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작가와의 1:1 고민상담소에 지원할 직장인을 찾는다는 공지글을 보고 홀린 듯 지원한 적이 있습니다. 운 좋게 당첨이 되어 여러 권의 책을 내고 대중강연을 활발하게 하고 계신 분과 만났습니다. 번아웃을 겪는 직장인을 위한 인문학적 솔루션을 제공해 주는 자리였지요. 그 자리에서 평소 하던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매우 안정된 직장환경에서 모두가 예순의 정년만을 바라보고 있다. 변화가 적은 분위기 속에서 다른 직원들과는 달리 나 혼자만이 적성에 맞는 일을 찾느라 어른이 되어서도 진로탐구 중에 있다, 그 과정에서 글쓰기의 기쁨과 행복을 발견하게 되었고, 퇴사 후 전업작가로의 전향을 소망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의 고민을 귀 기울여 듣던 그는 저에게 왜 책을 쓰고 싶은 건지 물었습니다. 좋은 글을 쓰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대답했지요. 그는 이어서 물었습니다. 작가가 되는 것 자체가 꿈인지, 아니면 정말 쓰고 싶은 글이 있는 건지를 말입니다.
속으로 뜨끔하더군요. 내심 글의 내용은 무엇이 되어도 좋으니, 우선 이름과 얼굴이 알려지는 유명인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건 아닌가 자문하게 되었습니다. 활발하게 전국으로 강연을 하러 다니고, 수많은 독자를 만나서 유명세를 치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 것을 내심 바라온 면도 없진 않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면 무슨 글을 써서 그런 모습이 되고 싶었을까? 뾰족하게 떠오르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저 두루뭉술하게 '세상은 좋은 곳이고, 우리 개개인은 모두 자신만의 특별한 강점을 가지고 있으니 누구나 성장하고 꿈을 이룰 수 있다'라는 막연한 주장만이 떠오를 뿐이었지요. 그러면 나는 진정 무엇을 쓰려고 작가의 길로 들어서려는 걸까? 그때부터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써야 할까? 한동안 깊이 빠져들어 고민한 결과 '이 세상에서 나 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써서, 독자의 삶을 이롭게 만들자'를 모토로 삼아 지금까지 걸어온 길, 알고 있는 노하우를 에세이로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직장생활이 버거운 사람에겐 나의 경험을 털어놓음으로써 용기를 주고 싶었고, 이제 막 읽고 쓰는 것의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사람들에게는 그보다 조금 더 먼저 그 길을 시작했던 경로를 알려주어 조금이라도 더 큰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돕고 싶었습니다. 그게 글을 쓰는 이유이자 목적이라고 설정한 것이지요.
직장에서도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직원의 소식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스트레스가 병으로 악화되어 질병휴직을 신청했다는 얘기를 듣고 얼굴도 모르는 타 부서 직원에게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저도 그런 적이 있었기 때문에 무심히 지나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그와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는 동료에게 아픈 직원의 근황을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멀리에서 갖는 동정심과는 온도차이가 있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아팠던 그 직원은 업무에 허점이 많았고, 본인의 질병을 핑계로 휴직 직전에는 팀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었을 만큼 평판이 좋지 않았습니다. 아차, 싶었습니다. 저도 정작 나와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누군가가 하던 업무가 그의 공백으로 인해 나에게 과중한 덤으로 올 때에는 진심으로 위로와 응원을 보내는 게 쉽지 않겠구나 싶었습니다. 그저 멀리 있는 부서의 소식에 알량한 측은지심을 내세웠던 건 아닐까 싶어서 내밀려던 손을 거둔 적이 있습니다.
