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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올렛 Apr 26. 2023

후폭풍을 지나보내며

10여일 전 외부강의를 마쳤다. 그것을 준비하느라 한 달 전부터 긴장하며 살았고, 그것을 마치고도 적어도 일주일은 후폭풍에 시달려야했다. 그 폭풍이 나만 휩쓸고 지나갔으면 좋았으련만 아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독감 확진이 되어 며칠을 앓아누웠다. 나는 휴가를 내고 아이를 돌봤다.


아이의 열이 40도까지 오르면 무조건 드는 생각이 있다. 내가 밖에서 설치고 돌아다녀서 이렇게 된 거 아닐까. 아이에게 쏟을 정성을 나의 발전과 성장에 쏟아보겠다고 난리를 부리다가 이렇게 된 건 아닐까. 나의 빈자리는 꼭 이렇게 티가 나더라. 나 때문에 아이가 아파진 것 같아.


일요일부터 응급진료를 하는 병원에 데리고 갔고 열이 나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토하는 아이를 달래가며 병원에 거듭 데리고 다니고 산해진미를 구해다가 아이에게 바쳤다. 그렇게 며칠을 온전히 엄마로, 아픈 아이를 돌보는 엄마로 살았다. 그리고 이젠 내가 몸이 두 조각 나듯 아프다. 그래도 아이가 낫고 나니 마음은 훨씬 편하다. 다행이야 정말로 다행이야. 내가 대신 아플 수 있어서 정말로 다행이야.


강연했던 곳에서 다음에도 또 새로운 주제로 만나고 싶다고 했기에 나는 기획서를 써서 제출하려던 참이었다. 몇 가지 콘텐츠를 생각하다가 다시 접기를 몇 번 반복했다. 또 일을 벌리면 안 될 것 같은 마음, 그만 설치고 다녀야겠다는 마음, 그래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충돌하며 며칠을 보냈다. 꿈에까지 나왔다. 새로운 것을 찾다가 그만 내가 연극까지 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리허설 장소에 갔다가 이건 도저히 못하겠다고 소리 지르고 차를 몰아 나오는 장면이 생생하게 꿈에 나왔다. 아주 괴로웠고 진땀이 났다. 나는 그렇게 열병을 앓고 사는 중이다. 꿈과 현실이 충돌하는 현장에서 말이다.


소설쓰기는 이번 주 수업이 입문반 마지막이다. 내 합평 순서가 이번 주라서 단편 소설을 하나 완성해서 수강생 밴드에 올려야했다. 그걸 완성한다고 또 아픈 아이를 힘겹게 재워두고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쓰곤 했다. 이 모든 노력이 무슨 부귀영화와 연결되려고 이러는 걸까를 생각하며 나는 그렇게 부단히도 수면 아래에서 헤엄을 치며 4월을 보내는 중이다. 혓바늘이 크게 나서 그냥 가만히만 있어도 고통 속에서 하루를 보내게 된다. 따갑고 괴롭다. 이 모든 일이 내가 좋아서 하는 거면서 욕심도 이만하면 병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욕심일까 꿈일까.




아들의 몸이 나으며 내게 몸살이 심하게 왔다. 내일은 오랜만에 출근하는 날인데 한 번 일상 패턴이 깨지고 나니 만사가 귀찮아져버렸다. 아프면 몸도 고생이지만 맘도 황폐해진다. 이번엔 후폭풍이 이렇게 거세다. 다음엔 좀 덜 할까. 직장에 다니며 외부강의를 한다는 게 이렇게 힘든일이구나. 내가 바라는 바는 점차 외부 강의 횟수를 늘려서 언젠간 전업 강사와 전업 작가가 되는 것인데 그 날을 영광스럽게 맞이하기 위해선 지금의 이 고생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마음이 뻥 뚫려 바람이 지나다니는 느낌이 들곤 한다.


적어도 4년은 더 이렇게 살아야 한다. 죄수가 감옥의 벽에다가 줄 하나씩을 그으며 날짜를 세는 마음, 그런 마음 말고 신나는 일을 하며 신나는 스케줄을 세워 신나게 사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된 것이 현실은 딛고 이겨내야 할 것들로 발 밑이 북적이는지 모르겠다. 다행히 아이들이 쑥쑥 자라난다. 아들은 아프던 몇 일 사이에 키가 더 컸고 딸도 건강하게 씩씩하게 자라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내가 좀 시들시들해지는 것 쯤이야 버텨낼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기업 후원 강의는 처음이었다. 검색 포털에 관련 기사가 뜨는 것을 보고 신기했고 동시에 기업을 빛내는 강연을 하는 시기를 잘 지내보내고 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소망했다. 책을 허겁지겁 읽어왔듯, 강의도 그렇게 허겁지겁 먹어치우듯 보고 있다. 각 강사들의 매력을 집중 분석하며 한 사람이 가진 고유한 성향이 얼마나 귀한건지를 살펴본다. 한 때는 누구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욱 나 자신이 되고 싶다. 나 자신의 중심으로 깊이 향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원래 생각이 많고 고민거리가 많은 그 성향을 존중하면서, 말도 안되는 상상도 너무 태연하게 잘 하는 나를 이해하며, 매번 희한하고 창의적으로 상황을 헤쳐나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고, 그렇게 함께 살자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매일 주어진 일을 해야 하는 직장인이면서, 두 아이의 엄마로, 한 남자의 아내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도 기어코 ‘나’를 찾겠다고 책을 읽고 소설 수업을 듣고 단편 소설을 처음으로 완성해보기도 하면서 매번 어려운 길을 찾아 들어가는 중이다. 아무것도 안해도 아무렇지 않으면 좋으련만, 나는 무언가를 하고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겪어봐야 직성이 풀리고 있으니 삶이 단 하루도 고달프지 않은 날이 없다.


흑염소, 홍삼, 뉴케어, 비타민, 칼슘 등 온갖 종류의 영양식품을 섭취하며 해보고 싶은 일 앞에서 주저하지 않으며 매번 허들을 넘고 안도하고 꽤 많이 걸려 넘어지기도 하면서 사는 중이다. 꿈을 그리자고 말하는 것은 나의 일부일 뿐이고 실제 나의 일상은 촘촘한 시간들 사이에서 작은 만족과 작은 설렘, 빈번한 실망과 고생을 안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래도 이 길이 그렇게 헛되진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매일 살아가고 있다.


혓바늘이 꽤 따갑다. 좁쌀만큼 커져버린 혓바늘이 매번 이에 스치며 통증을 일으킨다. 그래도 몸의 통증은 차라리 낫다. 마음의 통증에 비하면. 몸은 고달프고 시간은 부족하지만 요즘의 내 마음은 그 어느때보다 더 꿈에 부풀어 사는 중이다. 헛된 것을 바라는 마음,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을 희망하는 마음, 지금보다 아주 조금 더 나은 가족의 평온을 기대하는 마음이 어우러져서 나를 이루고 있다. 고대하던 강의의 후폭풍을 오늘로 잘 보내주고 내일은 남편에게 바톤 터치를 하고 나는 회사로 향할 것이다. 밀린 일 앞에서 다시 정체성을 새롭게 다지고 마음에 핀 꿈의 꽃을 소중히 품으며 또 겉으론 멀쩡한 직장인A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십 년 넘게 그래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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