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래진 May 17. 2023

난파선의 잔해에 기대어

낯선 도시의 시내버스에서 생면부지의 남자가 울고 있었다. 남자는 말끔한 정장을 입은 채 연신 굵은 눈물을 흘렸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어깨너머로 보인 그의 핸드폰 속에서는 귀여운 게임 캐릭터가 방긋 웃고 있었다.


게임으로 슬픔을 잊고 있는 걸까. 아니면 슬픔과 재미를 별개의 감정으로 분류하는 이성적 판단의 소유자인 걸까. 만약 낯선 도시의 남자가 나였다면, 짐작건대 슬픈 상황에서 게임으로 도피해야만 하는 내 현실이 슬펐을 것이다.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는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난파선의 잔해라도 간절하다. 소용돌이의 중심으로 심신이 빨려 들어가고 있다면, 작은 나무토막이라도 끌어안고 숨 고르기를 해야 한다. 그가 핸드폰을 끌어안고 있었듯이 어딘가에 몸을 기대 소용돌이를 견뎌야 한다.


더 깊이 가라앉지 않기 위한 그의 모습이 쉬지 않고 무언가를 하고 있는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와 나, 그리고 모든 난파선의 선원들이 무사히 항해하기를 기원하며 수면 위에 유리병을 띄워 보낸다.

매거진의 이전글 청춘의 채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