직장인으로서 글을 쓰려다 보면 가치관 충돌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글 쓰는 이로서 보드랍고 말랑말랑한 감성을 유지하며 먼저 손 내밀어 일으켜 세워주고 가까이 다가가 사연을 듣고 싶은 충동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일하려고 만난 사람들의 이익 집단입니다. 철저히 개인별 할 일이 구분되어 있고, 나의 할 일을 올바르게 해야 타인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는 꼭 짜인 구조로 운영되고 있지요. 거기에는 감성이 개입할 여지가 적습니다. 그 둘을 분리하며 각각의 자아가 서로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도록 단단히 붙잡는 일은 혼자서 해결할 나만의 일입니다. 그래서 바로 그런 충돌지점의 감촉을 선명하게 느끼며, 모순적인 에피소드에 촉각을 기울이려고 합니다. '직장인 작가'라는 흔치 않은 위치에서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저항의 지점을 나만의 언어로 기록하는 것에 열중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나의 마음을 리트머스 용지처럼 생각하고 모욕감을 느꼈거나, 수치스러웠던 경험들을 가만히 떠올려보곤 합니다. 어느 지점의 무슨 상황과 말 때문에 그 자리에서는 한시바삐 벗어나고 싶었던가, 쥐구멍을 찾고 싶은 심정이 들었던가 반추해 보곤 합니다. 그런 숨기고만 싶은 직장생활 에피소드를 흘려보내기가 아까워, 낯부끄럽더라도 글주머니에 저장하고 있습니다. 그건 현직에서 근무하며 하루하루 보통 직장인의 삶을 사는 저만이 관찰할 수 있고 심장 한가운데에서 느껴지는 감정으로 표현해 낼 수 있는 딱 한 편의 글이기 때문입니다.
직장에서 마음에 상처 입어 퇴근한 날엔 조용히 노트를 펼칩니다. 그 사연이 글로 남길 가치가 있는 일인지 스스로 묻습니다. 그렇다고 판단하면 냉정한 마음을 유지하려고 애쓰며 글을 씁니다. 나를 속상하게 했던 그 일도, 어떤 사람도, 특정한 상황도 솔직하고 담담하게 다시 그려봅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건질 수 있는 하나의 교훈이라도 얻어보려고 다각도에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그동안 아무것도 건질 것이 없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반면 도저히 글로 남기는 것이 마땅치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땐 그저 그 시간을 통과해 온 것만으로도 장하다 여기며 마음을 달래곤 합니다. 앞으로 살아가는데 언젠간 지혜를 발휘하게 될 밑거름이 될 거라고 여기면서요.
퇴근 후 지친 몸을 책상에 데려와 노트북 뚜껑을 열고, 손가락을 움직여 시간을 거슬러 있었던 일을 되새김질하며 머리와 마음이 분주해지도록 애쓰는 일 자체를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쓰고 싶은 마음을 소중히 여기며 쓰지 못할 환경에 있는 나를 끊임없이 다독이고 응원하며 쓰는 사람의 자리에 앉히는 일을 계속할 겁니다. 그 과정 자체가 유명해지는 것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지만 저는 압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매일매일 나은 사람이 되리라는 걸, 직장인으로 사는 낮 시간과 작가로서 사는 밤 시간이 합쳐져서 그 둘이 서로를 거들며 꿋꿋하게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리라는 것을요.
직장일과는 달리 월급이 없어도, 회사에서의 승진처럼 미래가 정확히 보장되지 않더라도, 쓰는 행위 자체에 기쁨과 보람을 느끼는 것이 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글 쓰는 나를 좋아하게 되는 것, 글 쓸 시간을 만들려고 부단히 애쓰는 것, 쓰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부족한 과거의 글도 다시 읽고 좋은 구석을 어떻게든 발견하는 것에서 기쁨을 느낍니다. 회사일로 매일 보람을 찾는 건 어렵지만, 글쓰기로 만족을 느끼는 건 할 수 있습니다. 하루치 일을 하고 퇴근한 후, 하루치 글을 쓰고 노트북 뚜껑을 덮을 때 서로 다른 기분을 느끼며 직장인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갑니다. 나만 쓸 수 있는 글, 독자의 가슴에 힘을 불어넣는 글을 쓰며 유명세라는 욕심은 내려놓겠습니다. 그게 초보 작가가 할 수 있는 마땅한 자세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