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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래진 Oct 22. 2020

라면과 국수 그 사이

첫 번째 이주 : 소울푸드

라면은 맛있다.

간단하지만 진리인 이 명제는 웬만해선 거짓이 되지 않는다. 물론 종종 예외는 있다. 나에겐 외할머니의 라면이 그랬다.


할머니는 라면에 소면과 김치를 꼭 넣으셨다. 소면의 전분으로 인해 걸쭉해진 국물 속에 시큼한 김치의 맛이 더해져 수프 대신 건강 한 스푼을 넣은 듯한 라면. 아니, 라면인지 국수인지 모를 이 면요리는 라면 국수 또는 라국수로 불린다지만, 우리 집에선 그저 '할머니 라면'이었다.


할머니 라면은 엄마의 유년시절부터 시작됐다. 식구는 많고 라면은 귀해서 소면을 많이 넣고 일부러 면을 퉁퉁 불려 양을 늘렸다고 한다. 그마저도 라면은 삼촌에게만 퍼주고 남은 국수와 김치 쪼가리는 엄마와 이모들의 몫이 되었던 지난했던 시절의 상징.

나는 그 시절의 엄마 나이가 될 즈음, 엄마가 자랐던 시골집에서 엄마가 다녔던 시골 초등학교를 다니며 엄마가 먹었던 할머니 라면을 먹었다. 엄마를 닮아서인지 나도 그 라면을 썩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구멍가게 하나 없는 산골마을에서는 불어 터진 라면도 감지덕지였기에 꾸역꾸역 먹곤 했다.


처음으로 직접 끓여본 할머니 라면


퇴근 후 마트에서 소면과 안성탕면을 사서 할머니 라면을 끓여봤다. 할머니가 그랬듯이 소면을 많이 넣고, 할머니의 비법을 이어받은 엄마와 이모들의 김치도 뭉텅뭉텅 썰어 넣었다. 그래서인지 할머니 라면은 그 맛 그대로였고, 여전히 내 취향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영혼은 국물처럼 찐득해졌다.


생경한 시골 동네에 놓인 어린 손자에게 할머니는 본인의 기억 속에서 아이들이 가장 잘 먹던 음식인 라면을 먹였다. 더 이상 라면이 귀한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린 손자는 매일 투정만 부렸지만, 그래도 풀때기가 전부인 시골 밥상에서 라면은 도시의 맛에 가장 가까웠다. 그렇게 서울 촌놈은 도시와 시골의 사이에서 라면과 국수를 섞어 먹으며 낯선 시골 밥상에 적응해갔다.


언젠가 낯설고 어색한 환경에 놓이는 때가 오면 냄비에 물을 다시 올려야겠다. 소면과 김치를 많이 넣고 면을 퉁퉁 불려 걸쭉하게 먹어야겠다. 여전히 취향에는 맞지 않겠지만, 헛헛했던 마음은 오늘처럼 찐득하게 채워질 테니까.  




글쓰기 모임 <이주>

이 주에 한 편씩 생각을 글로 옮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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