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알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더 멀리 뛸 수 있는지.
네가 이런 것도 만들 줄 아는 사람이었어? 내가 만든 피피티를 보고 상사 A가 놀라서 물었다. 지금까지 내 스타일과 완전 다르다며 감탄했다. 아니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그동안은 A가 요구하는 대로 맞춰서 만든 것뿐.
A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뭐든지 자기 손으로 해결해야 속이 풀리는 타입이다. 나는 그가 요청한 자료를 찾고, 경쟁사 광고를 조사하고, 기획서의 오타나 줄 간격 등을 확인하는 일 따위를 했다. 무언가 바쁘게 일하는 느낌은 들었지만, 크게 재미있진 않았다. 그냥 시키는 일을 문제없이 처리하면 그만이었다. A의 업무 지시 방향이 불필요하게 구체적인 것 같아 답답했지만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래, 지금 내 연차에 이런 일에 참여한다는 것에 만족하자. 이러면서 배우는 거지.
그러던 중, 짧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느라 다른 상사 B의 밑에서 잠깐 일해본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은 A와 정반대의 타입이었다. A가 용의주도한 계획형이라면 B는 자유로운 방임형. B는 오후 6시면 가방을 들고 자리를 정리하며 말했다. “뭐 해야 하는지 알지? 난 간다?” 뭘 해야 하는지 모른 채 남겨진 나는 어리둥절했다. 세세한 가이드라인에 익숙했기 때문에 B가 약간 무책임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지?
B와 일할 때 평균 퇴근 시간은 새벽 3시. B는 딱 필요한 가이드라인만 제시했고, 그 안을 채우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이걸로 될까? 머리에 맴도는 의심을 애써 달래며 밤새 모니터를 노려봤다. 고민을 하고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하얀 도화지가 펼쳐져 있었다. 나의 노력들은 B의 판단을 거쳐 점점 화려한 기획서로 변해갔다. 재미있었다. 게다가 B는 A와 달리 질문을 하는 사람이었다. B가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었을 때는 감격스러워 눈물이 찔끔 나올 것 같았다. 감히 내가 저런 질문을 받다니. 나는 “넵 알겠습니다”만 반복하는 앵무새에서 벗어나, 비로소 다양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기획서가 완성될수록 자꾸 뿌듯한 성취감이 차올랐다.
자기 몸의 100배의 길이를 뛸 수 있는 벼룩을 유리컵에 담아 놓으면 처음에는 계속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고 한다. 더 이상 부딪히는 소리가 나지 않을 때 유리컵을 빼면, 벼룩은 더 높이 뛰지 못하고 딱 유리컵의 길이만큼만 뛴다고. 어디선가 들어 봤을 벼룩 이야기가 참 진부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A와 일하는 나는 유리컵 속에 버둥거리는 벼룩이었던 것 같다.
벼룩은 불행하게도, 자신이 유리컵 안에 있는지, 유리컵 밖에 있는지 인지하지 못했지만, 나는 이제 알 수 있다. 어떤 유리컵이 나를 가로막는지, 내가 어떻게 하면 더 멀리 뛸 수 있는지. 나는 내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와, 내가 주체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에서 더 높이 뛸 수 있는 사람이다. 조금 힘들고 지칠 땐 유리컵 안에서 부딪히는 중이라고 생각하며 오늘도 나는 정신 승리 중이다. 유리컵 밖에선 더 높이 뛸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생각보다 나는 잘 뛸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