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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e Nov 07. 2023

삼십년 만에 자취 시작한 감격의 셀프 인터뷰 #2

요새 또 '인생 고민―어떻게 살아야 할까'이 많아지고 있다. 한 해 마무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탓일까. 곧 한 살 더 먹을 거란 사실에 초조해진 탓일까. 저번 편에서는 너무 일 이야기만 했는데, 이번에는 나를 둘러싼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기로 한다.


(이전 편 참고)





Q. 최근 본인에게 있었던 가장 큰 변화를 말해달라.


최근 자취를 시작했다. 30+n년 만의 첫 자취다. 처음에는 혼자 살면 너무 고독하지 않을까 했는데 웬걸, 전혀 그렇지 않다. 200% 만족 중이다. 원체 혼자 있는 걸 즐기는 성향인데다가(나는 대문자 I다. 못 믿는 분들도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카페나 식당이 근처에 많아서 주변 탐방하는 재미도 있다.


집을 구할 때 조건으로 1. 녹지가 가깝게 있을 것, 2. 동네가 조용할 것, 3. 도서관이 가까울 것. 이 세 가지를 중점적으로 봤다. 고르고 골라서 지금 이 동네(도곡동)로 왔는데 아주 좋다. 양재천이 가깝고, 동네가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고, 도서관이 가까이 있다. 심지어 테니스장도 가깝다!

양재천 가을풍경


자취하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만족은, (유현준 교수님의 말처럼) ‘나만의 규칙으로 공간을 구성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처음 가구를 배치할 때부터 작은 소품을 들여놓을 때까지 하나하나 나의 방식대로다. 빨래를 개는 방식, 화분에 물을 주는 시간, 책을 진열하는 규칙 등등. 내가 안 움직이면 모든 게 그대로라는 사실이 귀찮기도 하지만 내가 움직인 대로 다 바꿀 수 있다는 건 꽤 큰 희열이다. 역시 행복은 주체성에 있는 게 아닐까.


아이패드로 도면 그리고 난리도 아니었음
원룸 꾸밀 때 가장 도움이 된 영상
집 자랑~.~


Q. 집들이 선물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아이템은?


감사하게도 시계, 잠옷, 위스키, 와인셀러, 침구, 식탁 등 크고 작은 선물을 많이 받았다. 그 중에서도 단연코 가장 마음에 들고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건 스피커다. 자취를 생각하면서 '스피커는 꼭 좋은 걸 사야지'하고 고심해서 골라뒀던 모델을 선물로 받았다. 층간 소음이 두려워 크게 틀지는 못하지만..

사운드 좋은 카더가든 스피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토요일 아침 대청소 타임이다. 일곱시 반쯤 일어나 창문을 활짝 열고 음악을 튼다. (요즘 같은 날씨엔 시티팝이 어울린다) 먼저 세탁기를 돌려둔 채 청소기를 켠다. 집이 작아서 바닥 청소가 얼마 안 걸린다. 바닥을 다 밀고 나서 선반의 먼지를 닦는다. 빨래가 다 되면 탈탈 털어 볕에 말리고 분리수거를 한다. 행주 삶기와 화장실 청소까지 하는 날은 오전이 다 가기도 한다. 이런 청소 리추얼(?)이 가능한 건 스피커 덕분이다. 스피커를 틀어놓고 하는 대청소는 집뿐만 아니라 내 멘탈도 깨끗하게 한다. 말끔하게 정리된 집에서 창문을 활짝 열고 쉬는 조용한 토요일 오후의 행복을 아시는지? 요즘엔 주말에 어디 나가기가 싫다. 에너지 넘치던 청년은 이렇게 집돌이 아저씨가 된다.



Q. 평소 아침 루틴이 있다고 들었는데.  


아침에 일찍 일어나려고 하는 편이다. 올해 들어 5시 기상을 꽤 오래 도전했는데, 사실 내겐 5시가 지속 가능하지는 않았다. 다만 6시나 6시 30분정도 일어나는 건 할만하다. 지금도 6시 30분이면 그냥 눈이 떠진다. (피곤할 때는 다시 잠들기도 하지만) 6시 30분에 일어나면 물 한잔을 마시고, 따뜻한 커피를 내려놓고(네스프레소 만세!), 세수를 한다. 그리고 전날 펼쳐둔 책을 읽거나, 인터넷 뉴스를 본다. 사실 6시 30분에 일어나도 시간이 여유로운 느낌은 아니다. 뭔가 할라치면 어느새 출근 준비 할 시간이 돌아온다. 그래도 1. 아침 산책을 하거나, 2. 집 정리를 하거나, 3. 업무 정리를 미리 하거나, 셋 중 하나는 꼭 하려고 한다. 나를 가꾸거나, 내 주변을 돌보거나, 그것도 아니면 생산성을 올리는 데 투자하는 거다.

이게 딱 오전 7시 풍경(하절기 기준)

아, 요새는 커피를 줄이기로 해서 아침에 주로 차를 마신다는 점이 달라졌다. 볕이 잘 드는 거실에서 아침에 조용하게 잎차를 마시는 기분은, 아는 사람만 아는 행복이다. 나는 하루를 잘 시작하는 사람이 가장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Q. 퇴근 후의 시간에는 주로 무엇을 하며 지내나?


퇴근 시간이 들쭉날쭉한 편이라 정해진 건 없다. 야근을 마치고 오면 아홉시 정도가 되는데, 일주일에 한 번은 러닝을 하려고 한다. 참고로 나는 달리기를 (아직도) 싫어한다. 지금의 범세계적 러닝 열풍은 나이키 같은 거대 기업이 주입한 환상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계속 뛰는 이유는.. 요새 뱃살이 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가장 손쉽게 체력을 기를 수 있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진짜 체력이 좋아졌냐고? 최소한 그런 느낌이라도 난다.


