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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잉위잉 Oct 07. 2016

정신적 왼손잡이#33.상식

20160717-20160905.#33.상식

#1. 나는 어려운 사람인가


구직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난 뭐하는 사람이지?' 

한 달 만에 회사를 그만둔 9월의 어느 날,  오랜 지인과 술과 연어를 나눠 마셨다. 그는 프리랜서 강사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위잉씨는 어쨌든 '전문가' 타입이에요. 그냥 사무원은 못할 사람."


그래서 전문가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전문가'라는 것의 속성을 얘기했다. 그것엔 내가 일하는 방식과 신조, 효율부터 일하면서 느끼는 감정의 세세한 것들까지 모두 들어 있었다. 언젠가 재미 삼아 보았던 직업 적성 검사도 '당신은 전문가 형!'이라고 나왔다. 


하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전문가는 뭐지. 난 뭘 잘하는 사람이지. '나 이런 거 잘합니다'라고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분야는 뭐지.


-6월 말-


"사실 위잉씨의 직무는, 기업들도 잘 몰라요."


사수께서 해준 이야기다. 기획자라고 지원하면 얼추 비슷한 직무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조언해주었다. 그는 내 근무 의지와는 무관히, 계약 종료로 내가 떠나는 것을 무척 아쉬워했다. 


"위잉씨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원하는 곳은 많지만, 정확히 어떻게 명명하고, 어떤 일을 맡길지는 기업들도 잘 몰라요. 그러니 기획 쪽 직렬이 없다면, 광고, 홍보 부서부터 공략해보세요. 우리 회사도 크게 보면 광고대행사니까요."



주변의 친구들에게 내가 하는 일을 열심히 설명한 적이 있다. 엇비슷한 일을 하는 친구들도 더러 있었다. 몇몇은 알아들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의 이해도는 완전 장님 코끼리 만지듯 제각각이었다. '카드 뉴스 만드는 사람', '기사 교정 보는 사람', '취재 기자', '소셜 네트워크 채널 관리자'... 기획자.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모두 다 할 수 있는 건 좋은데, 얼마나 이 사회에서 쓸모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의 자신감과 무관하게, 쓸모란 구직이 정해줄 일이었다. 아직도 내가 반박하지 못하는, 부모님의 몇 가지 가르침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이 것이다.


"네가 대단한 건 알겠는데, 그것도 남이 인정해줘야 하는 거야.

 남이 인정해주는 인생을 살아라."


나의 실직을 걱정하는 가족들 앞에서, 나는 내 유능함을 강조한다. 괜찮다, 아무렇지도 않다, 난 잘못된 게 아니라는 연기를 하는데에 온 기운을 쏟아붓는다. 하지만 저 이야기가 다시 나오면, 공들여 만든 내 가면은 깨지고야 만다.



#2. 상식, 그리고 욕망의 위계


상식은 참 애매한 기준이다.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누군가에겐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나는 나 자신의 똑똑함을 자랑하길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그만큼 내가 편협할 수 있음을 언제나 경계해야 하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간단히 역으로, 내겐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다른 사람이 당연하다는 듯 강요하면 기분 더럽다. 나의 상식이 누군가를 기만할 수 있음을 조심해야 한다.... 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나만의 상식이라는 선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난 생각보다 고집스러운 사람이다. 일에선 더욱 그렇다.


이 에세이를 쓰는 동안 내가 소속되어있던 회사는 임금 지불의 실수라던가, 직급 승진 등에서 나에게 여러모로 아쉬움을 안겨준 바 있다. 나는 그곳을 떠나서야 깨닫는다. 그건 정말 고차원적인 욕구불만이었으며, 그곳은 나의 상식을 지켜주는 곳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업무에서의 내 상식을 간략하게 쓰자면 이렇다.


월급을 주는 만큼 일하고, 일 외적인 것들로 사람의 에너지를 소모시키지 않고, 창작물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자세가 상식인 곳. 수평적 관계에서 리더와 사원이 모두 함께 출퇴근하는 것. 제 아무리 고객사라 해도, 직무 수행 과정의 무례와 비합리가 발생하면 대표자가 나서 지적하고 경고하는 자부심을 지키는 것.


상식이 통하는 곳에서의 10개월. 그리고 그렇지 않은 곳에서의 1개월. 고민과 욕구의 수준이 달랐다는 걸 깨달았다. 


"더 인정받고, 더 성장해서 더 큰 존재감을 갖고 싶다."와 경합하는, "제발 6시 정각에 퇴근하고 싶다."

