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17-20160905.#34.돌아갈 수 없다
#1. 돌아갈 수 없다
전편에 적은 문장이기도 한데, 사실 이 문장은 내게 생각보다 묵직하다.
"작은 깨달음이든, 어떤 지식의 세계든,
그것을 알기 이전으론 절대 돌아갈 수 없다."
그렇다. 나는 알아버렸다. 그래서 그것을 알고 난 후에 보는 세상이 너무나도 달라 힘이 든다. 몰랐기에 그냥 지나갔던 것들이, 이젠 사사건건 걸림돌이 되거나 장애물이 되어서 편안이 줄어든다. 나중엔 숨 쉬는 공기에까지 모든 불편이 녹아있어 대체 난 어떻게 살아야 하나, 황망해질 지경에 이른다.
구직 생활을 하다 보면 현대식 인테리어의 멋진 사옥, 빵빵한 복지 혜택과 근무환경을 자랑하는 기업들에 이끌린다. 구닥다리 사무실에, 화장실도 지저분한 회사에서 누가 하루의 절반을 쓰고 싶을까? 학생의 탈을 벗고 사회에 진입하면 내 생활의 반(또는 그 이상)은 회사를 위해 쓴다. 그 시간들이 모여서 삶의 큰 부분이 된다. 앞으로 내 삶의 큰 부분을 투자할 곳인데 당연히 말끔한 환경을 고르는 게 당연하다. 집을 구하는 세입자와 똑같다. 회사가 멀다면 교통비나 주거 지원은 되는지, 아니라면 급여가 차비를 충당할 수 있을 만큼 넉넉한지를 끊임없이 고심한다.
스펙 역전의 시대. 지금 구직자 세대와 현재 기업 중역 세대들의 능력 차이는 현저하다. 다큐멘터리에서 명문대를 졸업해 국내 유수의 대기업을 다니다 그만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본다. 내가 겪고 느낀 것과 너무나 같다. 기성세대는, 아랫사람이 똑똑하면 '기어오르지 마라'라고 후려치고, '까라면 까라'며 왼갖 험한 일을 시키고, 불만이 있으면 '월급 주는데 뭐가 문제냐'라고 들이댄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사고 현장에 가서 부품을 주워 오라고 했다던 대기업 이야기를 듣고 정말 식겁했다. 이윤 추구의 합리도 없는데, 이젠 최소한의 윤리도 없다니!)
다큐멘터리에 나온 사람들은 몇 번의 이직을 거치거나, 정말 꿈의 기업이라 불리는 곳에 있다가 퇴사했다. 무급으로 또는 적은 급여일지라도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찾아 떠났다.
무식하고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고, 업무 외적인 것에 집착하고, 높은 직급의 사람 말대로 휘둘리는 것이 싫다. 난 일하려고 온 사람인데 왜 술을 강제로 마셔야 하고, 성차별적인 농담을 견뎌야 하지? 나만의 전문성을 발휘할 필요가 전혀 없는 일만 몇 년을 하면서 '그래도 돈 주니까'하고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이러려면 대학은 뭐 하려고 다녔으며, 뭣 때문에 치열하게 살았냐는 말이다.
이렇게 신경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면서, 대중교통을 타고, 남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도 힘든 내가 약으로 겨우 버티면서 살아가는데. 매일 보람도 성장도 없는 일을 하면서, 정당한 대가도 못 받는다면, 대체 왜 살아야 하냔 말이다.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쉴 수 있어 좋지만, 아마 열흘쯤 지나면 작년보다 더 심한 무기력이 올 거라고 생각해요."
"어떤 점에서요?"
"처음에 정말 좋은 회사를 다녔죠. 제 인생에 큰 도움이 되었고. 그런데 앞으로 이만한 회사를 만나지 못하면 성에 차지 않고, 일하지도 못해요. 그리고 한국의 대다수 기업은 그렇지 않고... 이걸 깨닫고 나니 구직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
"그래도 몇 번 공채를 썼지만 모두 떨어졌어요. 이력서와 소개서에 제가 쓸 말은 다 썼는데, 내가 설 자리가 없다는 걸 확인받은 셈이네요."
"..."
"...죽는 것 이상의 사는 의미가 없는데 왜 살죠?"
"나 스스로가 떳떳하고 능력 있고 자신감이 있으면 뭐해요. 돈도 없고 좋은 직장도 없고, 인정도 못 받는데 왜 살죠? 지금까지 난 왜 공부했고 왜 열심히 살았을까요? '열심히'가 모자랐던 걸까요?"
"더 열심히 살 힘, 없어요. 이제 됐어요..."
