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서점에 나의 책이 신간도서로 올라옵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제목을 치면 표지와 함께 나의 이름이 함께 뜹니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흥분과 기쁨을 고스란히 느꼈습니다. 책이 나왔다, 세상밖으로 내 책이 나온 것입니다. 이제는 그로부터도 몇 년이 지나 들떠있던 마음은 모두 가라앉았고 냉정히 출간 경험을 되돌아볼 수 있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출간한 책 두 권을 다시 정독해 보았습니다. 내가 쓴 글, 블로그에 올려서 언제든 수정 가능한 게 아닌, 이미 인쇄되어 출판이 된 책을 바라보는 심정은 복잡하고 오묘했습니다.
제일 커다란 감정은 부끄러움입니다. 무엇에 대한 부끄러움일까요? 이런 글솜씨로 그동안 출간작가 입네 하며 작가 행세를 하며 살아왔다는 것에 대한 현실 자각이 된 것입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쓰고 싶은 마음은 커다랗고, 그것을 소화해 낼 수 있는 글짓기 솜씨는 아직 마음의 크기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을요? 그래서 좋은 글을 더 많이 읽고, 소화하고, 받아들여서, 마침내 차츰 나아지는 글을 쓰고 싶다는 다짐으로 부끄러움을 가려봅니다.
또 다른 감정도 듭니다. 그것은 내 삶을 활짝 열어젖혀 모두 공개하는 데에서 오는 어색함입니다. 내가 걸어온 삶이 독자에게 펼쳐 보일만한 삶이었을까? 글로 쓸만한 이야깃거리가 될만한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나를 공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누구 마음대로 공인일까? 너무 확대해석하는 건 아닐까? 같은 생각들로 연결이 됩니다. 시어머니의 치매로 온 가족이 간병에 매달렸던 경험을 쓴 두 번째 저서 <달빛마저 나를 응원해>에는 사생활 100%가 담겨있습니다. 어디까지는 글로 쓸 수 있는 이야기이고, 어디서부터는 우리 가족의 마음에 고요히 담아두기만 해야 할지 많이 고민했고, 그 결과물을 책에 담을 수 있었지요. 하지만 누가 그 선을 정해줄 수 있다는 게 아니라 생각됩니다. 차츰 글 쓰는 인생을 살며 제가 정해가기 나름이겠지요? 공과 사, 선의와 악의를 구분할 힘을 갖고 싶어서 지금은 계속 쓰면서 감각을 찾는 중입니다.
부끄럽고 어색했던 감정을 넘어, 이어서 찾아온 감정은 간절함입니다. 모든 작가에게는 첫 책을 내던 순간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자기 책이 마음에 쏙 들었던 작가가 있을까요? 대부분 부족한 부분이 눈에 띄어 그것을 원동력으로 계속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 매진하게 되는 게 아닐까요? 저도 고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야 할 부분 투성이인 나의 글을 외면하지 않고 진득하게 붙어 앉아 자연스럽고 매끄러운 글, 읽기 전과 후에 독자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글을 쓰려고 합니다. 다행히 글쓰기는 저에게 금은보화가 보장되지 않더라도 계속하고 싶은 일입니다. 아침마다 억지로 눈을 떠서 오늘도 무사히 아무 일 없이 하루가 저물길 바라는 직장인의 삶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쓰고 싶은 글이 떠올라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삶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책 출간 후, 제게 남은 가장 큰 선물은 희망입니다. 달리 풀이하면 가능성을 본 것입니다. 지금은 책이 나온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고 인쇄에 쓰인 종이를 생각하면 나무에게 그저 고마운 마음이 들지만, 앞으로는 숲에서 나무가 베어져서 내 책에 사용된 것보다 더 큰 가치를 주는 글을 쓰고 싶고 그렇게 되는 날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하게 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행복한 사람, 과연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방황했던 기간이 길었습니다. 모두 먹고사는 이유로 적성과 맞지 않는 일을 억지로 꾸역꾸역 해내는 것이 어른의 인생일까를 생각하다 보면 좌절감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글을 쓰며 알아갑니다. 나는 한 글자씩, 한 문장씩 완성해 나가며 보람을 느끼고, 그때에 비로소 살아있다는 감정을 느낀다는 것을요. 이런 발견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은 일을 찾은 것이 좋습니다.
출간 경험은 기차 타고 가다가 잠시 중간역에 멈췄다가 다시 떠나는 정차 구간에 불과하다고 여기기로 했습니다. 당시에는 일생일대의 이벤트라 생각해서 길 지나가던 누구라도 붙잡고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서서히 담담한 일상으로 복귀하여 다시 먹고사는 일에 열중하는 평범함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영광도, 자랑거리도 아닌 평생 글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 이에게 필요한 중간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다시 평평한 땅에 내 손으로 흙을 고르고, 씨앗을 심고, 새싹을 키워나갑니다. 그렇게 매번 공평하게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글쓰기가 있어서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