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이 글쓰기에 미치는 영향

전업작가로의 전향을 원할 때 고려할 점

by 바이올렛

회사를 그만둘까 하는 생각을 아주 오래전부터 해왔습니다. 거의 입사 직후부터 해왔던 것 같습니다. 막연하게 생각하던 직장생활이라는 가상의 세계를 실제로 접해보니 저의 성향과 무척이나 맞지가 않았습니다. 퇴근 후 밤에 잠들어서도 회사에 대한 꿈을 꿀 정도로, 일과 삶이 혼재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남들처럼 적응 혹은 순응하면서 살 수 있을 거라 여기고 꾹 참기를 몇 년, 세월이 흐를수록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점점 저를 점령하기 시작하더군요.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입니다. 나는 무슨 일을 하면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까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하던 때 가요. 서른이 넘어서 마침내 자아탐구를 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런데 자아탐구생활에 크게 방해가 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월급'이라는 요물이었습니다.



매달 정해진 날에 어김없이 한 달 치 수고비가 입금된다는 것은 분명히 기쁜 일이 맞습니다. 하지만 월급에는 부작용이 있다는 것을 어느샌가 눈치채기 시작했습니다. 한 달 동안 공들여 쌓아 온 나에 대한 탐구활동-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회사 말고 내 이름으로 할 수 있는 일에는 어떤 게 있을까, 미래에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이 매번 허사가 되는 느낌을 받은 것입니다. 정성껏 감아놓은 태엽이 한순간에 풀려버리는 것 같은 허무함, 당장 내 배를 불려줄 수 있는 돈이 최고라는 아둔함에 사로잡혀 매달 자아탐구활동은 흐지부지 되기 일쑤였습니다. 저는 그렇게 월단위로 들어오고, 명절 전에 더 많이 들어오는 돈에 의미를 부여하며 차츰 탐구생활 따위는 내팽개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회사에 적응하며 살게 된 것이지요. 분명히 진정으로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아서 내 삶에 솔직하고 당당해지고 싶다고 생각했던 시작점이 있었는데도 말이지요.



월급 말고도 저를 옭아매는 다른 요소들이 더 있었습니다. 쾌적한 근무환경과 포기하고 싶지 않은 복지라는 눈앞의 떡이었습니다. 쓸고 닦을 필요 없이 깔끔하게 청소된 사무실에는 부족함 없이 문구류가 제공되고, 최신형 컴퓨터와 복합기는 전문관리를 받으며 최상의 상태로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만약 퇴사한다면 당장 사무실 공간을 빌려야 하고 책상과 의자 등의 가구, 컴퓨터 등 전자제품 일체, 문구류나 간식까지 모두 제가 직접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에 어느 순간 이 모든 걸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우세하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진짜 좋아하는 일, 나의 꿈을 찾겠다는 희망은 한낱 어린아이의 장난처럼 느껴지기까지 했지요. 이건 좋은 일일까요? 나쁜 일일까요?



더구나 잘 먹고, 잘 놀고, 잘 쉴 수 있게 해주는 온갖 복지제도는 흡사 인간개조 프로젝트를 방불케 할 만큼 저를 매일매일 더 행복하고 건강한 사람으로 강제변화시킬 수도 있을 만큼 강력한 것이었습니다. 그 혜택이 가족에게까지 가능할 때에 저는 심지어 효녀 노릇까지 하게 되어 정말로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기에 이르렀답니다. 이건 모두 제가 회사에 다니고 있기에 누릴 수 있는,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과 같았습니다. 중독성이 강하다는 부작용만 빼면 완벽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어쩌면 완벽한 유토피아일지도 몰라!라는 감탄사가 나오려던 찰나, 여기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저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진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던 초심이 떠올랐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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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커지던 때쯤, 급여와 복지제도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질수록 그와는 반대로 쉽게 잃어가는 것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그 대표 격이 바로 감수성(외부 세계의 자극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성질)을 잃는 인간이 되어간다는 슬픈 현실이었습니다. 한때 팀회의에서 자꾸만 "그 일은 제가 한 번 맡아서 해보겠습니다!"같은 돌발 선언을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해서, 여전히 미혼 때처럼 똘똘하고 빠릿빠릿하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다는 욕구를 마음속에 품고 있었기에 나타난 현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선언이 반복될수록 저는 자꾸만 지쳐갔습니다. 육아에 사용할 에너지를 남겨두지 않고, 회사에서 너무 많은 일을 자발적으로 도맡아 번아웃에 빠진 것이지요. 그래서 남몰래 이런 연습을 하기도 했습니다. 입을 막고, 내밀려던 손을 스스로 붙잡아, 자꾸만 남을 도우려는 버릇을 버리자고 말입니다. 그렇게까지 감정을 차단하고,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타인을 돕고 싶고 팀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까지 억누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의 나는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내려놓고 싶었던 걸까요? 결국 몇 년이 흘러 관찰해 보니, 저는 바라던 대로 내 일이 아닌 것에는 관여하지 않는 냉담한 인간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때의 나는 만족스러웠을까요? 그게 진정한 행복이 맞을까요?



감수성과 함께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리기 쉬운 것은 내 삶의 주도성이었습니다. 앞에 나서서 튀는 행동을 했다가 조직생활에서 정을 맞는 존재가 되는 것보다, 있는 듯 없는 듯 티 나지 않게 중상 정도를 유지하는 것이 탈이 날 확률이 적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웠습니다. 그렇게 숨는 존재가 되는 게 무탈하다는 경험은 사람을 능동형에서 수동형으로 바꿀 만큼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회사일이 아닌, 내 삶의 의사결정이 필요한 순간에도 자꾸 우물쭈물 핑계를 대며 숨고 싶어 하는 나를 보고는, 견디기 힘든 순간도 있었습니다. 내 삶의 균형추는 내가 직접 맞춰야 한다는 것, 꾸준히 균형감각을 유지하고 지속해 나갈 주체는 바로 나라는 사실을 앞으로도 잊고 싶지 않습니다.



아무리 사라지기 쉽더라도 독창성은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가치입니다. 이 세상에서 나만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더욱 나의 생각, 시선, 태도와 가치관을 소중하게 대하고 싶어 집니다. 온 세상을 통틀어 하나밖에 없는 내 인생에 자부심을 갖고 살려고 합니다. 어느 회사 어느 부서의 누구로 기억되기보다는, 그냥 나라는 개인을 중심으로 내가 만들어온 인생경험 자체로 받아들여지는 좋겠습니다.



월급, 근무환경, 복지제도를 사수할 것이냐? 아니면 감수성, 주도성, 독창성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냐? 직장생활 내내 이 둘을 양팔 저울 위에 올려두고 얼마나 무게중심을 잡고자 애써왔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글쓰기가 필요했습니다. 질문은 매일 계속되었고, 여전히 답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창과 방패가 만나는 지점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기록을 이어가는 일뿐이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 질문을 품고 살아갈지 모르겠습니다. 각자에게 가장 좋은 직장생활의 마지막날은 과연 언제일까요? 저도 저의 마지막날을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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