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SNS를 통해 유포되는 가짜뉴스 때문에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가짜뉴스에 대처하는 흥미로운 솔루션이 브라질에서 등장했다. 브라질 연방대법원은 지난달 30일 ‘X가 벌금 1850만 달러(약 250억 원)를 내지 않고, 법률 대리인을 선임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X의 접속을 차단하라고 결정했다. 이번 결정을 주도한 대법관 알레샨드리 지 모라이스는 “X에 부과된 모든 법원 명령이 준수되고, 벌금이 적절히 납부되고, X의 새로운 법률 대리인이 임명될 때까지" 브라질에서 X의 "운영을 즉시, 완전하고 전면적으로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모라이스는 브라질 국가 통신 기관에 법원의 결정을 24시간 이내에 집행하도록 통보했다.
연방대법원의 결정 통보를 받은 국가 통신기관은 전국의 20,000개가 넘는 광대역 인터넷 공급업체에 대법원의 명령을 전달했고, 각 공급업체는 즉시 X를 차단하기 시작했다. 회사마다 차단하는 시기는 좀 달랐지만, 연방대법원의 결정은 글자 그대로 '즉시 그리고 완전하고 전면적으로' 시행되었다. 연방대법원의 이런 단호한 결정은 X가 가짜뉴스와 증오 메시지 유통에 책임이 있다고 판단해 적절한 시정 조치를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의 결정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법원의 결정 이후 X의 소유주인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는 “브라질이 '진실의 1순위 출처를 봉쇄'하고 있고, 이는 검열에 해당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브라질에서 차단된 일론 머스크 엑스 계정과 브라질 국기(일러스트) [상파울루 로이터=연합뉴스]
이번 브라질 연방대법원의 X 폐쇄 결정은 지난 4월 X에 내린 일부 계정 차단 명령에서 시작되었다. 2022년 브라질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전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를 지원한 "디지털 민병대, digital militias”가 당시 선거 기간 중 X를 통해 가짜뉴스를 유통시켰다는 첩보를 입수했고, 사정당국은 수사 끝에 디지털 민병대의 혐의를 입증했으며, 법원은 X에게 디지털 민병대 계정을 차단하라고 결정했다. 오는 10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디지털 민병대가 계속 가짜뉴스를 유통시킨다면 정치적 혼란이 야기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기 때문에 계정 차단 명령을 내렸는데 일론 머스크가 이를 거부한 것이다.
연방대법원의 X의 폐쇄 결정은 브라질 대통령 룰라까지 끌어들였다. 머스크가 법원 결정에 비난한 것에 대해 질문을 받자, 룰라는 “머스크가 브라질 연방대법원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이 나라는 결코 주권을 가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룰라는 당연히 법원 결정에 동의하면서 법원의 결정이 브라질 주권에 기초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브라질 안에서 자행된 가짜뉴스 확산에 대하여 브라질 당국은 브라질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재발 방지에 필요한 모든 조처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표현의 자유와 관련 없는, 재발 우려가 있는 범죄 집단 준동을 막기 위한 사법적 판단이라는 것이다.
텔레그램, 엑스 로고 이미지(사진=연합뉴스)
연방대법원의 이번 결정은 가짜뉴스 방지와 관련해 중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가짜뉴스와 딥페이크 성착취물 등은 대부분은 글로벌 SNS를 통해 유통, 확산되기 때문에 일국 차원에서는 통제하기가 어렵다. 수사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개별 국가 차원에서 자국 민주주의와 인권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가짜뉴스와 불법 영상물 확산에 대한 적극적 조처는 분명 필요하다. 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유린하거나 그럴 개연성이 다분히 있다고 법원이 판단할 경우 SNS에 대한 적절한 제어는 분명 필요하다. 브라질 연방대법원이 올 4월 X에 내린 일부 계정 차단 명령은 이런 맥락 안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결정은 수사당국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법부 판단에 의지할 필요가 있고 신중해야 한다. 사법부는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라는 두 가치 사이에서 신중한 포지션을 유지할 필요가 있고 때로는 단호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소셜 미디어 계정이 타의에 의해 폐쇄될 경우, 국민들은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다양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를 잃게 된다. 반면에 잘못된 정보와 혐오 발언이 확산되는 것을 막는 것은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데 필수적이다. 특히 선거 기간 동안 거짓정보가 대중에게 영향을 미쳐 선거 결과를 왜곡할 위험이 크기 때문에, 법원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처를 해야 한다.
8월 29일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서울여성회와 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동아리 주관으로 딥페이크 성범죄 규탄 여성 시민·대학생 긴급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최근 딥페이크 성착취물로 인한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AI 기술의 발달로 누구라도 쉽게 성착취물 제작이 가능해지면서 피해는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적절한 예방책은 전무한 상태다. 피해 사실이 알려진 경우에도 범인 검거 및 성착취물 삭제까지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해결 안 되는 경우도 많다. 국회에서 딥페이크 방지 및 강력한 처벌 등의 내용을 담은 여러 건의 법률이 제정되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발효되기에는 아직 긴 시간이 남았다. 브라질 연방대법원의 이번 결정이 최선의 선택은 아닐지라도 민주주의와 인권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