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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 Nov 30. 2018

불행한 채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무엇을 희망해야 하는지 알 수 없을 때

아, 생이 이렇게 지긋지긋할 수가. 나는 불행했다. 혼자 있으면 마음껏 울었고, 같이 있으면 몰래 울었다.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해 울었고, 함께 있으면 울음을 참는 게 힘겨워 속으로 울었다. 울면서도 도대체 뭐가 그토록 서러운지 알 수 없었다. 일이 재미없어서, 헤어진 남자 친구가 그리워서, 앞으로 살아갈 날이 너무 길어서, 외로워서 등 수만 가지 이유로 삶의 끈을 놓고 싶었다. 누가 “괜찮아?”라고 물으면 금방 무너질 듯 위태로웠다.


그렇게 울컥하기를 몇 달, 내일은 꼭 정신과에 가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무기력증, 우울증’에 대한 검색을 하다가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했다. 자신에게 지나치게 몰두하면 우울하다는 것. 우울한 생각이 날 때마다 생각을 ‘기차’라고 가정하고, 기차가 지나가는 것을 멀리서 지켜보라고 했다. 눈을 감자 ‘불안함, 외로움’을 실은 기차가 수시로 지나갔다. 그렇게 구경꾼이 되어 며칠 동안 지나가는 기차만 바라봤다. 


가장 많이 지나간 기차 중 하나는 ‘회사, 일’이었다. 어차피 경쟁 사회에서 톱니바퀴가 될 운명이라면, 화려한 톱니바퀴가 되고 싶어 ‘광고 회사’를 선택했다. 나에게 인수인계를 해줬던 한대리는 ‘광고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하며, 광고회사 입성을 축하해줬다. 반신반의하며 시작된 ‘광고 회사 라이프’는 딱 8개월 동안 재미있었다. 


광고를 기획하는 일에는 ‘결제, 청구, 광고 효과 보고서 작성’ 같은 반복적이고 지겨운 일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브랜드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꿈꿨지만, 지금 연차에는 기회가 적었다. 나는 업무를 빈틈없이 처리해야 하는 직장인의 본분을 우선해야 했고, 그것들은 나를 보통의 직장인으로 만들었다. 굳이 세상을 광고로 바꿔야 하는지 회의감도 들었다.

 

어김없이 찾아온 아침이 매일 나를 운반했다. 한 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 예측 가능한 삶을 부수고 싶었다. 평범한 직장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다. 반짝반짝 빛나던 꿈, 미래, 기대 비슷한 것들이 시들 거리고 윤기를 잃어 탁했다. 일에 대한 의미를 잃은 지금, 새로운 희망의 동아줄을 붙잡고 깊은 우울의 우물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다. 하지만 도대체 무엇을 희망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희망을 갖게 해 달라는 것이 희망인 셈이었다. 


생각의 기차를 무수히 흘려보내며 다짐했다. 행복해지려는 노력을 멈추기로. 불행한 나를 멀리서 관찰하니, 행복해지려고 애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내가 불행에 다다른 원인을 알기만 해도 그럭저럭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기형도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내 희망을 감시해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쓴다/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 시인은 불안을 제거하지 말고, 고통을 수용하라고 했다. 우선 희망이 없는 이 상태를 인정하고, 경쟁 사회에 살아남기 위한 거짓 희망에 다시 속지 않으려 한다. 불투명한 희망보다 선명한 불행을 선택하려 한다. 내가 선택할 수 없는 행복한 미래를 꿈꾸기보다, 불행한 현재를 꾸역꾸역 살아가려 한다. 아직은 두렵고 겁이 난다. 나의 이 누추한 육체는 불행을 받아들일 용기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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