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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각시 Feb 26. 2020

나를 살아가게 하는 것들

[서른, 무직입니다만 07]

서른 무직입니다만
서른 살 백수. 시험용 글쓰기가 아니라 내 얘기를 쓰고 싶어서 시작한 에세이.






“언니는 어쩜 그렇게 멘탈이 강해요?”


몇 년 전 스터디원 중 나보다 두세 살쯤 어린 동료가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물었다. 멘탈 관리 비법 같은 걸 알려달라는 뉘앙스였다. 천진한 얼굴과 태연한 태도에 화가 났다. 동료의 판단과는 반대로 당시 내 멘탈은 상당히 흔들리고 있었다. 스터디에 꼬박꼬박 나가고, 대놓고 앓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함부로 내 상태를 진단하고 내게 처방을 구하는 것은 너무나 무례한 태도가 아닌가. 이 친구에게 난 전혀 괜찮지 않음을 피력해야 하는 것도 우스워 적당히 웃어넘겨버렸다.


스터디원.. 눈치 챙겨..


시간이 흘러 나도 이 동생과 같은 실수를 범했음을 고백한다. 스터디를 같이하는 언니에게, 언니는 요새 안 불안해요?라고 물어본 것이다. 당시 나의 멘탈은 산산조각 난 상태였다. 그래서 나보다 오래 공부한 언니에게 내가 느끼는 불안에 대한 동의를 구하고 싶었고, 또 언니는 이를 어떻게 이겨내고 있는지 배우고 싶었다. 언니의 대답을 듣자마자 바로 이러한 질문을 던진 것이 미안해졌다.


“늘 불안하죠, 불안은 그냥 끌어안고 함께 사는 거예요. 극복하는 게 아니라.”


언니 역시도 불안과 싸우며 발버둥 치고 있었던 것이다. 애초에 불안을 극복하는 팁 따위는 없었다.


언니의 말마따나 나를 비롯한 취업준비생들은, 특히나 그 기간이 길어질수록 불안을 피할 수도 극복할 수도 없어서 그냥 끌어안고 산다. 때로는 불안에 KO패 당해 잡아먹힌다. 이럴 때 나는 대체로 무기력증에 빠졌다. 어떤 것에 대한 의욕도 0에 수렴해버리고 마는 상태.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워 잠을 거부했다. 그러면 새벽 4시쯤 잠들어서 다음날 해가 중천에 떠서야 깨고, ‘아 오늘 하루 망했다’라는 정서가 그날 하루를 지배해버리는 패턴. 누군가 이를 슬럼프나 매너리즘에 빠진 것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내 경우에는 생에 대한 의지와 의미 자체를 잃어버린 나날들이었다.


그 어떤 것에 대한 의욕도 없는 상태가 상당 기간 지속됐다.


나는 왜 살아야 하나, 왜 이토록 고통스럽고 지긋지긋한 생을 지속해야 하나. 이런 물음들이 내 머릿속을 장악해가던 무렵. 이 와중에도 야속하게 배꼽시계는 정확히 울렸고 매 끼니를 챙겨 먹어야 했다. 이 와중에도 조카들이 집에 찾아와 미취학 아동들을 돌봐야 했다. 이 와중에도 이사는 가야 해서 부동산과 관리사무소, 은행 등을 오가며 여러 업무를 처리해야 했다. 모든 걸 다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이 찾아와도 ‘왜 사는가’에 대해 깊게 고민해볼 시간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일상의 너절한 문제들이 밀물처럼 무자비하게 밀려들었다.


세끼를 먹고 나면 하루가 지나가 있고, 내 눈앞에 닥친 현실의 문제들을 하나하나 처리하다 보면 또 이틀이 가 있었다. 이렇게 지극히 일상적인 하루하루를 견뎌내다 보니 어느새 마음의 파도는 가라앉고 불안을 끌어안은 채 또 그럭저럭 살아졌다. 시시하고 대수롭지 않은 일상적 요소들이 나를 살아가게 했다.



나를 살아가게 하는 것들에 관한 목록을 쓴다면 최근 추가된 항목 중 하나가 책이다. 책이 내 일상에 깊게 침투한 탓이다. 시작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7년 말, 아 올해도 이렇게 백수로 마무리되는구나 라며 한 해를 보내고 있을 때 어떤 언니(위에 언급된 언니와는 또 다른 언니다)의 말이 떠올랐다. 본인이 취준생 시절 가장 힘들었을 때 1일 1책을 시전하며 그 날들을 버텼다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실용적 독서에 익숙해져 있었다. 지식을 습득하는 용도로만 책에 접근했고, 내게 필요한 부분만 뽑아 읽다 보니 발췌독이 주된 독서법이었다. 지식을 얻으려는 목적을 버리고 첫장부터 끝장까지 책 자체를 음미하다 보면 책을 좀 더 즐길 수 있고, 언니처럼 나 또한 버틸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2018년 새해 계획 중 하나로 30권을 완독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공부할 때만 책을 봤다.


2018년 새해 목표는 완수되지 못했다. 26권 완독에 그쳤다. 하지만 30이라는 숫자는 사실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작은 목표를 설정하고 이뤄나가며 나와의 약속을 지켜내는 과정 자체가 탈락, 즉 실패로만 점철된 내 인생에 작은 성취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라는 소설 속 문장을 읽으며 위로를 얻었고, 낸시 프레이저와 악셀 호네트의 대담을 읽으며 지적 확장을 경험하기도 했다. 책의 문장과 그 안에 담긴 철학은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 나라는 사람을 구성해갔고, 또 생을 지속하는 단단한 지반이 돼주었다.


2018년 계획은 2019년에도 계속됐다. 2019년도 마찬가지로 26권 완독으로 마무리됐다. 올해 목표는 상향 조정됐다. 지난해 11월 최종에서 (또) 떨어진 뒤 집념의 독서, 강박적 독서를 하기 시작한 탓이다. 의도가 불순해도(?) 기왕 이렇게 된 거 올해는 한 달에 최소 4권을 완독할 계획이다. 지금까지는 무난히 완수 중이다.


독서를 하지 않을 때에도 요즘 내 일상의 중심엔 책이 놓여 있다. 유튜브 재생목록은 북튜버가 점령해버렸고, 빨간책방 팟캐스트도 다시 듣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쯤 가던 독서모임을 매주 가고 있으며 책 리뷰도 틈날 때마다 쓰고 있다(브런치에!). 강박은 습관이 됐다. 내게 책은 더 이상 공부만이 아닌 유희이자 취미고 일상이 됐다. 지난주 또다시 한 곳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신 뒤에는 지난 일주일 간 거의 책만 봤다. 요즘 나의 생은 책이 이끌어가고 있다.


사람은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이에 대한 답은 없다. 사람마다 각자의 해답만이 있을 뿐. 인생은 어떤 진리를 좇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삶에 고유한 가치를 부여해 나가면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취업과 미래에 대한 도피 차원에서 책에 매달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지만 뭐 어때. 책을 더 사랑하게 된 삶이 나쁘지 않으므로 당분간 이를 유지할 생각이다. 나는 이렇게 살아가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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