한 달 만에 그만두고, 그 회사 문을 나서던 날의 기묘한 기분은 잊을 수가 없다. 그날 그 순간에도 모두 야근을 하고 있었다. 모두 웃고 있었다. 나에게 말을 걸 때처럼, 언제나처럼 웃고 있었다. '추석 연휴에, 잠깐 출근합시다들.'이라며...


난 비상식인이었다. 그곳에서 나의 상식은, 전혀 통하지 않는다.

... 나는 이곳의 비상식이다. 그들의 상식에 발맞출 수 없다. 

모든 지식, 작은 깨달음부터가 그렇듯이 - 그것을 알기 전으론 절대 돌아갈 수 없다.



#3. 인정 같은 건 됐어


그만두겠다고 선언하니, 동료가 나를 위로했다.


"어차피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은 다 이렇게 일해요. 우리는 그래도 이 정도면 홍보 회사 중에선 나은 편이라지만... 어쩔 수 없죠. 위잉씨가 이 쪽으로는 좀 안 맞는가 봐요. 이것도 다 경험이죠."


사실 이 말에도 기가 찼다. 상식적으로-이건 '내 상식' 한정이다-누가 이렇게 일을 주고, 이렇게 인력을 분배하며 이렇게 감당도 못할 일들을 받아오냔 말이냐,라고 반박하고 싶었다. 그날 상식이라는 말이 하루 종일 입 속에 맴돌았다. 


웃기지 마. 난 더 좋은 회사에서 일하다 왔어. 연 수익이나 포트폴리오 보고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완전 대실망이야. 당신들 수준 개차반인 거 알아? 따질 게 한 두 가지인 줄 알아?


...라고 화낼 수가 없었다. 그들은 웃고 있었다. 야근도, 아무렇지 않게 서로에게 끼얹는 반말과 욕설도, 고객사에게 설설 기는 전화통화도, 업무량과 상관없이 모두가 같은 임금을 받는 것도, 다 그들의 상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트레스가 너무 쌓이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과 술을 머리 꼭대기까지 먹고, 욕을 천박할 만큼 섞어가며 속을 털어놓곤 한다. 그러나 이 회사에서의 생활은 그 어디에도 말하지 않았다. 그냥 '예전보다 힘이 들었다, 일이 잘 맞지 않았다, 야근이 많았다'뿐이었다. 야근을 밥 먹듯 하는 회사원에게 '에이, 뭘 그런 걸로. 그건 기본이야.'라고 되려 꾸중을 들을 정도로 가볍게 털어놓고, 그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구구절절이, 이 회사에서 겪은 비상식적인 일들을 써 내려가다가 모두 지웠다. 누군가에겐 일상이자 상식인 것을 내가 멋대로 까내릴 자격은 없다. 그건 오만이며 기만이다. 한편으로는, 이야기하자면 끝도 없이 불평과 불만이 이어질 게 뻔해서였다. 내가 한 말을 내가 감당할 수 없게 될 거라는 게 보일 정도로. 창틀의 먼지를 쓸어내듯, '일이 잘 맞지 않았어'로 마침표를 찍기로 했다. 


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별 수 없었다. 



#4. 청소


회사를 그만두고 돌아온 날, 침대에 걸터앉았다. 책상 위에 약봉지가 굴러 다녔다. 그 간에 병원에 갔던 것도, 어떤 진단과 유의사항을 들었는지도 까먹었다. 못 보던 알약 두 종류가 더해져 있었는데, 어떤 연유로 받았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약명이 적힌 영수증도 버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이제 건강을 좀 챙길까, 하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기억은커녕,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 편의점에서 소주와 과일맛 소다를 샀다. 큰 텀블러에 얼음을 담고, 소주와 소다를 따랐다. 탄산이 터지는 소리에 귀가 울렸다. 빨대로 두어 번 저어주었다. 태블릿으로 시끌벅적한 개그 프로그램을 틀어 침대 머리맡에 두었다. 몇 번이고 본 내용이라 웃기진 않았지만, 시끄러운 소리 그것으로 됐다. 반 컵쯤 비우니 머리 속이 멀끔해졌다. 노련한 청소부가 나타나 머릿속의 한 구석부터 열심히, 뽀득뽀득 소리가 나도록 닦고 있는 기분이었다. 


또 술인가... 기분 좋긴 하지만, 대책 없이 술 마셔버리면 안 되는데...


그리고 이런 생각이 한 나를 기특히 여기며 잠들었다. 작년보다 나아진 게 맞긴 하구나.



정신적 왼손잡이. Fin.

※에세이 <정신적 왼손잡이>는, 필자 위잉위잉이 2015년 6월부터 현재까지 모 병원 정신건강의학과로 통원 상담 및 약물 치료를 병행하며 기록한 치료 일지로부터 시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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