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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e Jan 03. 2021

2020 TMI 어워드

한 해 결산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한다. 2019년 연말 결산을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생각해보면 이 말은 매년 하는 말이다. 이제 좀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시간은 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흐르는 것 같다.



올해의 지출 - 와인


본격적으로 경제활동에 뛰어들어 주머니 사정이 조금 낭낭해졌다. 게다가 평일엔 일하느라 주말엔 집에서 자빠져 쉬느라 (본의 아니게) 돈이란 놈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그렇게 연말까지 쭉 쌓기만 했다면 좋았으련만, 주변에 와인을 좋아하는 친구가 몇 있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친구 따라 와인의 세계에 입문했고 마침내 사람들이 왜 와인에 열광하는지 알아버린 것이다. 눈이 번쩍! 더 나아가 비싼 와인을 몇 개 마셔본 뒤로는 결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물론 아직 와인의 등급이나 풍미를 정확하게 감별할 정도는 아니지만, 여러 번의 실패와 성공을 반복한 뒤로 내게도 취향이라는 것이 희미하게나마 생겼다. 내년에는 더 많은 산지와 품종에 도전해야지. 와인에 대한 관심은 늘 있었던 터라 올해를 시작하면서 귀엽게 '와인 5병 이상 구매 후 시음 노트 작성하기'를 목표로 삼았었는데, 웬걸, 한 해를 돌아보면서 여태 마신 와인을 세어 보니 50병이 훌쩍 넘는다. 쩝. 목표를 초과 달성한 건 기분이 좋긴 한데.. 뭔가 잘못된 느낌은 뭘까? 그리고 한 가지 더 알게 된 사실. 좋은 술도 술이지만 누구랑 마시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한 해동안 저랑 와인 마셔준 분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내년에도 함께해요.

 

올해의 모임 - 버킷리스트 프로젝트


올해 초 지인들과 그 지인의 지인들을 모아 야심차게 시작한 프로젝트. (힌트를 주신 호진님 감사합니다!) 한 해 동안 이루고 싶은 목표를 정하고 달성하기 위해 열 명 남짓의 사람들이 모였다. 1. 직접 이루고 싶은 목표나 되고 싶은 모습을 구체적으로 적고 2. 한 달에 한 번씩 만나서 잘 진행되고 있는지 여부를 각자 발표하는 모임이다. 내가 막연하게 그리고 있던 이상적 모습을 직접 시각화하고 리마인드한다는 점에서 좋았고, 무엇보다 일 년이라는 긴 호흡의 시간 동안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가장 뿌듯했다. 팀원들과 도움과 영감을 주고받은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서로 교류하며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장점은, 각자 부족한 부분은 남들의 리스트를 보고 배워올 수 있고 또 비슷한 목표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는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또한 매달 팀원들이 돌아가면서 호스트를 맡아 미술관 관람이나 등산 같은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풍요로운 모임을 꾸렸고, 서로 다른 분야에 있는 사람들과의 간접 경험을 통해서 시야가 더욱 넓어졌다.


모임을 하면서 습관 고치기 관련된 부분에서 나름 성과를 거뒀고, 책 20권 이상 완독, 글쓰기 24편 이상, 강의 수강 3회 이상 등등 꽤 이룬 것이 많다. 역시 목표를 높게 해서 잡아놓으니까 반타작만 해도 성과가 있다. 올해 코로나의 재유행으로 마지막 모임 겸 파티를 멋들어지게 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쉽지만, 미진했던 부분을 보완해서 또 도전할 계획이다. 참여 의사가 있으신 분은 알려주세요. 참가 조건 : 열정적이고 선한 사람일 것!  



전례 없는 저점 (a.k.a 내 생일) - 저게 생일선물이었는데.. 저 때 잡았어야 했는데..

