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생각 이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래진 Nov 06. 2020

취미는 있는데요. 특기는 없습니다.

두 번째 이주 : 취미

"취미가 뭐예요?"
- 아 저는 사진 찍는..
"와 그럼 잘 찍으시겠다!"
- 아니요.. 그냥 찍어요..


스스로 사진을 엉망으로 찍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당당하게 잘 찍는다고 말하기에는 영 찝찝하다. 사진은 민트 초코와 같아서, 취향이 맞으면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불편한 치약 덩어리가 될 위험이 있다. 무언가를 '잘' 한다는 건 묵직한 언어의 무게를 지니고 있다.

- 이 사진은 잘 찍은 사진일까

그럼에도 취미는 왕왕 특기의 연장선처럼 여겨진다. 베이킹이 취미라고 하면 정말 맛있는 빵을 구울 것 같고, 클라이밍이 취미라고 하면 산악영화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독서가 취미인 사람이 꼭 다독을 하는 건 아니고, 줄넘기를 하는 사람이 3단 뛰기를 가뿐히 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취미와 특기는 경계 없이 버무려질 때가 많다.

언젠가 사촌 동생이 고민 상담을 요청한 적이 있다. 갑자기 여유 시간이 생겼는데 평소 취미가 없어 뭘 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다소 평이한 고민이었다. 듬직한 형답게 꼭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모범 답안을 제시했지만, 다르게 말했어야 했다.

"<하루 세 끼 꼬박꼬박 먹기>가 취미가 되어도 좋다. 취미는 특기가 아니니까 잘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사소하더라도 좋아하는 것을 취미라고 말해보는 게 어떨까? "라고 했어야 한다. 무엇을 할지 모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시작할지 모르는 것에 가까운 동생에게는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이제 와서 형 노릇을 하기에는 간지러우니 동생은 오지 않을 나만의 섬에 빛바랜 상담일지를 남긴다. 취미와 특기로 고통받는 수많은 미지의 동생들이 이 글에서나마 부담을 덜었으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동생은 최근 등산을 시작했다.



글쓰기 모임 <이주>

이 주에 한 편씩 생각을 글로 옮겨요


매거진의 이전글 라면과 국수 그 사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