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의 진짜 목표
우리는 왜 가계부를 쓰려고 할까? 그 이유를 계속 파고 들어가면, 근본적인 이유이자 궁극적인 목적을 알 수 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우리는 돈을 덜 쓰고 싶어서 수많은 방법을 시도해 왔고, 그 방법 중 하나가 가계부 쓰기일 뿐이다. 한마디로 '가계부 쓰기'는 목표가 아니고, '소비를 줄이자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도와주는 '방법'이다.
가계부는 그 효과에 비해 과대평가되고 있다. 이 과대평가에 혹한 많은 사람들이 뚜렷한 목적 없이 가계부를 쓴다. 아니면 '가계부 쓰기 그 자체'를 목적으로 여기든가. 결국 소비를 줄인다는 목적은 잊고 '완벽한 가계부 쓰기'에 집착하게 된다.
만약 회사라면 '빈틈없는 회계부를 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회계부는 공적인 영역이고 회계 감사도 받아야 하니까 '완벽한 회계부 그 자체'가 목표이다. 하지만 나 혼자, 혹은 우리 집에서만 쓰는 가계부라면? 우리가 회계 감사를 받을 것도 아니고, 내 가계부에 좀 빈틈이 있으면 어떠하리.
'소비를 줄이는 것'은 '완벽한 가계부를 쓰는 것'과 그다지 상관이 없다. 오히려 꾸준히 기록하는 걸 힘들어하는 사람은 가계부를 쓰다가 자괴감이 생길 수도 있다. 완벽하고 빈틈없는 가계부를 쓰는 건, 지나치게 힘이 많이 들어서 꾸준히 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며칠 밀렸을 때 밀린 가계부를 완벽하게 쓸 엄두가 안 나니까, 괴로워하다가 가계부 쓰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 마음을 다잡고 밀린 내역을 쓰려고 해도, 어디에 돈을 쓴 건지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카드 내역에 이니시스는 왜 이렇게 많은지. 난생처음 들어보는 상점 이름도 있고. 모든 내역을 기록한 것 같은데 잔액은 안 맞고... 그렇게 괴로워하다가 때려치우기 쉽다.
하지만, 가계부는 목적을 이루는 방법이라는 걸 잊지 말자. 이 점을 염두에 두면 완벽한 가계부 쓰기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우리는 우리의 목표인 '소비를 줄이는 것'만 달성하면 된다.
가계부가 완벽할 필요는 없지만, 지출을 기록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지출을 관리하려면 일단 내가 돈을 어디에 얼마나 썼는지 알아야 하니까.
가계부의 모든 항목을 정확하게 기록하지 말고, 꼭 필요한(절대 뺄 수 없는) 항목만 기록하자. 그마저도 빈틈이 있어도 된다. 우리는 지출 내역을 기록하려고 노력한다. 우리가 '노력을 최소한으로' 할 수 있게, '목적을 달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항목'만 기록하자. 이렇게 생각하면 가계부를 쓰는 심리적인 허들이 낮아질 것이다.
우리의 정신력은 한정되어 있다. 가계부는 쉽게 쓰고, 거기서 아낀 정신력으로 충동적인 소비를 참아내자. 이는 우리의 진짜 목적인 '소비를 줄이는 것'을 직접적으로 달성하게 한다. '사고 싶은 것 참기'는 정신력이 많이 필요하고, 가장 중요하다.
가계부는 '진짜 목적을 달성하게 하는 효과적인 방법'으로써 이용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