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한국은행이 지난 2일 발표한 <자율주행시대, 한국 택시서비스의 위기와 혁신방안> 제하의 이슈노트에서는 자율주행택시의 도입과 한국 택시산업 구조개혁 필요성을 정면으로 다뤘다. 보고서는 글로벌 자율주행택시 시장이 향후 10년 동안 연평균 50% 이상 성장하며 폭발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기술적 수준과는 별도로 제도적 준비의 부족으로 자율주행택시의 본격 도입이 쉽지 않을 것으로 지적했다. 자율주행택시 도입을 위해서는, 자율주행택시 운행으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택시업체 및 종사자들의 동의와 이해가 필요한데 현재 상황에서는 동의와 이해를 끌어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자율주행택시 시장 규모 [한국은행 제공]
한국은행이 이례적으로 택시서비스 구조 문제를 분석하고 경고의 목소리를 낸 배경에는 뼈아픈 과거 경험이 있다. 대표적으로 ‘타다 금지법’ 사태가 그것이다. 2018년 신기술 기반의 혁신 서비스 ‘타다’가 등장했지만, 택시업계와 검찰에서 타다 서비스가 '위법 콜택시'라고 주장하여 경영인과 법인을 기소했다.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이 나오기까지 4년이 걸렸고 그 결과 소비자는 더 나은 이동 수단을 누릴 기회를 잃었고, 국내 혁신기업은 경쟁력을 상실했다. 보고서는 이런 실패가 반복되어서는 안 되며, 제도적 경직성과 업계의 저항이 다시 신기술 도입을 가로막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현재 완전 자율주행택시가 상업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도시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중국 우한이다. 두 도시 모두 초기 우려와 반발에도 불구하고 실제 시장에서 성과를 내고 있으며, 일정 규모 이상의 상용화에 성공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캘리포니아주의 민간 소유 공공 서비스 기업들을 규제하는 캘리포니아 공공요금위원회(CPUC)에서 전문가들의 조언에 따라 자율주행택시 운행을 결정했다. 우한은 중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과 기업의 과감한 투자가 결합해 빠른 확산을 가능케 했다. 이 사례들은 지자체 산하 위원회 또는 국가가 주도적으로 나서면 자율주행택시가 이른 시간 안에 정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자율주행기술 주요국 비교 [한국은행 제공]
그러나 한국의 상황은 크게 다르다. 택시업계는 여전히 강력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거시적이고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중재해야 할 정치가들은 당장의 이해관계 때문에 택시업계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크다. 소비자 편익이나 국가 경쟁력보다 기득권 보호가 우선되면서, 자율주행택시 도입의 어려움이 예상된다. 그 결과 한국은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고, 시민들은 더 나은 이동 서비스를 누릴 기회를 놓치고 된다. 한국은행 보고서는 변화의 흐름을 거부하고 과거의 틀에 머무른다면 결국 사회 전체가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기회와 위기는 같이 오고 있으나 국회나 행정부는 별생각이 없어 보이니 독립기관인 한국은행이 나선 것이다. 한국은행의 이번 제안은 의례적 정책 제안서가 아니라 국가적 경고에 가깝다.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한다면 자율주행택시와 관련된 데이터, 기술, 시장 모두 외국에 종속될 수 있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보고서는 단순한 문제 제기를 넘어, 택시면허 총량제 완화, 면허 매입 및 보상 프로그램, 지방에서의 시범 도입 등 구체적인 실행 방안까지 제시했다. 이는 연구 결과를 넘어 실질적인 정책 대안을 제안한 것으로, 국가적 차원의 행동이 시급하다는 절박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상하이 로보택시 [신화 연합뉴스 자료사진]
따라서 이제 정치권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 정부 담당 부처 책임자, 운송 관련 전문가, 택시 업계와 종사자 대표, 시민단체 등이 함께 참여하는 체계적 대화 채널을 구축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도록 적극 중재해야 한다. 회의는 바로 시작해야 하고 기술 도입을 막는 방식이 아니라 피해를 최소화하고 기득권을 재조정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혁신은 일방적으로 강행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특정 집단의 반발만으로 무산되어서도 안 된다. 갈등은 제도화된 협의와 보상 절차를 통해 관리할 때만이 연착륙할 수 있다. 정치권이 이 역할을 외면한다면 한국은 또다시 기회를 놓칠 수밖에 없다.
더 이상 기존 제도와 법률, 이해관계가 신기술 도입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위에 언급한 ‘타다’ 사례뿐 아니라 ‘로톡’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한국사회는 그동안 너무 비싼 수업료를 냈다. 이제 수업료는 그만 내고 진도를 나가야 한다. 자율주행택시는 단순한 교통수단의 변화를 넘어 소비자 편익, 교통 효율성, 산업 성장이라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 한국 사회가 개방적 태도로 이를 받아들인다면, 갈등을 넘어 혁신을 통해 더 큰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저항을 넘어 연착륙에 성공할 때, 한국 택시산업은 단순히 위기를 넘는 것을 넘어 미래 성장의 동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