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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 나의 첫 번째 영웅 !!

현해탄을 건너서 박치기왕 김일 . 김선아 지음. 모아북스 출판

by 김홍열


XL.jfif 현해탄을 건너서. 김선아 지음. 모아북스


김일, 나의 첫 번째 영웅 !!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민태원의 청춘예찬의 첫 문장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문장이 계속 떠올랐다. 나에게 그리고 같은 세대에게, 김일은 늘 가슴 설레게 한 영웅이었다. 아니, 설렌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가슴을 뛰게 했다. 김일은 가슴을 복받치게 만드는 유일한 영웅이었다. 단 하나의 영웅이었다.


책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어린 시절 풍경이 되살아난다. 흑백 금성 TV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열광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아마 동네 통장 집이었던 것 같다. 중계방송 1시간 전부터 모이기 시작해서 경기가 시작할 때면 거실이 꽉 찼다. 애국가가 울리기 시작하면 모두 숨죽이며 경기를 기다렸고, 김일이 링 위에 올라오면 환호하기 시작했다.


이제 서사가 시작된다. 이미 우리 안에는 이 서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36년간 일제에 의해 가혹한 시련을 겪었다. 참혹한 수탈과 강제 징집이 계속 이어졌고, 무수히 많은 조선 백성이 저들의 총칼에 도륙당했다. 해방이 됐으니, 복수를 해야 하는데 아직은 힘이 없다. 영웅이 나타나 저들을 박살 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 서사의 첫 단락은 대부분 비슷하다. 서로 견제하면서 탐색한다. 쉽게 이길 것 같다. 그러나 역경이 없으면 서사가 아니다. 상대의 치졸한 반칙으로 영웅이 무너질 것 같은 순간이 닥친다.


일본 선수가 팬츠 속에 숨겨둔 쇳조각을 꺼내 김일의 이마를 긋는 반칙을 저질렀다. 김일의 이마에서 피가 주르륵 흐르며 얼굴과 가슴까지 흥건하게 적셨다. P. 163


흥분과 분노, 안타까움과 절절함, 이 모든 복잡한 심정을 모아 모두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한다.


박치기, 박치기, 박치기 !!!


관중의 기대에 부응하듯, 김일은 - 중략 - 왼쪽 다리를 한껏 올리며 몸을 뒤로 젖히더니 그대로 일본 선수를 머리로 박았다. 일본 선수가 나가떨어졌지만, 김일은 쫓아가서 연신 박치기를 했다. - 중략 - 일본 선수는 비틀거리다가 링 바닥에 꼬꾸라졌다. 163


이제 모두 한목소리로 외친다.


원, 투, 쓰리 !


일본 선수는 카운트가 끝날 때까지 일어나지 못했다. 이제 서사가 완성된다.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던 영웅이 탄생했다!! 다시는 그 치욕을 겪지 않으리라. 이제 영웅과 함께 백마 타고 저 초원을 가로질러 만주벌판을 휘달리리라. 대한제국의 웅기를 사방에 뽐내리라. 우리 모두는 흥분과 감격으로 그 밤을 하얗게 보냈다.


어린 시절의 우리 모두에게 영웅이었던 김일의 이야기를, 저자는 담백하면서도 개성 있는 문체로 풀어내고 있다. 때로는 작가의 관점에서 때로는 지지자의 입장에서, 적절히 균형을 맞추며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서술하고 있다. 쉽게 잘 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가 김일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박치기왕이라는 것이 전부였다. 책을 읽고 나서 비로소 영웅 서사를 위해 김일이 감당해야만 했던 그 순례의 길을 이해할 수 있었다.


모든 분에게 권하지만, 특히 어린 시절 김일 박치기를 봤던 모든 동세대에게 강력 권한다. 꼭 읽어보시라. 다 읽고 나면, 당신 가슴안에 아직도 우리의 영웅 김일이 숨쉬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



목차

들어가며 영원한 스포츠 영웅

1장 영원히 기억될 영웅

생존의 조건
생애 최후의 승부

2장 현해탄을 건너다

멀고도 먼 섬 청년의 꿈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힘
새로운 삶을 꿈꾸며 낯선 땅으로
아버지와 집안 내력
폭압과 질곡의 시대
설움을 달랠 틈도 없이
신이 배달한 편지
꿈에 그리던 만남

3장 고난과 입신의 첫 라운드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말로만 듣던 지옥 훈련
데뷔전 패배를 거울삼아
박치기,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훈련
믿을 수 없는 변화
무적의 박치기왕
아, 아버지

4장 영광의 나날

역도산 왕국의 후계자들
새로운 영웅, 박치기왕 김일
소중한 인연들
세계 챔피언의 길
아, 스승의 죽음

5장 현해탄을 오간 풍운의 레슬러

새로운 여정
프로레슬링은 쇼가 아니다
꿈의 타이틀과 월드 스타

6장 마지막 불꽃

아직은 은퇴할 때가 아니다
후예 양성과 숨겨온 고통
영웅의 강렬했던 황혼
링을 떠난 영웅의 인생무상
다시 고국으로
화해와 이별 그리고 영면

맺음말 시대의 영웅을 기억하며

김일 연보 및 상훈, 안장
김일선수가 걸어온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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