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와 ‘만들어진 신’을 읽고 느낀 감흥 비슷한 것을 기대했다. 지금은 어떤 내용인지 그 디테일이 잘 기억 안 나지만, 두 책 모두 재미있게 읽었고, 저자의 문제의식에 충분히 공감했었다. 이 책은 도킨스의 그 전작들보다 더 흥미롭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두 가지 정도가 떠오른다. 우선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서사를 기승전결로 연결하는 스타일을 좋아하는 내 취향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개별 생명체에 관한 설명들이라 별로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
책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모든 생물체의 유전자에는 조상의 조상, 그 조상의 조상의 흔적들이 겹겹이 중복되어 기록되어 있어 현재 나타난 모습, 습성 등은 그 기록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제목이 불멸의 유전자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원제목 The genetic book of the dead 이 더 이해 쉽다. 어떤 환경에서 살아온 생명체는 그 환경이 생존과 번식에 별문제가 없다면, 자기 유전자에 당시 상황이 기록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환경이 급격히 변해 그 환경에 맞춰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고 변화된다면, 이제는 기존 유전자 위에 새로 변화된 모습들이 기록된다. 이렇게 생물체들의 유전자에는 태곳적 기록부터 최신 기록까지 다 저장되어 있어 우리는 이 유전자 독해를 통해 이 생물체의 생존 방식을 이해할 수 있고 이 생물체의 미래 행동도 예측할 수 있다.
일부 우제류(하마류)는 훨씬 더 비슷하게 생긴 다른 우제류들이 아니라 고래와 더 최근 공통 조상을 공유하고 있다. 167
유전자를 독해하면 이런 재미난 사실이 확인된다.
육지에 살던 고래의 조상들은 물에 들어가면서, 앞다리는 지느러미발이 되었고, 뒷다리는 몸속으로 사라지고 쪼그라들어서 작은 잔해만 남았고, 콧구멍은 머리 위쪽으로 옮겨졌고 169
고래 조상들이 원래 하마와 비슷한 육상동물이었기 때문이다.
방음이 된 방에서 노래참새 세 마리를 카나리아와 함께 키웠다. 성숙한 노래참새 소리를 전혀 못 듣고 자랐지만, 세 마리 모두 자랐을 때 전형적인 노래참사와 똑 같은 노래를 불렀다. 이는 노래참새의 노래가 유전자에 새겨져 있음을 보여 준다. 214
심지어 바바리비둘기 새끼는 수술로 귀가 완전히 멀어도, 다 자라면 멀쩡한 비둘기와 똑같은 소리를 낸다. 215
유전자의 힘은 이렇게 강력하다.
뇌가 무엇이 보상이고 무엇이 처벌일지를 선택하는 방식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유전적 자연선택을 통해 결정된다. 209
피지컬 영역 외에 판단력 영역에서도 유전자는 영향력을 발휘한다. 도킨스는 이 유전자를 다음과 같이 비유한다.
한 분야의 전문가들은 대부분 그 사업의 다른 부문의 전문가들이 무엇을 하는지, 또는 어떻게 하는지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서로 보완하는 기술을 지닌 수천 명을 모아서 각자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모른다고 해도 원만하게 협력하도록 했을 때 이룰 수 있는 업적은 엄청나다. 363
수 많은 유전자가 유기적 연결을 통해 하나의 생명체가 잘 생존하고 계속 번식할 수 있도록 협력한다. 멸종되지 않는 한 유전자는 이어지고 생명은 계속된다, 라고 도킨스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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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동물 읽기
2. ‘그림’과 ‘조각상’
3. 팰림프세스트의 깊은 곳에서
4. 역공학
5. 공통의 문제, 공통의 해결책
6. 주제의 변주
7. 살아 있는 기억
8. 불멸의 유전자
9. 우리의 체벽 너머
10. 돌아보는 유전자 관점
11. 뒷거울에 비치는 더 많은 모습
12. 좋은 동료, 나쁜 동료
13. 미래로의 공동 출구
주
감사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