달릴 때 늘 나의 한계와 만난다. 그러면 나는 스스로와 게임을 시작한다. '이왕 나왔는데 여기서 포기할래, 저 다리까지 뛸래?' '지금 56분인데 그냥 그만둘래, 아니면 정각까지 뛸래?', 이런 식이다. 나를 타일러 가며 (어떨 때는 질책해 가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끌어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사실 그렇다고 해서 뿌듯하거나 상쾌하거나 하진 않는다. 뱃살도 빠지지 않는다. 근데 그냥 뛸 뿐이다. 하루키의 말처럼.

개개의 기록도, 순위도, 겉모습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평가하는가도, 모두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와 같은 러너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의 결승점을 내 다리로 확실하게 완주해가는 것이다. 혼신의 힘을 다했다, 참을 수 있는 한 참았다고 나 나름대로 납득하는 것에 있다. 거기에 있는 실패나 기쁨에서, 구체적인―어떠한 사소한 것이라도 좋으니, 되도록 구체적으로―교훈을 배워 나가는 것에 있다. 그리고 시간과 세월을 들여, 그와 같은 레이스를 하나씩 하나씩 쌓아가서 최종적으로 자신 나름으로 충분히 납득하는 그 어딘가의 장소에 도달하는 것이다. 혹은 가령 조금이라도 그것들과 비슷한 장소에 근접하는 것이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Q. 요새 글쓰기는 잘 안 하는 것 같은데,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지금은 반박불가 영상 콘텐츠 시대다. 갈수록 점점 더 짧은 영상으로 대세가 기울고 있다. 그 와중에 나는 이렇게 긴 글을 쓰고 있다. 언제나 글은 써지지 않고,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숏폼의 시대에 긴 글이라니. 이 무슨 시대착오적 에너지 낭비인가. 문장을 고친답시고 책상에 앉아 방구나 북북 뀌어대며 애먼 노트북을 두들기는 게 무슨 소용인가. 결국 지구에 (메탄을 비롯한) 탄소 배출만 더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게다가 고백하자면 나는, 영상 콘텐츠에 대해서 너무 무지할 뿐더러 잘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글이 더 우월하고 고상한 분야라는 도취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요즘은 반성하는 의미에서 유튜브라도 시도해봐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브이로그를 하자니 내 일상이 너무 단조롭고(K-스타트업 직장인의 삶).. 도움 되는 영상을 찍자니 크게 도움이 될만한 주제가 없고.. 내가 생산할 수 있는 콘텐츠에 대해 전반적으로 점검하는 중이다. 뭐가 됐든, 앞으로도 어떤 방식으로도 이야기는 계속 해나가고 싶다.



Q.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풍요롭게 사는 것이 내 인생의 목표다. 인생의 풍요는 배움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이 70을 먹고도 '새로운 걸 배우고 싶어 안달난 사람'으로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최근에 80대 현역 한의사 선배님과 단둘이 식사할 수 있는 자리가 있었는데, 아직도 그의 말씀을 잊지 못한다. 여전히 정정하신 목소리로 '은퇴는 5년 뒤 정도로 계획하고 있다'며, 은퇴 후에 아코디언 연주를 하고 싶어 요새 틈틈이 유튜브로 아코디언을 배우고 있다고 하셨다. 참 젊게 사신다는 생각이 진심으로 들었다. 배움에 대한 열망, 더 나은 자신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희미해지지 않으며 나이드는 것이 내 목표다. '이만하면 됐지' 라든가 '남은 여생은 그냥 편하게 살래' 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르지 않는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계속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는 여력과 체력과 재력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요즘 나의 인생 고민이 뭐냐고? 결국 또 커리어/미래에 관한 것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세상은 이렇게 빠르게 바뀌는데 정말 나는 나아가고 있는 게 맞나? 이왕 자본주의 사회에 태어났으면 돈이라도 오질나게 벌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것들. 


최근엔 (역시 오랜 고민 끝에) 전공을 과감히 바꿔 대학원에 간 친구와 얘기를 하는데 많은 위안이 됐다. "사회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에 짓눌리지 말고 좋아하는 거 당당히 하는 게 행복한 삶이 아닐까"라고 말하는 그의 의연함에 놀라기도 했고 말이다. 그 호쾌한 말투에 얼마나 많은 고민이 녹아 있을 줄 알아서 더 응원하게 됐다. 덕분에 나도 요새 해이해졌던 마음을 다시 다잡았다. 


나나 그 친구처럼 고민이 선천적으로 많은 인간들은 어쩔 수 없다. 끝없이 밀려드는 고민들을 다 맞서서 싸워낼 수는 없다. 그러다간 고민에 잠겨 죽을 뿐. 서핑을 한다는 마음으로 파도를 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살아 있는 한 너울은 끊이지 않을 거다. 중요한 건 가라앉지 않고 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요즘 산 물건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 클립형 독서등


역시 머릿속이 복잡할 때는 책을 읽는 게 최고다. 여러 권을 늘어놓고 마구잡이로 읽는 병렬형 독서를 다시 시작했다.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 매우 추천. 나도 언젠간 기록할 나의 역사를 쌓아가는 중이라고 생각하며 조금 더 삶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려고 한다. 어쨌거나 오늘은 여기까지. 궁금한 질문이 있으면 댓글로 남겨주시면 다음 인터뷰 때 반영해드립니다.


(2023.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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