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영국에서 공부하러 떠나기 위해 짐을 쌀 때였습니다. 기내용 캐리어와 커다란 이민가방에 짐을 꾹꾹 눌러 담으며 항공사에서 허용하는 무게를 넘지 않으려고 물건 하나하나를 살피며 꼭 필요한 건지 고심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결국 생존과 직결된 의식주 아이템에 밀려 한국에서 꾸준히 쓰던 일기장은 유학짐에 넣지 못한 채 출국했었습니다. 영국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장 먹고 입고 자는데 필요한 필수품부터 장만하느라 일기장을 구입할 마음속 작은 여유공간은 생기지 않더군요. 그렇게 일기를 쓰지 못한 채 한 달쯤 지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은 우연히 파운드랜드(Poundland, 영국판 다이소)에 들러 유학생활에 필요한 생필품 중에 추가로 사야 할 물건이 있는지 살펴보던 중이었습니다. 마침 문구코너를 지날 때, 짙은 자주색 노트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었습니다. 이건 꼭 사야 돼, 장바구니에 노트를 담아 서둘러 기숙사로 돌아왔습니다. 그날부터 참아왔던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일기장은 조용히 제 마음을 받아 적는 안전하고 따뜻한 공간이 되어주었습니다.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면, '어디? 캄보디아?'라는 대답이 돌아오곤 하던 유학생활 초반, 타국에서의 설움도 쏟아낼 수 있었지요. 한 바닥 가득 마음을 쏟아내고 나서야, 일기장이야말로 낯설고 힘든 상황 속에서 꼭 가져야 할 필수품이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유학생활동안 썼던 일기장에는 다국적 학생들 사이에서 조별과제를 하며 겪은 난감함,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되지 않는 영어에 대한 한계와 속상함, 그럼에도 논문을 완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애씀의 과정이 모두 담기게 되었습니다. 짧은 방학 틈틈이 떠났던 유럽 곳곳의 기행문도 담겨있는 소중한 기억 저장소였지요.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그 일기장을 바탕 삼아, 저는 세상에 한 권뿐인 책을 만들었습니다. 원고를 써서 책 만들기 사이트에서 직접 표지를 만들고, 손수 정한 제목을 입력해 넣었습니다. <나의 영국유학 이야기> 유학원을 통하지 않고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유학준비를 해서, 아무런 연고가 없는 낯선 나라로 가기 위해 회사는 휴직하고 떠났던 어른의 공부와 여행기였습니다.
그때는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거창한 포부가 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었단 것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나의 경험이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려는 다음 사람에게 꼭 필요한 정보이자 영감으로 작용하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얼마 후 실제로 회사 후배가 같은 나라, 같은 전공으로 유학을 가겠다는 결심을 말했습니다. 그때 저는 기쁜 마음으로 <나의 영국유학 이야기>를 후배에게 빌려주었습니다. "아직 출국까지는 시간이 남아있으니까, 읽어보고 꼭 돌려줘. 딱 한 권뿐인 책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그 책을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제가 물건 하나하나를 유학가방에 담느냐 마느냐 고심했던 것처럼, 후배도 똑같이 모든 물건을 다 꺼내서 대대적으로 정리하고 짐을 싸는 시간을 가졌던 겁니다. 그 과정에서 제 책은 어느 곳엔 가 휩쓸려 들어가서 찾을 수가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수년이 지난 지금, 후배는 무사히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고 지금도 저와 다정한 관계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당시에는 허전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도 그때의 책 분실 사연을 계기로 저는 정식으로 책을 출간하고 싶다는 작은 꿈 하나를 마음속에 단단히 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비록 책 한 권은 사라졌지만, 제가 경험한 것이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고, 기억이 옅어지기 전에 더 많이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었답니다. 그러니 저에게 약이 되었던 경험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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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몇 년이 흘러, 두 갓난쟁이 연년생 남매의 엄마가 되었던 저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기 위해 도서관에 자주 다녔습니다. 살림은 벅찼고, 육아는 고되었습니다. 임신부터 출산을 거치며 어느새 나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엄마라는 이름만 크게 들어선 느낌으로 살던 때였지요. 그때 우연히 도서관 정수기 뒤의 벽면에 '책 쓰기 과정 수강생 모집'이라는 포스터를 보았습니다. 에이 저건 시간 많은 사람들이나 하는 거지, 하면서 양손에 아이들의 고사리손을 잡고 집으러 돌아왔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도 계속 '책 쓰기'라는 단어가 사라지지 않더군요. 저는 남편에게 외쳤습니다. 여보! 아이들 좀 봐주세요. 나 도서관에 강의 좀 들으러 다녀올게요.
그렇게 저는 매주 토요일 도서관의 책 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비록 도서관 소장용 비매품 도서이지만 처음으로 책을 만드는 경험을 해봤습니다. 글쓰기를 배우는 학생과 다름없던 우리들은 서로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진지하게 글을 썼었고 마지막에는 5권씩 개인소장본을 받기도 했습니다. 우리 동네의 작은 도서관에서 우리들은 모두 작은 기적을 경험한 것입니다. 읽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으로 변하는 과정이 이렇게 경이롭다는 것을 각자의 마음에 새기게 된 겁니다. 30대부터 70대까지 고루 섞여있던 교실에서 각자의 머리 위로 보이지 않는 폭죽이 팡팡 터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 때 담임선생님께서 한 학생당 두 페이지씩 손으로 쓴 자기소개글을 학생수대로 복사, 제본해서 책을 만들어주셨습니다. 겨울방학중 희망하는 학생은 학교에 나와서 선생님의 일손을 도왔는데 저도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든 페이지가 모여서 책 한 권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또 한 번은 친구의 어머니께서 하드보드지에 직접 천을 입혀 만든 양장본 시집을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북아트를 접할 기회가 많지만, 당시에는 사람의 손으로 이렇게 아름답고 작은 보물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그저 신기했었습니다. 이런 소중한 경험은 훗날 중학교 때 학급문집 편집위원 활동으로 이어졌고, 학창 시절 내내 독서노트 쓰기에 열중하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읽고 쓰고 글을 모아 책을 만드는 것에 남다른 기쁨과 흥미를 느꼈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마땅히 걸어와야만 했던 길을 찾아오느라 수고했다는 말을 자신에게 해주고 싶어 졌습니다. 한때는 문예창작과에 가지 못한 것, 이과와 공대를 선택했던 것에 후회를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필요 없었다고 나를 위로하고 싶어 집니다. 그동안 다양한 경험을 하며 결국은 글 쓰는 사람이 된 것이 오히려 더 잘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 결국 저는 써야만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앞으로도 마음껏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독자의 마음에 가만히 와닿는 글을 잘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길 바라며 꾸준히 읽고, 부지런히 쓰는 제가 되어보려고 합니다. 우리 같이 해보는 거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