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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 Jun 15. 2021

계속 노력하는 것, 그것도 재능이라면 재능

우리 팀에 새로운 인턴이 왔다. 그는 구글 검색 자격증이 있어서, CPV, CTR 등의 디지털 광고 용어는 알고 있다고 했다. 그래, 이 일을 시켜보자! 나의 업무 중 하나는 매일 광고주에게 키워드 리포트를 보내는 일이었다. ‘안녕하세요. 어제보다 노출이 얼마큼 올랐고, 클릭수는 얼마큼 올랐습니다. 광고 단가는 얼마입니다. 감사합니다.” 매일 기계처럼 작성해야 하는 이 일이 참 귀찮았다.


인턴에게 샘플 몇 개를 보여준 후 멘트를 작성해보라고 했다. 반나절 후, 인턴은 워드 파일을 보내왔다. 클릭하여 열어보니, 2장이 넘는 분량이 보였다. 아니..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는데..? 맞은편으로 고개를 들자 인턴의 잔뜩 긴장한 얼굴이 보였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 나도 그때는 그랬지. 이 회사로 이직한 후 나의 첫 한 달이 떠올랐다.


이직 후, 나의 어깨는 매일 경직되어 있었다. 오후 4시쯤이었나, 갑자기 대표가 내일 제작팀에게 OO 브랜드 OT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일 2시까지 준비하면 된다고 말하고 휙 나가버렸다. 뭐 이런 회사가 다 있지. 미친 거 아냐. 이걸 어떻게 내일까지 준비하지? 그날 나는 새벽 3시까지 일하면서 불안함과 초초함에 휩싸였다.


다음날, 대표가 말했다. “처음부터 이렇게 막 달릴 필요 없어. 이거 그냥 2시간이면 끝나는 건데 왜 새벽까지 일을 해.” 심지어 내가 준비한 파일에는 써먹을 게 없었는지, 대표는 제작팀에게 영상 몇 개를 보여주고 말로 OT를 끝냈다. 자존심에 큰 스크래치가 그어졌다. 대표가 너무너무 미웠다. 나를 일부러 괴롭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하는 건데 말을 왜 저렇게 싸가지없게 하는 거지. 내 노력을 몰라주는 대표놈, 역시 소시오패스였어.


인턴의 워드 파일을 보자 그날 내가 준비한 OT파일이 오버랩됐다. 이제야 대표 말이 이해가 됐다. 그때 그 프로젝트는 정말 2시간이면 준비하고 쳐낼 프로젝트였다. 나는 그게 내 인생의 전환 포인트가 될 수 있는 프로젝트처럼 온 근육과 세포를 소환시켰다. 열심히 하자! 잘해야 해! 다시 돌아보니 그때 내가 준비했던 OT파일은 주제 없이 팩트들만 나열된, 분량만 과하게 넘치는 부담스러운 파일이었다.


나는 재능이 뛰어난 사람보다, 꾸준히 성장하는 사람들이 좋다. 재능은 내가 어찌할 수 없고, 우연과 운명에 의해 결정된 것이지만, 성장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재능이 부족해도 불구하고 계속 노력하는 것. 그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인 것 같았다. 처음엔 발연기라는 타이틀을 가진 배우가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여서 결국 인정받는 걸 볼 때, 어떤 희망을 느낀다. 그래, 역시 성장에는 꾸준한 노력과 의지가 중요한 거야.


그렇다면, 회사를 이직하고 1년 3개월이 지난 나는, 과연 업무적으로 성장했을까. 일의 중요도를 파악하고 나의 에너지를 분배하는 것 하나는 확실히 배운 것 같다. 오늘 내게 허락된 에너지를 몰빵하지 않아야 내일도 잘 일할 수 있으니까. 광고천재와 비교하면 난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어찌 되었든 성장을 하긴 한 것 같다. 출근하면 인턴에게도 말해줘야겠다. 오래 일하고 싶으면, 호흡 조절이 필요하다고. 그래야 꾸준히 성장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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