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지난달 16일 통신심의소위원회(통신소위)를 열고 인플루언서 두 사람이 요청한 나무위키 특정 페이지 삭제 요청을 수용하여 접속차단을 의결했다. 일반적으로 특정 사이트에 잘못된 정보가 업로드되면 피해자가 해당 사이트를 운영하는 회사나 단체에 삭제 또는 수정을 요청한다. 요청받은 곳에서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을 때는 관련 기관에 신고하거나 법적 조치를 진행하게 된다. 그러나 나무위키처럼 해외에 사무실이 있고 국내에 대리인이 없을 때는 해결방안이 다를 수 있다. 메일을 통해 여러 차례 삭제 또는 수정을 요청했음에도 진전이 없거나 적절한 해결방안을 모를 경우 국가기관이 바로 나서기도 한다.
방심위 통신소위가 내린 결정이 이것이다. 방심위는 결정을 내리기 전 보통 사이트 운영자에게 의견 진술의 기회를 주지만, 이번에는 그런 과정 없이 바로 접속차단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방심위는 나무위키의 의견진술 없이 인터넷서비스사업자들에게 나무위키의 해당 URL 차단을 요청했다. 방심위가 나무위키 특정 페이지 접속차단을 의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런 조처에 대해 나무위키는 일단 반발하고 나섰다. 나무위키는 권리침해를 막기 위해 적절한 제도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었는데도 방심위가 어떠한 사전 조율 없이 일방적으로 접속차단을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설명 자체도 없이 나무위키 특정 페이지를 차단했다는 것이다.
나무위키 로고
차단 결정 후 나무위키는 개인정보 관련 지침을 개정했다. 규칙 개정을 추진한 편집 구성원은 지침 개정이 방심위의 차단 결정과는 별개라며 개인정보 보호 차원이라고 밝히고 있다. 개정 주요 내용 중 하나는 정보 출처의 강화다. 나무위키에 공개되는 정보의 출처를 기존 ‘언론매체의 보도’에서 ‘제도권 언론의 보도’로 강화했다. 구체적으로 뉴스통신사, 주요 일간지, 방송사 등에서 보도한 내용으로 한정하고 인터넷신문과 주간지, 월간지 등은 제외했다. 개정 이전보다는 개인정보 보호가 한층 강화됐다. 적어도 제도권 언론에서는 게이트 키핑이 적절히 작용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번 조처가 모든 것을 해결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좀 더 진전된 방향으로 개선된 것은 분명하다.
이 정도에서 끝날 줄 알았던 나무위키 사태를 재점화시킨 것은 국민의힘 김장겸 의원이다. 김 의원은 지난 10월 21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나무위키가 디지털 성범죄, 저작권 침해, 개인정보 침해 등 온갖 불법 행위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면서 나무위키를 운영하는 '우만레 S.R.L.(우만레)’이 파라과이에 소재를 두고 있어 국내법을 무시하고 있으며 세금도 안 내고 운영자 신원도 알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또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나무위키가 이러함에도 “한국의 좌편향 매체들은 ‘이용자들이 공동집필하는 온라인 백과사전’ 이라며 옹호하고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운운하기도 합니다 “라며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김 의원 주장의 요점은 한국의 좌편향 매체 또는 단체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합법적으로 선전해 주고 있는 나무위키를 보호하기 위하여 집단지성과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태가 계속 유지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김 의원은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나섰다. 개정안에서는 나무위키를 불법 정보 유통 사업자로 규정하고 국내대리인 지정을 의무화하며 나무위키가 유통하는 "허위조작정보, 사생활 침해 정보, 저작권 침해 정보, 불법복제물"에 대한 제재 규정을 추가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나무위키에 올라온 정보가 정당한 정보인지 국가가 판단하고 위법하다고 판단될 경우 법적 제재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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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김 의원의 발의 의지가 실제 법률 개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나무위키의 특정 사례를 빌미 삼아 법률로 표현의 자유를 제약한다는 것은 득보다는 실이 많은 일이다. 나무위키 사례는 나무위키뿐 아니라 인터넷 매체에서 늘 일어나고 있고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집단지성 또는 집단지성의 결과물은 늘 어느 정도 리스크를 안고 있다. 마치 민주주의 체제하에 투표 결과가 가끔은 극우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민주주의를 포기하고 군주제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집단지성과 표현의 자유는 가능한 한 최대 수준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사회적 합의를 거쳐 점진적으로 개선하는 방안을 선택하면 된다.
표현의 자유 문제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김 의원과 방심위 모두 나무위키의 국내 대리점이 없다고 지적한 점이다. 법인 사무실, 실제 근무자 등이 있어야 조처가 가능하고 대화가 되는데 나무위키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반면 나무위키의 생각은 다르다. 나무위키는 화상회의나 전화회의를 요구한 방심위에게 이메일을 통한 의사 교환을 요청했지만, 아직 답변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인터넷 네트워크를 통해 언제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데 굳이 사무실 유지 또는 시간 맞춰 화상회의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둘의 갈등은 물적 조건을 강조한 국가기관과 가상공간을 중요시하는 네트워크 기업의 시각차를 반영한다. 갈등이 일시에 해결될 수는 없지만, 방향성만은 분명하다. 가상공간에서 일어난 문제는 가급적 가상공간 안에서 풀어야 한다. 아주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