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여론 마르셀 모스
이 책의 내용이 가라타니 고진의 '힘과 교환양식'에서 자주 언급되는 관계로 사서 읽었다. 고진은 교환양식을 통해서만 - 생산양식이 아닌 - 역사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고, 미래를 설계/추동할 수 있다고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고 이 증여론은 자신 이론의 일부를 적절하게 입증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결론 부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의 도덕과 생활 자체의 상당한 부분은 언제나 의무와 자발성이 혼합된 증여의 분위기 속에 머물러 있다. 모든 것이 아직도 구입과 판매라는 점으로만 분류되지 않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시장가치밖에 없는 물건들이 많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아직도 시장가치 외에 감정 가치를 가지고 있다. 249
상품경제 이후 교환의 대상인 물품과 서비스는 구매와 판매의 메커니즘 속에서 일회용으로 전락됐다. 사람들은 화폐를 통해 구매하고 소비하고 폐기한다. 이 과정에서 상품과 서비스는 인간과 분리되고 인간을 소외시킨다. 그 상품과 서비스 안에 그래도 여전히 시장가치 외에 감정 가치가 있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인류학적 고찰을 통해 폴리네시아. 안다만 제도, 캐나다 서해안 원주민들이 부족 내외부와 어떤 교환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지 연구 분석하고 있다.
이들은 모든 것에 영혼 또는 감정이 있다고 믿는다. 확대된 애니미즘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준다는 것은 내 영혼 또는 어떤 감정까지 같이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받은 사람은 준 사람에게서 물건만 받은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영혼/감정을 동시에 받았기 때문에 그 물건은 온전히 자기 소유가 아니다. 잠시 자기가 맡고 있을 뿐이다. 자기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돌려 주어야 한다.
이런 교환 관계가 확장되면서 포틀래치와 쿨라 교환 등으로 이어진다. 많은 것을 받은/얻은 사람은 - 그것이 타인에게 받았든 또는 자연으로부터 받았든 - 그만큼 돌려줘야 한다 또는 분배해야 한다. '폭력적' 분배라고도 할 수 있는 포틀래치가 성행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되돌려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고진은 이 교환 관계를 고대/중세/근대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프레임으로 이용하고 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는 안전과 노동, 질서와 군역 등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교환함으로써 국가사회를 구성/유지해 왔다. 자본주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이 교환 관계에 내재되어 있던 어떤 가치들이 훼손되어 지금은 다시 오래 전 시대의 교환 관계의 복원이 필요하다는 것이 고진의 주장이다.
근데 왜 오래전 사람들은 물건에 영혼이 있다고 믿었을까.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 노력, 정성 모든 것을 쏟아부었기 때문에 자신과 동일시 했고, 따라서 누군가에게 줄 때 - 자의든 타의든 - 무척 서운했을 것이다. 그 서운한 마음을 달래는 자기 최면 중 하나가 언젠가는 그 물건이 되돌아올 거야 또는 다른 누군가에게 더 큰 것으로 보답받을 거야,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아닐까.
대부분의 인류학책이 그렇듯이 이 책 역시 전공자가 아니면 읽기 싶지 않다. 어려워서가 아니라 비체계적이고 사례 중심이고, 그 사례들이 어떤 일관성을 갖고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이고 특수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꿈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논리적 구성과 개념적 언어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낯설 수밖에 없다. 여러 사람/부족들의 이야기를 경청한다는 면에서 인류학자는 성직자와 같다. 자신의 가치관과 분석 틀을 내려놓고 참고 기다리면서 듣고 관찰하고 기록하고 또 따른 곳에서 이런 과정들을 반복한다. 그렇게 아주 오랜 기간 원주민들과 호흡하다가 어느 순간 사례들을 꿰뚫는 하나의 인류학적 서사를 구성한다. 이 책은 그런 결과물 중 최상의 작품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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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선물 주고받기와 인간의 실체/류정아
서문-증여, 특히 선물에 답례해야 하는 의무에 관해서
제1장 교환된 증여와 답례의 의무(폴리네시아)
1. 전체적인 급부: 남자 쪽의 재산과 여자 쪽의 재산(사모아 섬)
2. 주어진 물건의 영(靈: 마오리족)
3. 그 밖의 주제: 주어야 하는 의무와 받아야 하는 의무
4. 각서(覺書): 인간에 대한 선물과 신에 대한 선물
- 그밖의 고찰: 희사(喜捨)
제2장 증여체계의 발전-후한 인심, 명예, 돈
1. 후하게 주는 규칙(안다만 제도)
2. 선물 교환의 원칙, 동기 그리고 강도(멜라네시아)
- 그밖의 멜라네시아 사회
3. 북서부 아메리카
- 명예와 신용/세 가지 의무:제공.수령.답례/물건의 힘/'명예화폐'/첫번째 결론
제3장 고대의 법과 경제에서 증여 원칙들의 잔재
1. 사람에 관한 법과 물건에 관한 법
- 아주 오래 전의 로마법/주해(註解)/그밖의 인도유럽어족의 법
2. 고전 힌두법
- 증여의 이론
3. 게르만법: 담보와 증여
- 켈트법/중국법
제4장 결론
1. 도덕적인 결론
2. 경제사회학적. 정치경제학적 결론
3. 일반사회학적. 도덕적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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