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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 대 만하더라, 고시원

by 자낫

사람은 두 종류로 나뉜다. 고시원에 살아본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


고시원은 고시생들만 사는 곳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임시 거주지이고 누구에게는 돈벌이이다. 2005년에 나온 박민규의 '갑을 고시원 체류기'는 고시원에 대해 리얼하게 묘사한다. "그것은 방이라기보다는 관이라 불려야 할 공간이었다."


그보다 5년 전 고등학생 신분으로 처음 접했다.

2000년 겨울, 고2 겨울방학을 맞아 서울 종로학원에 특강을 들으러 가기로 했다.

숙소가 문제였다. 서울에 사는 외삼촌이 선릉역에 있는 고시원을 알아봤다. 딱 차 한 대 만하더라. 답사를 하고 온 외삼촌의 첫마디였다.


고시원 시절이 시작되었다. 주인은 이북 사투리를 쓰는 할아버지였다. 돈 몇 백 원(몇 백만 원이 아니다)에 두 시간 넘게 싸우는 사람이었다. 침대 하나, 책상 하나가 있는 한 평 될까 말까 한 방들이 좁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양 옆으로 줄지어 있었다. 화장실과 주방은 공용이었다.


고시원 얼리 어답터로서 서울에서 주거지 (최후의) 선택지로 고시원이 마음에 자리 잡았다.

두 번째 고시원은 2008년 강남역 도보 5분 거리 고시원이었다. 주인은 역시 할아버지였고 나 역시 다시 수험생이었다. 강남역 주변에 어학원이 많아 취준생, 수험생이 주로 기거했다. 옥상에 증축한 옥탑방 공용 공간에서 주인 할아버지를 우연히 만났다. 친인척이 서울대를 나왔고 본인은 송파에 집이 있으며 조식으로 토스트에 커피를 먹는다고 했다. 그리고 옥탑방에 설치한 오디오로 클래식을 틀어줬다. 허세라기보다는 대화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두자. 그 해 11월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입시를 보고 고시원에 돌아왔다. 허탈한 마음에 어둑어둑한 강남역 근처 골목골목을 정처 없이 걷다 조용한 고급 주택가에 이르렀다. 한 곳에서는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유흥가와 학원가가 있었고, 한 곳에는 덩치 큰 저택들이 담장에 둘러 싸여 웅크리고 있었다. 이런 풍경을 높이 든 달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지막 고시원은 2011년 여름, 서울 시청역 부근이었다. 고시원 주인은 50대쯤으로 보이는 중산층 부부로 교양 있는 사람들이었다. 교양은 대화해 보면 안다. 주방에서 남자 사장을 만났는데 울릉도 여행 다녀온 이야기를 했다. 겸손하고 여유 있는, 자기 통제를 잘해 온 사람의 힘과 산뜻함이 느껴졌다. 나는 직장 생활 2년 차. 이력서에 몇 줄이 쌓이고 비자발적 퇴사를 했다. 사회 데뷔 신고식을 톡톡히 치르고 넉 다운이 된 상태였지만 다시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고시원에는 비슷비슷한 사회 초년생들이 많았다. 파스텔톤의 앙증맞은 목욕용품이 담긴 목욕 바구니를 방문 앞에 두는 사람도 있었다. 당시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전 세계를 휩쓸었는데 싸이가 세계 순회공연을 마치고 고국에 돌아와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밤새 땅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싸이는 저렇게 뛰는데 왜 살이 안 빠질까 의아해하면서 생애 최초 PT를 받았다. 다시 링 위에 서려고 몸을 다질 때였다.


고시원에 한 번 더 살 뻔한 적이 있다. 2012년 겨울이었다. 직장은 영등포구 문래동, 집은 송파구 문정동. 서울의 끝에서 끝이었다. 통근 시간만 세 시간이었다. 직장 인근 오피스텔을 천천히 알아보기로 하고 잠시 지낼 고시원을 찾았다. 경찰공무원을 준비하는 청년이 안내했다. 고시원 총무였다. 관리실 책상 위에는 전화번호부처럼 두꺼운 경찰공무원 책이, 그 옆에는 커다란 핼쓰 보조제 통이 있었다. 아주 잠시만 묵을 요량으로 가장 싼 방을 구했다. 월 23만 원 정도 했었던 듯하다. 창문이 없는 복도방(양 옆에 복도가 있는 방)이었다. 하룻밤 자고 뛰쳐나왔다. 그 공간에서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었다. 폐쇄공포증이 엄습해 왔다. 폐쇄공포증을 이길 정도로 초집중하여 붙어야 할 시험은 더 이상 없다. 앞만 보고 경주마처럼 달리며 모든 인권침해를 감수하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욕구가 고개를 들었다.


현재 고시원 혹은 다중생활시설은 서울 내에만 6천 곳이 넘는다. 2018년 종로의 국일 고시원에서 불이 나 7명이 숨진 후 정부는 고시원 각 방의 창문을 의무화했다. 창문의 크기는 화재 등 유사시 탈출할 수 있도록 너비 0.5m, 높이 1m 이상이어야 하며 외부에 면해 있어야 한다. 또, 고시원 방의 넓이는 최소 7㎡이어야 한다.


고시원은 세월호와 같이 인간의 욕심으로 빚어진 기괴한 주거공간이다. 세월호는 기름값을 아끼려고 과적하다 여러 사람이 죽었다. 고시원은 월세를 최대한 많이 받으려고 공간을 무리하게 쪼개다 인명사고가 났다. 인간의 안전과 주거 생활의 쾌적함보다 임대 수익만을 고려한 기형적인 쪽방 집합체다. 고시원 매수를 고려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인카페를 하는 게 좀 더 건전한 임대업이 아닐까 조심스레 제안해 본다. 무인카페는 일반 카페보다 커피 값이 저렴하면서 퀄리티가 어느 정도 보장되고 운영비가 비교적 적게 든다. 텀블러 가져오면 500원 할인도 잊지 말자. 아니면 텀블러 only도 나쁘지 않다. 임대업을 하려면 나도 애정할 수 있는 공간을 임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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