#2. 걱정의 가족
가족들은 걱정이 많다. 걱정이 너무 많으면 뭐랄까, '내가 못 미덥나?'라는 생각이 들어 자신감이 뚝 떨어져 버리곤 한다. 그래서 '걱정보단 격려를 해 줬으면 한다'라고 했더니 가족이고 자식이니 걱정은 어쩔 수가 없다고 한다. 걱정을 해주는 걸 고맙게 여기라고도 하고. 걱정도 그 무게가 너무 지나치면 깔리고야 만다. 내가 뭘 하든 걱정하니까 아무것도 못한다. 그런다고 아무것도 안 하면 그걸 걱정한다. 즉 나는 가족들의 걱정의 결정체다. 가족들의 걱정을 덜어주려면, 뭐, 내가 없어지면 될까.
한 달 만에 직장을 그만뒀다는 말을 들은 가족들의 분위기는 초상집이다. 잘린 것도 아니고 자의로 그만둔 것이고, 다들 이직도 많고 계약직도 허다한데 이걸 뭐 그리 걱정하냐고 했지만 '아니... 그래도...'하며 한숨이 돌아온다. 할 말을 잃는다. 특히 나의 아버지는 내 생각 이상으로 고루해서, 전화로 '의지력'을 운운했으므로, 통화 이후 나는 오후 내내 우울감을 버티느라 모든 에너지를 쓴다.
그래도 요즘엔 간간히 할 말은 한다. '안 맞는 회사에서 버티고 있으면 그게 무식한 거지, 의지력이 강한 거야?'라고 했더니 좀 머뭇거리시긴 하더라만... 내가 할 수 있는 반박은 여기까지다. 더 이야기하면 내가 가족들의 마음을 모조리 밟아 부술 것 같아 두렵다. 부모님은 한국이 살기 좋은 나라고, 직장을 구하고 나서 결혼하는 게 수순이라 생각하는 분이다. 내가 '비혼' 이야기라도 하면 놀라 기절하시지 않을까.
가족들이 불편한 이유는 나도 아직 알 수없다. 한번 곰곰이 생각해본 일이 있다. 내 결론은 이렇다. 나는 독립생활에 빠르게 적응한 반면, 부모님은 자식을 떨어뜨려 놓는 것이 아직도 익숙하지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서로 떨어진 채 시간이 흘러서, 서로의 삶이나 생각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차이가 나 버린다. 그러다 보면 예전엔 당연하게 요구했거나 해왔던 일들이 헛발질이 되는 상황이 온다.
서울에서의 내 대학생활이, 부모의 관점에선 '그냥 애들끼리 노는 일'로 보인다거나... 어른들은 싫어도 참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가는 것을 우선으로 여기시지만 난 그런 걸 잘 못 참기에 명절에 울컥해버린다거나... (일화로 '여자애들은 시집 잘 가야', '요즘 여자애들도 직장이 좋아야'등으로 시작하는 맥락 없는 참견질에, 나 딴에는 좋게 응수한답시고 '인생은 셀프고, 그런 건 미래의 제가 알아서 하겠죠.'라고 했다가 말대답한다고 꾸중을 들었다.)
내가 너를 어릴 때 때리기를 했느냐, 굶기기를 했느냐. 학자금이나 이런저런 것으로 빚을 지게 했느냐, 널 내다 팔기를 했느냐. 도대체 왜 가족에게 소홀하게 굴고, 왜 가족에게 불만이 많으냐.
그건 나도 모르겠다. 정말 알 수가 없다.
#3. 무엇을 좋아합니까.
공채 탈락과 퇴사, 사회와 상식에 대한 깊은 좌절 이후 어두컴컴한 방에서 줄곧 잠만 잔다. 눈을 떠도 침대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다. 휴대폰으로 이리저리 소셜 네트워크를 뒤져보고 만화를 보다가 졸고, 또 일어나 책을 한 두권 보다가 졸고. 저녁이 되면 가끔 오락실이나 피시방에 가서 게임을 한다. 조금 살만한 날엔 카페에서 창 밖을 구경한다. 그러면서 이것저것을 일지에 적는다....
"... 독립출판을 하고 싶어요?"
음? 그건 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일지에 써놓았던 모양이다. 가만히 떠올려본다. 그녀는 내게 언제나 생각할 여유를 준다.
독립출판을 하고 싶다. 웹페이지도 만들어서 미디어 포탈을 만들고 싶다. 간섭받지 않고, 좀 덜 괴로워하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조금이라도 더 하고 싶다. 그림도 더 잘 그리고 싶다. 어디 학원에라도 가서 배우고 싶다. 음악 잡지를 만들고 싶은 것이 첫째였으니 음악도 더 즐기고 싶다. CDP도 사고, 헤드 셋도 사고 싶다. 속 편하게 콘서트장에 가고 싶다. 공연 사진 촬영이나 취재도 해보고 싶다. 아마추어라도 좋으니 밴드도 다시 하고 싶다. 이걸 엮어서 책을 만들면. 아...재밌겠구나...
"지금이야 책은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죠... 사실 전 고등학생 때부터 줄곧 잡지를 만들고 싶었어요."
