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세계적인 메신저 앱 텔레그램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파벨 두로프가 지난 24일 프랑스 경찰에 체포됐다. 이용자 수가 전 세계적으로 9억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텔레그램의 지분 100%를 갖고 있는 두로프는 지난 주말 파리 외곽 부르제 공항에서 자신의 전용비행기를 착륙시켰다가 체포됐다. 체포 이유에 대한 프랑스 당국의 공식 발표는 없었지만, 두로프가 텔레그램을 통해 이뤄지는 마약 밀매, 아동 착취, 테러 등의 범죄를 방조했다고 보고 체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두로프는 프랑스 정부뿐만이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 정부에서 범죄수사 협조 요청을 받았지만, 협조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연합뉴스TV 보도화면 갈무리
파벨 두로프가 체포되었다는 뉴스는 언론과 SNS를 통해 즉각 전 세계로 확산됐고, 두 개의 서로 다른 논평을 끌어냈다. 하나는 두로프를 체포한 것이 정당하다는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두로프의 체포가 결국 표현에 대한 억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의견이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텔레그램의 장점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테러리스트들과 극단주의자들, 마약상들이 텔레그램의 보호막 아래 모여들었다"며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반면 테슬라 회장이자 SNS X(옛 트위터) 소유주인 일론 머스크는 두로프가 최대 징역 20년형에 처할 수 있다는 트윗에 "2030년 유럽에서는 어떠한 밈에 '좋아요'를 눌렀다는 이유로 처벌받겠다"라며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다.
국내 언론은 경향신문만 사설을 통해 “성범죄 피해자의 피눈물을 외면하고 범죄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 텔레그램에 한국 정부도 강력한 조처를 해야 한다.”라고 주장하고 있고 대부분의 언론은 팩트 위주로 보도하고 있다. 그동안 최근까지 텔레그램을 통해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마약 밀매, 성착취 등 강력 범죄 등을 생각한다면 비교적 온건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2019년 2월부터 2020년 3월까지 텔레그램을 통해 불법 음란물 유포 및 거래한 디지털 성범죄 사건(소위 n번방 사건)으로 전 국민이 충격을 받았고 아직도 그에 대한 기억이 생생한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연합뉴스TV 제공]
그러나 텔레그램 최고경영자에 대한 체포가 정당한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것들이 있다. 두로프는 텔레그램이 누군가에 의해 검열되는 것을 처음부터 강하게 반대해 왔다. 표현의 자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2012년 초 러시아에서 일어난 반푸틴 시위 당시 그가 시위행진을 조직하는 단체가 운영하는 텔레그램 방을 폐쇄하라는 당국의 요구를 거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술적으로 대화 내용 해킹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정부 당국이 취할 수 있는 조처는 텔레그램 운영 회사에 압력을 가해 사용 중지를 요청하는 것뿐이지만 두로프는 이 요청을 거부했다. 이후 텔레그램은 홍콩, 이란, 벨라루스, 러시아 등 전 세계의 민주주의 시위대의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이 되었다.
텔레그램이 반정부 또는 정부 비판 세력에게 인기 있는 이유는 일단 서버가 자국 내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카카오톡의 경우 국내에 서버가 있고 대화 내용이 일정 기간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사법당국의 감청영장이 있으면 바로 열람돼 모든 통신 기록이 노출될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텔레그램의 종단간 암호화에 있다. 텔레그램의 비밀 대화 기능은 종단간 암호화를 적용하여 두 단말기 간에서만 복호화가 가능한 비밀키를 이용한다. 이 경우, 서버는 암호화된 메시지를 단순히 전달해 주는 기능만을 하기 때문에, 서버에 감청영장이 부과되어도 볼 방법이 없다. 여기에 추가로 자동 대화 삭제 등의 기능도 제공된다.
주러시아 프랑스대사관에 놓인 두로프 체포에 항의하는 종이비행기 [타스 연합뉴스]
이런 이유로 정부에 의해 탄압받는 반체제 그룹들이 텔레그램을 선택해 그들의 신념과 행동을 확산시키는 데 이용했고 텔레그램을 만든 두로프는 언론의 자유 옹호자라는 칭송을 받아 왔다. 문제는 텔레그램의 이런 기술적 환경이 모두에게 개방적이라는 사실이다. 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운 개방형 앱이라서 누구라도 아무 때나 무료로 가입할 수 있다. 이런 개방성과 보안성 때문에 정부 비판 세력뿐 아니라 범죄자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사법당국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계속 늘어나는 강력 범죄, 교묘해지는 수법, 추적하기 힘든 흔적 등 많은 것들이 텔레그램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신중하게 대답해야 할 질문이 여기에 있다. 만약 텔레그램이 해당국가 사법당국에 범죄자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면 범죄가 줄어들 수 있을까, 하는 문제다. 답하기 쉬운 문제가 아니다. 범죄는 늘 새로운 통로를 찾아 움직였고 기술은 이를 용이하게 만들어 왔다. 기술 때문에 범죄가 가능한 것이 아니라 범죄의 동기들이 기술적 돌파구를 만들어 온 것이다. 또 다른 질문은 플랫폼이 오용되는 경우가 있다고 해서 플랫폼에 대한 법적 강제를 부과하면 플랫폼을 선용하는 경우의 피해는 어떻게 보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질문들은 단지 텔레그램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기도 하다. 쉽지 않지만, 성숙한 논의가 필요한 시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