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계 과학 이야기. 이재우 지음
읽으면서 내내 즐거웠다. 책을 읽다가 수식이 나오면 골치가 아파서 이내 책을 덮어버리기 일쑤였는데 이 책만큼은 수식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그리고 흥미롭게 다 읽었다. 읽으면서 '다시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라는 마음까지 들었다. 과학에 대한 저자의 깊은 사색과 열정, 그리고 이야기를 편안하게 풀어나가는 그 능숙함이 문장 하나하나에 잘 어우러져 있어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제목에 나와 있는 것처럼 이 책은 과학/물리학 중에서는 복잡계 과학에 관한 이야기다. 우선 복잡계 Complex systems에 대해 알아보자. 저자는 '복잡게는 질서와 무질서 사이에 존재하는 시스템'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질서는 이런 것이다. 누구나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는 것들. 규칙성과 대칭성을 갖는 시스템. 그 시스템 안에는 질서가 있어 과학적으로 분석이 가능하다. 무질서는 일견 예측이 안 되는 예측 할 수 없는 어떤 상태를 말한다. 예를 들어, 물에 떠 있는 꽃가루는 가만히 있지 않고 지그재그로 움직인다. 어떤 규칙성을 발견할 수가 없어 보인다. 방 안의 공기 분자들 역시 제멋대로 충돌하면서 불규칙하게 움직인다. 질서가 없어 보인다.
사례를 사회로 옮겨보자. 자본주의 사회의 개인들은 누구나 자신 욕망에 최적화된 선택을 하게 된다. 국가와 시장은 이 메커니즘을 법과 제도를 통해 유지, 운영한다. 이것은 질서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는 순간 이 질서가 붕괴되는 이벤트가 발생한다. 대공황 또는 블랙몬데이가 그런 사례다.
생물학에서 사례를 찾아보자. 철새는 때가 되면 무리 지어 가야 할 곳으로 정확하게 날아간다. 그러나 이 철새무리에는 리더가 존재하지 않는다. 질서라고 할만한 어떤 체계가 보이지 않는다. 사자나 하이에나와는 다르다. 무엇이 이 비행을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
복잡계 과학은 이렇게 질서와 무질서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관련성, 규칙, 질서 등을 찾아 정리하고 분석하고 그것의 과학적 의미, 나아가서는 사회적 활용에 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아래 목차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연구분야가 사실상 무한정이다. 진화생물학에서 도시의 탄생과 발전, 근대 자연과학의 재구성, 주식과 전염병 확산 분석 등 거의 모든 분야가 그 대상이다. 저자는 이 여러 분야를 열네 개 챕터로 나누어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각 챕터 첫 부분에는 특정 분야에서 복잡계 연구가 필요한 이유, 그동안의 성과 등이 이야기식으로 잘 설명되어 있어 읽기가 편하다.
물론 과학도가 아닌 나 같은 인문학도들에게는 중간중간 어려운 부분들도 분명 있다. 그런 부분들은 그냥 스킵해도 전체 이해에는 별 영향이 없다. 질서와 무질서의 변증법이라는 복잡계 과학의 서사만 머리에 남아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중간중간 저자의 라이프 스토리는 보너스다. 저자의 솔직한 이야기들이 독서의 즐거움을 더해주고 이 책의 진실성을 고양시키고 있다.
한국인 과학자가 쓴 책 중에서 제대로 읽은 유일한 책이다. 저자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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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1장 / 이머징
1.1 많으면 다르다!
1.2 멱함수 법칙
1.3 파레토의 법칙과 80-20 법칙
1.4 스케일 없는 도시
1.5 여섯 번째 대멸종
1.6 시장의 축척
2장 / 복잡계 과학의 역사
2.1 결정론에서 혼돈으로
2.2 시스템 다이내믹스와 행위자 기반 모형
2.3 몬테카를로 방법
2.4 산타페 연구소
3장 / 복잡계 네트워크
3.1 네트워크의 기초
3.2 무작위 네트워크
3.3 좁은 세상망
3.4 스케일 프리 네트워크
3.5 커뮤니티 구조
3.6 네트워크 중심성
4장 / 혼돈 이야기
4.1 기계론의 종말
4.2 나비효과
4.3 비선형 동력학
4.4 낙숫물과 혼돈
4.5 끌개 지형
5장 / 혼돈 길
5.1 빵 반죽 원리
5.2 갈래질
5.3 방식 고착화
5.4 간헐성과 파국
5.4 혼돈 현상은 복잡계가 아니다
6장 /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6.1 프랙털
6.2 프랙털을 사랑한 자연
6.3 프랙털 수학
7장 / 우리 곁의 프랙털
7.1 번개 프랙털
7.2 유한확산 음집체
7.3 프랙털 구조의 발현 원리
7.4 프랙털 시계열
7.5 프랙털 아트와 프랙털 음악
7.6 DNA 프랙털
7.7 프랙털은 복잡계인가?
8장 / 끓기 직전의 뇌
8.1 모래더미 패러다임
8.2 단속평형과 멸종
8.3 펄펄 끓는 뇌
9장 / 경제사회물리학
9.1 사회물리학의 탄생
9.2 경제물리학의 탄생
9.3 사회물리학
9.4 선거모형과 의견 동력학
9.5 부의 불평등
9.6 주식시장의 물리학
10장 / 행위자 기반 모형
10.1 행위자 기반 모형이란?
10.2 외부환경
10.3 시스템 공간
10.4 행위자
10.5 시뮬레이션
10.6 인종격리 모형
11장 / 시스템 다이내믹스
11.1 시스템 사고
11.2 인과 지도
11.3 시스템 사고의 원형
12장 / 도시 복잡계
12.1 도시의 스케일링
12.2 도시의 중력법칙
12.3 도시 네트워크
12.4 프랙털 도시
12.5 보행 동력학
12.6 알갱이 유체
12.7 교통흐름의 자기 조직화
13장 / 생태 복잡계
13.1 생태계 네트워크
13.2 인구 동력학 모형
13.3 메르스와 코로나-19
13.4 구획 감염병 모형
13.5 씽크와 무리지음
14장 / 엑스 이벤트
14.1 엑스 이벤트
14.2 엑스 이벤트의 특징
14.3 대한민국 엑스 이벤트 조망
14.4 엑스 이벤트 대비
14.5 초인공지능은 출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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