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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잉위잉 Jul 08. 2019

표류일지 #3.번역문:전화 이야기

정신적 왼손잡이 続 , 20170810


※ 일본어능력시험 공부를 한창 하던, 2년 전 일본어학교 재학 중에 쓴 글입니다. 번역문입니다.


학교 숙제로 나온 일어 독해 문제를 읽다가, 이야기가 꽤 감동적이라 해설을 간략히 적어보기로 했다. 보통 일본어능력시험의 독해지문은 일본의 교양서, 신문의 독자투고, 칼럼 등을 발췌해 쉬운 일어로 각색하거나 어려운 표현엔 주석을 달아 출제하고 있다.


 이 지문은 <NTT ふれあいトーク100선>에서 발췌. NTT(엔티티 커뮤니케이션)는 한국의 KT나 SKT급의 통신서비스 기업이다.’ふれあい(후레아이)’란 '맞닿음'이란 뜻도 있지만 '마음이 통하다'라는 뜻도 있다. 아마도 통신, 전화, 인터넷에 얽힌 감동적인 수필을 모집에 엄선한 책이란 생각이 든다.




내 아이가 서너 살쯤 되었을 때, 전화기를 신기해하기 시작했다. 목소리를 보내면 응답이 들리는 전화기란 아기에게 충분히 즐거운 장난감이었다. 처음에는 아기의 조부모나 숙모(즉 화자 '나'의 부모와 여자 형제)와 통화 중에 아기에게 전화를 한 두 번 바꿔주는 식이었는데, 아무래도 직접 버튼을 눌러 전화를 걸어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단축번호 01에는 조부모를, 02에는 숙모를 지정해주고, 그 두 가지만 눌러가며 아기가 전화를 걸어 말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서너 살 아이가 하는 이야기라는 건, 어른에겐 지루할 수밖에 없다. '오늘은 고기랑 야채를 아주 많이 먹었어요', '내 이름은 아오키입니다', '네 살이 되면 유치원에 갈 거예요', '아빠는 내가 오오사와 유치원에 갈 거라고 했어요', '그리고요, 그리고요, 으응... 그리고...'이런 말들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조부모와 숙모가 여러모로 애써줘서 고맙다고 생각했다.



마침 숙모와 만날 일이 생겨서, '아오키의 전화를 받아주느라 고생이 많아'라고 했더니 "응? 전화는 한 통도 안 왔어. 아오키, 괜찮아? 어디 아픈 건 아니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깜짝 놀라 집에 돌아와 전화기를 확인해보니, 단축번호 02번에 숙모의 전화번호를 잘못 입력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즉, 아기는 이때껏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떠들고 있었던 것이다!




사과를 하러 부리나케 전화했더니, 오히려 그 모르는 사람으로부터의 사과가 돌아왔다. 02번 전화의 주인은 나이 든 여성이었다.


"전화를 걸어주는 어린 도련님(お坊ちゃん)의 아버지이시군요. 저는 00(가명)이라고 합니다. 언제나 도련님에게 신세를 지고 있어, 언젠가 인사를 드리려 했으나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실은, 저의 남편은 암으로 몸져누운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뿐인 아들과 며느리 내외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 저의 손주도 사고로 그만 같이 명을 달리했는데, 그 아이가 살아있었다면 지금쯤 서너 살 정도 되었을 겁니다. 갈 유치원도 정했을 테고요...


처음 귀댁의 도련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을 때 죽은 손자로부터 온 전화인가 라는 생각에 너무나 놀라고 한편으로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한번 잘못 걸린 전화라고 생각했지만 계속 전화가 오기 시작했고, 저는 마음속으로 전화를 점점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귀댁으로부터 전화가 오지 않으면 혹시 어디 아픈 걸까, 감기라도 걸린 건 아닐까,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도, 다시 전화가 걸려와 도련님으로부터 '바이 바이'라는 인사를 들은 날엔 푹 잠이 들곤 합니다. 처음엔 옹알이처럼 더듬더듬 말하던 도련님이, 이젠 또박또박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만큼 자란 것을 들을 수 있어서, 저는 너무나 기쁩니다.


만약 폐가 아니라면, 앞으로도 가끔씩 전화를 걸어, 도련님의 목소리를 들려주시지 않겠습니까....?"




이 이야기를 듣고서 '싫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숙모의 전화번호는 단축번호 03번에 저장해 두었다. 지금도 아기는 단축번호 02번으로 가끔 전화를 걸고 있다.





※참고.일어로 '할머니'인 '오바아상(おばあさん,おばーさん)', 그리고 숙모와 이모, 고모 등 부모님 방계의 여자 친척을 모두 지칭함과 동시에 '아줌마'로도 번역될 수 있는 '오바상(おばさん)'은 단순히 '아-'음의 길이 차이로 의미가 달라진다. 아직 아기는 3살 반이기 때문에 장음을 제대로 구별해 발음하지 못한다는 가능성을 생각하면, 02번의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서 "숙모 안녕(おばさん、おはよう)"라는 말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 "할머니 안녕(おばあさん、おはよう)"라고 말했을 수도 있다. 02번의 할머니가 아기로부터 전화를 받았을 때 이것을 단순한 장난전화라고 생각할 수 없었던 이유일지도 모른다.


정신적 왼손잡이 続. Fin.

※에세이 <정신적 왼손잡이 続>는, 필자 위잉위잉이 2017년 3월부터 일본에 이주해 살며 생각과 일상을 정리해 늘어놓는 조용한 조각 글의 모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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