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나온 후 가장 뜻밖이고 신기했던 바는, 나에게도 드디어 내 책을 읽는 독자라는 존재가 생겼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놀람과 설렘이야말로 어쩌면 다음 책을 집필하게 만드는 최대의 동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만큼 쓰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글을 읽는 사람, 혹은 앞으로 쓸 글을 기다리는 사람이 꼭 존재해야 한다는 자명한 사실도 배웁니다.
책 출간 후 첫 번째 독자집단은 지인들이었습니다. 특히 함께 책을 읽고 성장을 도모하던 글친구들의 호응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집필부터 출간계약, 집필과정과 출간 후 홍보활동까지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그들의 환호와 격려가 있었기에 첫 출간이라는 통로를 무사히 지나올 수 있었습니다. 출간 후 시간이 조금 지나서 검색창에 나의 책 제목을 입력해서 일반 독자의 반응을 살펴보았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냉정한 현실이었습니다. 출판사에서 미리 의뢰하여 긍정적인 책 리뷰를 써주기로 약속을 한 전문 서평단을 제외하고는, 책에 대한 호불호가 분명한 개인 독자의 솔직한 생각과도 만났습니다.
출간 후 두어해 가 흐르자 책 제목으로 검색해 봐도 더 이상 새 글이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인터넷 서점의 판매지수도 떨어진 채 제자리입니다. 새로 나오는 신간도서의 파도에 휩쓸려 저 멀리 먼바다로 떠내려간 나의 책은 어느 작은 도서관 서가에서 잠자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던 중 새로운 글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책을 출간했었다는 사실조차 까마득하게 느껴지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한 분의 블로그에서 과거에 했던 강의와 출간했던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글을 우연히 찾았습니다.
그녀는 늦은 나이에 임신을 했다고 합니다. 우연히 찾은, 예비 엄마들을 위한 임신육아교실에서 '꿈을 그리고 성장하는 엄마'에 대한 제 강의를 들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크게 피부에 와닿는 바 없는 평범한 강의라고 생각하고 선물꾸러미를 받아 집에 돌아갔었는데, 막상 출산 후 어린 아기와 단둘이 집안에서 육아에 전념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과거에 들었던 강의 내용이 자꾸 생각나고 그제야 왜 엄마의 성장과 행복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지를 절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바로 이어서 갈급한 마음으로 제 책을 찾아서 읽고 그 느낌을 글로 남긴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육아 과정에서 힘들고 사회로부터 고립된 외로움의 과정을 겪으며 세상 모든 엄마들을 존경하게 되었노라고 고백했습니다. 육아로 인해 자아를 잃는 느낌에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고 다른 엄마들과 연대하며 함께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꽉 찬 글에는 긍정의 힘이 생생히 느껴졌습니다. 꿈을 그리는 엄마들이 모두 <마법의 꿈지도>를 읽으면 좋겠다는 마지막 문장으로 끝나는 글을 보며 저자인 저는 만감이 교차함을 느꼈습니다.
출판시장에서 잊혀버린 건 아닐까, 과거에 출간했던 일이 꼭 없었던 일인 것처럼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닐까, 다음 책을 출간할 수는 있을까, 불안하고 막막한 다음 계단 앞에서 한 발자국을 떼기가 어려운 현실 앞에 독자의 솔직 담백한 책이야기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동아줄 같은 효과를 냅니다. 아이디어는 샘솟지만 이게 읽을 만한 책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에 스스로 찔리지 않게끔 단 한 사람의 독자에게라도 제대로 가닿는다면 책을 만든 의미는 충분하다고 여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국 뉴욕의 한인서점에서 어렵게 책을 구해 읽었다는 독자, 그냥 막살려고 했는데 나의 책과 강의를 접한 후 꿈을 가지고 살아봐야겠다는 중학생, 읽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으로 도전해 봐야겠다는 결심이 서서 브런치 작가가 된 독자 등 껍질을 깨고 새롭게 나아가는 독자들의 소식을 듣는 것은 작가가 된 후 처음 느껴본 뿌듯하고 뭉클한 기쁨입니다.
글을 쓸 때에는 아직 독자가 존재하지 않기에 외롭습니다. 과연 이 글이 책 한 권으로 묶일 만한 가치가 있을까, 소용이 있는 작업일까? 이제는 의심을 거두고 딱 한 사람의 독자를 가정하여 그에게 꼭 필요한 책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임하려고 합니다. 상상 속 단 한 사람의 독자는 남자일 수도 여자일 수도, 나이가 어릴 수도 많을 수도 있습니다. 대신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깊이 고민해 본 사람의 눈에 띌 책 제목을 정하고 그 방향으로 글을 써서 인생에 보탬이 되는 글 뭉치를 꾸준히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저 역시 풀지 못한 인생 숙제를 여러 권의 책바다를 헤매며 서서히 미로에서 탈출하듯 밝은 곳으로 한 발짝씩 내디딜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인생이 조금 더 밝아지는데 나의 쓰는 일이 유익할 수 있길 바랍니다. 작가는 책을 만들고 책은 독자의 손에 가닿습니다. 작가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독자의 존재가 필연적입니다. 독자는 작가에게, 작가는 독자에게 각자의 삶이 더 풍요롭게 피어나길 응원하며 함께 커가는 관계입니다. 앞으로 독자들과 의미 있게 관계 맺고 쑥쑥 함께 자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