내가 가진 재주와 즐거움을 모두 집약한 것이 출판이었다. 사람들이 쉽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게 잡지라고 생각했던 게 그때의 생각이었다.
"위잉씨는 뭘 좋아해요?"
"만화, 장난감... 로큰롤 음악... 시디 듣는 것... 미술... 일러스트. 책 읽는 것 좋아하고. 잘 그려진 그림이나 영상을 보고... 좋은 음악... 악기 다루는 것도 좋아하고..."
그렇다. 한 사회의 건강도를 알아보고 싶다면 문화의 바닥을 까 보라고(?)한다. 서브컬처부터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인상 깊었던 강의의 한 구절이 있는데, 난 이것을 내 졸업 논문에도 썼다.
#4. 쓰레기통 인생
인간의 본질은, 세상의 쓰레기통 제일 밑바닥에 있다.
PC방과 오락실에서 동전과 지폐로 긴 시간을 때우던 나날을 생각한다. 무기력을 앓는 이에게 24시간은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삶을 살아내는 건 어려운 일이다. 시대와 세대를 지배하는 무력감과 우울감, 침묵, 가난. 이것은 곧 저비용 고효율의 오락을 추구하게 만든다. 문화의 교류와 순환을 막는다. 모든 걸 '사치'나 '비효율'로 만들어 버린다. 만화책을 사서 읽는 사람, DVD나 블루레이를 구입하는 사람, 유료 게임이나 게임기를 사는 사람, 책을 사고 잡지를 구독하는 사람을 '부르주아'라고 야유하거나, '왜 그런 데에 돈을 쓰느냐'라는 소릴 한다.
장기적으로 문화 산업의 생산자들은 창조의 동력원을 잃어버리고, 끝내 시장은 좁아져 문화적 토양은 약해진다. 문화에 대한 의식 수준은 물론, 질적 가치마저도 뚝뚝 떨어지고 만다. 소비자이자 생산자인 나는 매번 이 대목에서 목이 조여 오는 기분이 든다.
사범대생 J와 술을 마셨던 겨울, 그가 나에게 물었던 말이기도 하다. 넌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하냐고. 난 그때도 음악이라고 말했다. 음악을 듣고 연주하고, 가사를 읽는 모든 일이 즐겁다고. 음악에 뿌리를 놓고 줄기를 뻗으면 내가 좋아하는 일들에 모두 가 닿을 수가 있다고.
"한국에선... 어려울 일들만 골라서 좋아합니다..."
내가 우울증을 앓지 않았다 하더라도, 3년 전에 검도를 그만두지 않고 꾸준히 해 왔다 하더라도. 회사를 다니며 내 생계를 책임지는 동시에 글을 쓰고 뭔가를 영차영차 해서 책을 만들 기력이 있었을까. 할 수 없다면 왜 하지 않고 있을까. SNS에서 책을 만드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그들을 위해 내가 가진 재능으로 뭔가 도와주고 싶기도 하고 그들의 책을 사고도 싶다...
상담을 끝내고 나오면서 일지를 다시 본다. '출판'을 적었던 날엔, 그런 생각만 하고 있는 나 자신이 몹시 싫었던 것 같다.
#5. 행복해지고 싶어
결코 건강한 사회는 아니다. 건강해지려고 애를 쓰는 것 같긴 한데, 굴러가는 꼴을 봤을 땐 결코 쉽게 될 일은 아니다. (1달 만에 그만둔 회사가 일을 하는 메커니즘이 딱 그랬다. 그런 프로세스로는 아주 먼 길을 돌아가거나 아니면 절대로 성과를 낼 수 없을 거라는 게 내 견해다.)
그래서, 이 쓰레기통 바닥에 눌어붙은 내 삶은 뭘까. 아침마다 죽고 싶지만, 월급날을 기다리며 한 달씩 생명을 연장하는 것? 매일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질척한 기분에 휩싸여 하루의 90%를 견디고 돌아와, 한 캔의 맥주로 스스로를 다독이는 것? 좋아하는 음악 시디나 장난감을 산 행복감만으로, 저임금으로 텅텅 빈 통장을 위로하는 것?
소소한 것에서부터 느끼는 기쁨은 정말로 소중하다. 그건 아마도 삶의 대부분이 진흙탕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행복을 추구한다. 행복만이 가득한 삶을 살 순 없지만, 지금보다 그것의 절대치를 더 많이 늘리고 갖기 위해 산다. 그런데 기쁨의 절대치는 그대로 두고, 그 효과만을 키우기 위해 '삶을 진흙탕에서 똥통으로 처박으라'는 결론을 내리는 건 누가 봐도 곤란하지 않나.
"지금 같은 삶은... 이제 그만 됐어."
정신적 왼손잡이. Fin.
※에세이 <정신적 왼손잡이>는, 필자 위잉위잉이 2015년 6월부터 현재까지 모 병원 정신건강의학과로 통원 상담 및 약물 치료를 병행하며 기록한 치료 일지로부터 시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