올해의 소득 - 금융문맹 탈출


올해는 드디어 재테크를 시작했다. 매달 여윳돈을 적금 통장과 증권 계좌에 반반씩 넣고 되는 대로 굴려보기로 했다. 어쩌다 보니 남들 하는 대로 주식을 시작했는데,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소리만 들어서 포트폴리오가 엉망이다. 국내/해외 돌아가면서 꽂히는 거 한 주씩 사다 보니까 지금은 계란이 온 지천에 널려 있다. 그렇게 깨진 계란으로 프라이도 하고 계란말이도 하다가 얻은 교훈. 매수보다 매도가 훨씬 어렵다는 것. 인간 지표의 반대로만 가면 수익이 나지만,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인간 지표 중 하나라는 것. 그래도 역대급 변동성 장 덕분에 상승 곡선에 잘 올라타서 수익을 보는 중이다. 12/31 기준 대략 한 달 월급 정도의 금융 소득이면 꽤 짭짤한 듯.(대부분 테슬라와 비트코인이다.. 그냥 사놓고 까먹은 것들..) 내년 목표는 소박하게 두 달 월급으로 해야겠다. 지금처럼 대강 때려 맞춰 사는 게 아니라 경제 공부를 바탕으로 원리원칙에 입각한 매매를 하기로. 돈이 일하게 하라! 나는 그만 일하고 싶다!



등산 중 남산뷰와 러닝 중 한강뷰
장마철에는 러닝을 하지 맙시다

올해의 실패 - 운동


나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아니어야 한다) 코로나 이슈로 운동을 하다 말다 반복했다. 호기롭게 PT를 등록했으나 한 달이 조금 지난 무렵 강제 휴무를 당했고, 지금까지 홈트로 깨작깨작 할 뿐 다시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헬스뿐만 아니라 테니스를 배워보고자 했었는데 그마저도 시간 관계상 힘들었다. 러닝은 간헐적으로 시도했으며 큰 맘먹고 동네 러닝 크루에까지 가입했는데, 매서운 한파가 들이닥쳐 당분간 또 방학을 맞았다. 그나마 풋살 정도만 규칙적으로 한 정도랄까. 그래. 반성한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기 시작하면 운동하기 좋은 때가 어디 있겠나. 지금 이 순간에도 할 사람은 잘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또 자괴감이.. 내년에는 정말 핑계 대지 말고 꾸준히 해야겠다. 마음 같아서는 아파트 헬스장만 열리면 주 5회 헬스장 죽돌이 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일단 헬스장 기다리지 말고 맨몸 운동부터 하자 제발. 자꾸 주변에서는 골프 같이 치자고 꼬시는데 잘 모르겠다. 아직 그렇게 정적인 운동은 별로 땡기지가 않는 걸 보니 나 아직 아저씨 아닌 듯?




올해의 잘한 일 - 흑백사진 촬영 


나는 정말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자꾸 주변에서 난리였다. 내년에 이제 삼십 줄인데 사진 하나 남겨야 되는 것 아니냐며. 12월 31일과 1월 1일은 몇 시간 차인데 폭삭 늙기라도 하는 것인가? 삼십 대가 되면 갑자기 비가역적인 변화라도 나타나는 것인가? 하지만 결국 공포 마케팅을 이기지 못하고 요새 유행한다는 셀프 흑백 사진을 촬영하고 말았다. 참고로 나는 사진 찍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그것도 스튜디오 촬영은 더더욱. 원체 카메라 렌즈를 어색해하는데 초면인 사진사가 찍어주기까지 한다니. 거기다가 그가 나의 굳어진 표정을 풀려고 온갖 재롱을 떨기까지 한다면. 웩, 그만큼 힘든 일도 없다.(그에게도 나에게도 고역이다. 지구의 불행의 총량이 증가하는 것이다) 셀프 사진관은 이런 고역에서 자유롭다는 점에서 그나마 괜찮았다. 그리고 사진도 나름 만족스러웠다. 혼자 가라면 못 갔을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사진이 한 장 남았고 나도 반갑게 서른을 맞았다. 그나저나 서른 별거 없더만 뭘.




2020년도는 다들 힘든 한 해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안 그랬으면 좋겠지만) 어쩌면 2021년도 마찬가지일 수도 있다. 올 한 해를 보내면서, 아주 역설적으로, 이 고난 속에서도 행복을 발견해내야 한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는다. 이건 무효라고 우기고 부정해봤자 소용이 없다. "낙원은 일상 속에 있든지 아니면 없다." 김훈 작가의 말이 다시 묵직하게 가슴을 울리는 요즘이다. 다들 일상 속에서 낙원을 찾는 한 해가 되길.


(2021.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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