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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Dongyoon Jan 15. 2020

#28. 응답하라 우리의 1994

Posted by DONGYOON_HAN / 2014년 9월 여행 중

Zacualpan de Amilpas에 봉사활동을 위해 방문했으니 일을 해야지. 우리 워크캠프 팀이 맡은 임무는 축제에 필요한 다양한 일에 보조 역할을 맡는 일이었다. 사실 특별한 기술이나 재주를 가지고 이 축제에 도움이 되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러지 않다 보니 보조 역할을 빙자한 사실상 '초대 손님'으로서 축제를 준비하는 구석구석을 직접 보고 참여할 수 있었다. 멕시코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벌어지는 축제라니! 흡사 지구 반대편에 사는 여행자가 전라북도 작은 마을에 고추장 축제에 참여해서 우리 전통을 체험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지 않는가!

시작은 얇은 종이였지만, 그 종이가 쌓이고 쌓여서 멋진 장식품이 된다

멕시코의 현지 전통음식을 무한정 먹고 그들이 마시는 음료와 술을 마시고 그들의 보내는 취미를 공유했던 약 열흘간의 시간은, 다시금 여행을 왜 해야 하는지를 느낄 수 있던 값진 시간이었다. 사실 세상에 많은 여행이 종류가 있을 것이다. 내가 멕시코 이 작은 마을에서는, 지금 우리의 일상에서는 찾기 힘들어진 이웃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공동체를 경험할 수 있었고, 그 속에서 과거의 이웃과 더불어 살던 모습을 회상할 수 있었다.

붙이고 말리는 과정이 지나, 이재 채색작업으로!

처음엔 온 마을 사람들이 왜 이렇게 종이 공예품을 몇 날 며칠에 걸쳐 정성스럽게 만드는지, 큰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아닌데 젊은 친구들이 모여서 작품에 대해 골똘히 고민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 이번 축제에 온 마을 젊은 친구들이 이렇게까지 늦은 밤까지 공을 들이는지 이해가 되진 않았다. 경연대회도 아니고 상금이 걸린 일도 아니지만, 그들은 낮이건 밤이건 이 축제 기간에는 모두가 모여서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작품 하나하나의 완성도도 물론 훌륭했다.

5~10m에 육박하는 거대한 작품도 모두 우리 손에서

그럼 바로 되물어볼 수 있는 것이, 내가 한국에 돌아가서 친구들이랑 이렇게 정성과 시간과 공을 들여서 이들처럼 준비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만약에 한번 모여보자! 해서 사람들이 실제로 모였다고 가정해보면, 대체 우리는 왜 모인 걸까? 우선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나 큰돈을 벌 '건 수'가 있거나, 대학생 때라고 하면 스펙을 쌓기 위해 준비하던 공모전 - 다시 말해 취업이 걸린 일일 것이고, 아니면 취미로 모였다면 영화 혹은 스쿠버다이빙과 관련된 사람들이 모였을 것이다.

우리 팀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진중하게 작업에 참여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내 주위에 사람들이 모인 목적이 모두 개인적인 편익을 취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취미생활은 개인의 만족과 성취감이 주된 목적일 것이고, 돈과 취업은 두 말할 나위가 없이 개인적인 영달이 그 이유다. 하지만 내가 함께한 이 곳의 마을 사람들은 개개인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 모인 것이 아니라, 마을에 있는 큰 축제를 위해서 모두가 각자의 시간을 조금씩 할애하는 것이다. 그들은 축제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통해서 서로가 함께 사는 공동체 의식이 더욱 강해지고, 서로에 대한 이해가 넓고 깊어지면서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가는 것이다. 이해의 폭은 더욱 넓어지고, 희로애락을 공유하면서 그들은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태어나 이렇게 많은 말을 탄 사람들을 본 적이 있던가

씁쓸했다. 학창 시절까지만 해도 축제나 학생회를 위해 각자의 시간을 기꺼이 내어 준비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또 실천하기도 했다. 그런데 직업이 생기고 주위 친구들은 하나둘씩 서로의 가정이 생기면서, 나와 함께 추억을 공유했던 사람들과 만나는 횟수도, 모이는 이유까지도 점점 그 크기가 작아지고 있다. 서로가 더 행복하기 위해서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 그 방향이 행복으로 향하는 방향인지가 의심될 정도로 무엇을 위해 노력하고 시간을 보내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향을 피워 전통 의식을 거행한 뒤 전통 의상을 입고 이어지는 군무

따지고 보면 어릴 때까지만 해도 이웃 간에 왕래도 많았고 윗 집 아랫집이 따로 나뉘지 않을 정도로 주위 사람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았다. 각 집에 문을 활짝 열어서 어느 날은 옆 집에서 만두를 같이 빚고, 또 다음 날은 윗 집에서 야채를 다듬고, 해질 무렵엔 다 같이 모여서 삼겹살도 구워 먹었다. 사정이 없는 집이 어디 있으리오. 다른 친구들보다 마음이 조금 아픈 딸을 키우는 옆집, 포르투갈로 이민 가게 되어 축하와 동시에 아쉬움을 나눴던 듬직한 형제를 키우던 윗집, 우리 집과 비슷하게 화목한 분위기에 성당에 열심히 다니던 아랫집까지. 서로가 기쁜 일에는 다 함께 기뻐해 주고, 슬픈 일에는 다 함께 그 슬픔을 덜고자 노력했다. 가진 것은 지금보다 훨씬 적고 부족했지만, 응답하라 1994년도 그때의 우리는 나를 위하는 만큼 나랑 함께 사는 주위 친구들과 이웃들을 위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우리의 작품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

나도 그렇고 우리 모두가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을 것이다. 그렌데 누구든지 열심히 사는 과정에서 한 번쯤은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물론 정답이 있을 리 만무하고 오답을 선택했더라도 그것이 누구나의 인생이다. 그 인생에 정답과 오답의 수많은 기쁨과 슬픔이 있을 것인데, 이 기쁨과 슬픔을 나눌 이웃과 친구가 없다면 그 즐거움의 크기도 오롯이 혼자서, 그리고 슬픔 또한 나누지 못하고 더 아프고 상심할 것이다.

드디어 끝났다! 이제 마시자! 쌀루트!

몇 주간의 노력과 준비를 거쳐서 우리는 아주 성공적으로 축제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수천 명의 관람객을 유치하고 큰 사고 없이, 즐겁게 준비한 만큼 즐겁게 마무리했다. 욕심보다는 배려가, 질투보다는 응원이 많은 이 곳의 사람들을 통해서, 불과 몇 년 안 된 것 같은 과거의 함께 동고동락했던 이웃들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전통과 문화를 이어가고자 하는 큰 흐름이 이들을 뭉치게 한 것이 아닐까. 한국에서의 우리는 우리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소중함이 많이 옅어져서 그런 건 아닐까. 여하튼 이렇게 사회가 변하게 된 많은 이유가 있겠고 예전보다 윤택하게 삶이 바뀐 것 같지만, 마음이 공허 해지는 건 사실이다. 자주 떠드는 말이지만 난 캐피털리즘이 싫다.

전통과 문화를 가슴속에 깊이 간직하고 멋진 어른으로 성장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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