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 시절, 같이 취업을 준비하던 친구가 말했다.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워라밸’이라고. 일은 어차피 일이라며, 야근 없이 안정적으로 다닐 수 있는 직장에 다니고 싶다고 말했다. 그 친구는 결국 공무원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
나는 정반대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은 8시간.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중 대부분을 차지한다. 퇴근 후의 삶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왜 출근 후의 삶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지? 나는 결국 내가 하고 싶었던 '광고 회사'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높은 근무 강도와 매일 쏟아지는 야근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광고 회사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출근 후 8시간을 재미있게 보내고 싶었기 때문에.
나는 광고 회사에 다니면서 극단의 끝을 맛보았다. 너무 바빠서 새벽 3시에 퇴근했던 시즌과, 너무 한가해서 시계를 보면 아직도 오후 3시였던 시즌. 한가한 배짱이 시즌에 워라벨은 지킬 수 있었다. 처음에는 좋았다. 퇴근 후에 영화도 보고 운동도 했다. 그런데 배짱이 시간이 길어지자 출근 후 8시간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카톡, 인스타, 유튜브도 다 봤는데 또 뭐하지? 시간을 잘게 쪼개어 저장해 놓고, 필요할 때 저장된 시간을 사용하는 요술 주머니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낮에 빈둥빈둥 놀다가 퇴근 후에 혼자 먹는 저녁은 맛이 없다. 엄마가 만든 콩자반과 오징어채는 유난히 딱딱하다. 냉동실에 얼려 놓은 흰밥은 전자레인지에 돌려도 푸석거린다. 하루를 겨우 때운 끝에 먹는 저녁은 무언가 성에 안 차는 퍽퍽한 맛이다. 그리고 침대 위에 누우면 불안감이 몽술몽술 찾아와 새벽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나 앞으로 어떤 일로 뭐 먹고살지? 이 일이 진짜 나랑 맞는 일인가?
오히려 야근 몰빵 시즌에 밥도 맛있게 먹고 잠도 깊게 잘 수 있었다(물론 수면 시간은 부족했다.). 그때 처음으로 소비자 간담회를 진행했다. 간담회가 끝나고 나는 눈 밑이 퀭한 좀비가 되어 있었다. 막대한 소비자 정보를 브랜드와 연관시킬 상상을 하니 앞길이 아득했다. 상사는 날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얘 좀 봐. 기가 다 빨렸어.” 나를 달래줄 초 고칼로리가 필요했다. 버거킹에서 더블 와퍼를 주문해서 순식간에 해치웠다. 콜라 한 방울까지 놓치지 않고 모조리 흡입 완료. 그날도 늦게까지 일했지만, 베개에 머리가 닿자마자 잠이 들었다.
나는 그때 일에 완전히 몰입해 있었다. “사실 소비자의 진짜 마음은 이런 게 아닐까요?” 조심스레 뱉은 의견을 좋은 인사이트라고 상사가 인정했을 땐 짜릿한 성취감도 느꼈다. 내가 생각했던 내용이 고스란히 기획서에 담겼을 땐 어깨가 정수리까지 들썩거리는 황홀한 기분도 맛보았다. 그러나 체력이 점점 고갈되고 있다는 사실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주말에도 출근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나는 이를 아득바득 갈았다. PT만 끝나 봐라. 늦잠도 자고 맛있는 것도 먹고 영화도 보고 놀러도 갈 거야!
양극단의 시즌을 보낸 후 깨달은 사실이 있다. 워라벨은 중요하다는 것. 그러나 워라벨에 대한 다른 식의 정의가 필요하다는 것. 공무원을 선택한 친구의 입장에서 ‘워라벨’이란 일과 삶을 정확히 분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퇴근 후의 삶만 중요하다는 말처럼 들렸다. 야근을 많이 할 수밖에 없는 팍팍한 현실 때문에 워라벨이 더 중요한 가치관으로 자리 잡힌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일과 삶을 무 자르듯 분리하기가 어렵다. 일을 통해 느낀 몰입감과 성취감이 퇴근 후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물론 퇴근 후의 여가도 출근 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야근 몰빵 시즌만 보내다간 일하면서 번 돈 모두 병원비에 쓸 게 분명하다. 일없는 삶은 의미 없고, 일만 하는 삶은 공허하다. 결국 밸런스가 중요하다는 뻔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루빨리 천재 과학자가 시간을 저장할 수 있는 요술 주머니를 개발해주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