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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Dongyoon Sep 15. 2016

#18. 태고의 섬, 자연의 보고

Posted by DONGYOON_HAN / 2014년 12월 여행 중

지역 이름만으로 경이로운 곳이 있다. 나에겐 '파타고니아'가 그랬고 '갈라파고스'가 그렇다. 두 지역은 그 지역의 이름만 들어도 생경한 느낌에 압도당한다. TV로만 보던, 아니 TV로 보고 있어도 자연의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이 가득했던 갈라파고스.

에콰도르 본토에서도 1,000km 떨어져 있는 갈라파고스 군도는 4개의 큰 섬과 나머지 작은 섬들을 통칭해서 불리는 지역이다. 자연보호 지역이기 때문에 군도에 입장하는 여행객 수를 제한하는데, 비행기로 섬에 도착하자마자 수많은 바다사자와 이구아나가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자연보호를 위한 입장 제한의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었다.

동물과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사람이 조금은 불편할 수 있다. 바다사자가 우는 소리에 밤에 잘 때 불편할 수 있고, 작은 이구아나를 밟을까 조심스럽게 길을 걸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이 이 세상의 주인이 아니듯, 자연과 공존해야만 사람도 살아갈 수 있듯이, 자연과 생물과 함께 살아가는 갈라파고스에서 우리는 또 다른 삶의 방식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어릴 적 아침에 동네가 떠나갈 정도로 시끄럽게 지저귀던 참새들과, 봄이 되면 어디서든 날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나비들은 어디로 간 것일지. 도심에 사는 우리는 극단적으로 자연과 공존하는 법을 잊었는지 모른다.

책에서만 보던 파란발부비새
어디서든지 낮잠을 자는 바다사자

갈라파고스를 여행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비싼 축에 속하는 크루즈 투어를 선택했다. 여행자들이 가장 지갑을 쉽게 여는 심리 중 하나인 '여기까지 왔는데 이 정도는...'이라는 마음이 들기도 했고, 또 하나의 합리화 중 하나가 세계일주를 하는 중 새해를 맞이하는 것을 갈라파고스, 그중에서도 크루즈 투어를 하면서 보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며칠간 여러 가지 여행사를 돌아다니며 알아본 뒤, 딱 한 자리가 생겼다는 여행사 직원의 추천을 받고 바로 이튿날 3박 4일 코스의 크루즈 여행을 시작했다.

선인장 뜯어먹을 준비중인 이구아나 
초대형 거북이와 함께 먹이 찾기

다른 여행자의 말처럼, 1주일은 길고 4일 정도는 크루즈 여행이 좋았다. 배에서 잠을 자는 구조는 아무래도 불편하기 마련이고, 대지가 아닌 섬을 돌아다니면서 여행하는 것도 여행사의 가이드 투어처럼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적당한 제재를 감수할 수 있는 3박 4일은 매력적인 여행이었다.

장난꾸러기 바다사자와 스노쿨링, 다이빙을 어디서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여행의 큰 목적 중 하나가 바로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것이다. 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신기한 동물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지만, 세계 최고의 다이빙 포인트라 불리는 갈라파고스에서 스쿠버다이빙을 빼놓을 수 없었다. 필리핀과 이집트도 다이빙의 천국이지만, 사실 거북이 한 마리를 40분간의 다이빙에서 보기가 쉽지는 않다. 그런데 그 보기 힘든 거북이가 갈라파고스 다이빙 포인트에 들어가자마자 서너 마리가 줄지어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수온이 낮고 조류가 심하며 시야도 좋은 편이 아니다 보니 다이빙의 난도가 높은 편이지만, 그만큼 환상적인 수중 생물과 함께 다이빙을 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흔하디 흔한 거북이와 상어들보다, 만타와 망치상어를 찾아야 한다는 다이빙 가이드의 말을 듣고 낮은 수온과 심한 조류 속에 정신 똑바로 차리고 다이빙을 했고, 결국 만타도 망치상어도 짧게나마 볼 수 있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약 100회의 다이빙을 했지만, 갈라파고스에서의 다이빙은 차원이 다를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일부러 맞춘 것이지만 갈라파고스에서, 그중 크루즈 투어를 하면서 2015년 새해를 맞이했다. 시끌벅적한 마이크 소리와 음악, 그릭 폭죽놀이가 평소의 갈라파고스 군도의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행여나 동물들에게 스트레스나 피해가 가지 않을까?라고 생각도 들었지만, 주민들 또한 동물 보호로 인해서 불편을 겪고 있을 수 있는 것을 1년 중 하루만큼은 이해해 달라는 제스처가 아닐지 생각이 들었다.


이별, 퇴사, 여행 등 다사다난한 2014년을 갈라파고스 군도에 있는 이사벨라 섬에서 마무리를 지었다. 30년간, 지금까지는 이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는 어떻게 또 살아가게 될지 기대되고 겁이 나고 또 생각이 많아지지만, 무엇보다도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마음을 유지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며 한 해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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