로 가시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