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지난 21일 뉴욕타임스는 아마존이 2033년까지 전체 사업의 75%를 자동화하고, 약 60만 개의 일자리를 로봇으로 대체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보도에 의하면, 아마존은 2027년까지 미국 내 16만 명의 인력을 감축하고 2033년에는 약 60만 명 이상의 인력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대량 실직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1995년 제러미 리프킨이 『노동의 종말』에서 정보기술과 자동화의 발전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전통적인 노동 사회를 근본적으로 해체할 것이라고 예견한 것이 현실로 되고 있다. 당시에는 다소 과장된 기술결정론으로 여겨졌지만, 지금 우리는 그 예언의 실현을 목도하고 있다.
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
비단 아마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월마트는 2026년 말까지 물류센터의 절반 이상을 완전 자동화하기로 했고, 테슬라는 인공지능 로봇 ‘옵티머스(Optimus)’를 생산라인에 투입하고 있다. 맥도날드 역시 키오스크와 로봇 조리 시스템을 확대하면서 인건비를 급격히 줄이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기관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ricewaterhouseCoopers, PwC)는 2030년 대 중반까지 전 세계 일자리의 30% 이상이 자동화될 것으로 전망했고, 맥킨지는 2040년이면 제조·물류·서비스의 상당 부분이 ‘무인 프로세스’로 운영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술 혁신이 생산성을 폭발적으로 높이는 동시에, 노동의 존재 기반 자체를 흔들고 있다.
피지컬 AI에 의해 추동되고 있는 급진적 변화는 단순히 기계가 인간의 일을 대신한다는 수준을 넘어선다. 로봇은 창고에서 상품을 분류하고 무인 자동차로 옮기며, 인공지능은 시장의 수요를 예측해 생산 계획을 수립하며, 고객 응대는 챗봇이 맡아 상품 구매로 이어진다. 심지어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AI 분석이 인간 관리자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다고 평가받는다. 이런 추세가 가속화되면서 인간은 점차 노동과 관련 없는 존재로 밀려난다. 이는 일자리의 양적 축소를 넘어, 노동의 의미가 붕괴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노동의 주체는 인간이고 기술은 인간 노동의 일부를 대체한다는 사고의 유효기간이 끝나가고 있다.
독일 하노버 산업 박람회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살펴보는 방문객들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아마존의 인력 감축 계획은 조만간 국내에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아니, 이미 여러 대기업 생산라인에서는 피지컬 AI가 도입됐거나 본격적으로 도입될 예정이다. 자유 경쟁 시스템으로 유지되는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되는 한 생산성 향상을 위한 기술 발전과 그에 따른 인력 감축은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기술의 거부가 아니라 적극적 수용이다. 문제는 그 이후다. 노동할 수 없게 된 사람들에게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하는 동시에 ‘노동 없는 생산 체제’에 대한 담론을 구축해야 한다.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아 생활한다는 재래적 사고를 뛰어넘는 담론이 필요하다.
‘노동 없는 생산 체제’는 경제 구조뿐 아니라 사회 질서 전체의 대전환을 가져온다.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고, 노동을 통해 사회와 연결되던 연대의 감각이 붕괴된다. 일자리를 잃는 것은 생계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소속의 상실이다. 인간은 오랫동안 ‘일하는 존재(Homo laborans)’로서 자신을 증명해 왔고 노동 행위를 통해 주체적 사회 구성원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플랫폼과 알고리즘이 생산과 분배를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인간은 점점 더 노동 자체로부터 소외되어 간다. 분배로부터의 소외가 아니라 노동으로부터의 소외는 개인적·사회적 주체로서 인간의 정체성 위기로 이어지게 된다.
AI 일자리 대체 (PG) (이미지=연합뉴스)
미래 사회의 변화를 예측하는 진보적 사회 사상가이자 미래학자인 리프킨은 이미 30년 전 그의 여러 저서에서, 일 없는 사회에서 새로운 공동체적 가치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그 주장을 다시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의 레퍼런스로 리프킨이 제안한 제3부문의 성장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리프킨은 기존 시장 경제(제1부문)와 공공 부문(제2부문) 외에 비영리, 자선, 교육, 의료, 환경 보호 등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공동체 기반의 일자리를 의미하는 제3부문의 성장을 제안했다. 30년 전에는 한 미래학자의 낭만적 제안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검토할 필요한 어젠다가 되고 있다.
자동화는 인간을 해방시킬 수도, 소외시킬 수도 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사회의 대응력이다. 노동이 사라진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새로운 사회적 계약이다. 기본소득이나 디지털 복지, 협동 경제 같은 제도는 단순한 분배 정책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재구성하는 실험이다. ‘노동 이후의 사회’를 설계하는 일은 이제 경제정책이 아니라 시대적 과제가 되고 있다. 노동 없는 사회를 두려워하기보다, 노동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새로운 인간적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산을 위한 노동이 더는 보편적이지 않는 시대에 사회적 활동으로 노동을 대신하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노동 없는 생산 체제’에 대한 담론이 필요한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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