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결산
2019년부터 루틴하게 해오던 TMI 어워드, 아무리 요즘 브런치와 권태기라지만 이것만은 빼먹을 수 없어서 오랜만에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나저나 왜이렇게 결산이 빨리 돌아오는지. 누가 좀 말려줘요.
2022년 3월, 잘 다니고 있던 병원을 때려치고 스타트업에 입사하게 된 나. 팔자에도 없는 IT 회사원이 되어 테헤란로를 거닐게 되었다. 처음엔 키카드 목걸이를 찬 내 모습이 신기해 (남들 다 한다는) 화장실 셀카를 찍어 방방곡곡에 알리고 싶었으나.. 위워크 남자화장실에 소변기가 적나라하게 나오는 바람에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입사한지 어언 10개월 차, 이제는 거의 피부와도 같은 키카드 목걸이. 이게 없으면 위워크 건물 내에서 미아가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늘 잘 휴대하고 다녀야 한다. (엘베도 못탐) 아마 올해 가장 나와 스킨십을 많이 한 아이템이 아닐지. 23년에는 회사가 신사옥으로 이전한다고 하는데 섭섭해서 어쩌나?
스타트업 투자 혹한기에 세계적 불황이 겹쳤지만, 다행히 우리 팀은 시리즈B 투자에도 성공하고 내실을 다지고 있는 단계라 앞으로 기대가 되는 부분이다. 한 해 또 열심히 가보자고!
나는 원래 사람 많고 시끄러운 곳을 질색하는 편인데, 한 가지 예외가 있다. 바로 밴드 공연장. 대학 시절 밴드 연습실에서 청춘을 낭비해서 그런지, 커다란 앰프에서 나오는 묵직한 사운드는 늘 가슴을 뛰게 한다. 특히 쏜애플Thornapple은 나의 대학 시절 최애 밴드다. 동아리 정기공연의 마지막 고별 무대(?)를 그들의 곡으로 할 정도였으니. 어쩌면 나의 젊은 날의 표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번번이 티켓팅엔 실패하던 와중, 이번엔 한 금손 후배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티켓을 구할 수 있었다. 무려 크리스마스 이브에 인디밴드 공연 솔플하는 사람 나야 나. 오랜만에 공연장에 가서 신나게 떼창 부르며 뛰어놀다 왔다. 하지만 동시에 ‘이제 이런 공연도 마지막이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 주변 다른 관객들의 텐션에서, 특히 그 상기된 얼굴들에서, 내가 도무지 따라할 수 없는 무아의 경지를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혹시 몰라 슬랙 알림을 켜두었는데 말이다. 그 대책없이 자유분방한―자유에 무슨 대책이 필요하겠냐만은―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의 옛 모습이 겹쳐지다가도, 이제 나는 이곳에서 잘 못 노는 사람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문득 쓸쓸해졌다. 오래 서있어서 무릎이 아파서 그런 거 아님. 아무튼 아님. 미스터 트롯이나 보러 가야 하나.
고동이와 만난 지 어언 1년이 지났다. 올해는 특히 이 녀석이 아픈 바람에 난생처음 동물병원에도 가보고 고양이를 위한 선물(빨간 망토)도 사 봤다. 여느 SNS 쇼츠에 등장하는 귀여운 고양이들처럼 애교를 부리지도, 대단히 쓸모가 있지도 않지만 계속 보다 보니까 정이 들긴 하더라. 누가 못생겼다고 그러면 괜스레 울컥한다. 뭐래, 콧구멍도 까만 주제에. 고동이는 콧구멍이 핑크색이란 말이야.
한 해 동안 새로운 생각을 가장 많이 하게 해준 만남이 아닐까 싶다. 삼십 년간 나밖에 몰랐던 내게 전혀 새로운 세계가 열렸으니.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고양이 집사 노릇을 하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입양 가기 전까지 임시보호일 뿐이고 곧 아픈게 다 나으면 또 좋은 주인을 만날 수 있을 거다. 녀석이 어딘가로 가기 전에 작은 소망이 있다면, 한번쯤은 안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배를 조금만 만져도 아주 발광을 해서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내가 준 츄르가 몇 갠데 나한테 이러기 있기냐, 이 자식아.
내가 북 큐레이션에 참여한―사실 그냥 책 몇 권 사다 놓은―역삼역의 책바, MyLittleCave. 줄여서 마리케. 여기 사장님(a.k.a 사촌누나)이 유명한 진 Gin 마니아라 매장에 진이 종류별로 매우 많다. 진토닉은 다 거기서 거기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다채로운 맛이 날 줄이야.
그 중에서도 내 입맛을 사로잡은 진이 있었는데, 바로 '르진Le Gin de Christian Drouin'. 특히, 그 중에서도 '깔바도스 캐스크 피니시'. 도수 43도에 육박하는 이 진은 열자마자 달큰한 사과향기가 코를 찌른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국적인 향신료, 오크, 열대과일 파티. 첫 잔은 스트레이트로 마시고, 두 번째 잔은 진토닉으로 마시는 게 국룰이다. 그리고 토닉 워터를 탈 때는 최대한 향이 적은 걸로 배합하시는 걸 추천. 혹시나 마리케에 가시거나, 아니면 칵테일 바에서 진토닉을 마실 일이 생긴다면 이 르진을 드셔보세요. 제일 비싸서 추천하는 건 아닙니다..
p.s. 르진 덕분에 나는 이제 바에 가서 ‘늘 먹던 걸로’를 외칠 수 있는 남자가 되었다. 요즘 말로 상남자 특이라고나 할까?
달리기는 나와 평생 관련이 없는 운동일 줄 알았다. 어렸을 적 기흉(폐에 구멍이 나는 질환)을 세 번이나 앓아 늘 남들보다 먼저 숨이 차고 그랬으니까. 하지만 핑계는 20대까지만 대기로 했다. 나는 이제 어른이니까. 만 서른이 된 올해부터 달리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난생 처음 10K 마라톤도 완주했다. 다행히도 달리다가 피를 토하거나 폐가 터져서 죽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목표했던 누적 달리기 200km도 거뜬히 넘겼고 말이다.
달리기를 하면서 가장 크게 실감하는 부분은, 함께 시도할 때 더 큰 성취를 경험한다는 점이다. 사람들과 함께 달리면 늘 이상야릇한 고양감이 든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던가. 혼자라면 진작 포기했을 거리도 어느새 훌쩍 넘기고도 체력이 남는다. 이건 일종의 집단적 마취 현상이 아닐까. 이를테면 유사 프로포폴이랄까? 추하게 흐느적거릴 필요도 없고 경찰서에 잡혀갈 걱정도 없는, 아주 상쾌한 마취제 말이다.
처음 나를 달리기의 세계로 이끌어준 NORC와, 사내 마라톤 모임을 꾸준히 이끌어준 팀장님과, 그간 함께 뛰어준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올해는 10K 1시간 내 주파를 목표로, 또 뛰자.
몇 주 내내 야근의 원흉이었던 프로젝트를 끝마치고, 조용히 평일 연차를 냈다. 일과 일상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떠나는 것이 목표. 컨셉은 무계획. 서울 근교 가볼만한 곳을 검색해 파주로 결정한 뒤, 바로 차를 몰고 달렸다. 가을의 한가운데 한적한 헤이리 마을이라니. P로 사는 것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네, 생각하며 음악 감상실 몇 군데를 즉흥으로 들렀다. 특히 콩치노콩크리트의 거대한 스피커로 평일 한낮 재즈와 클래식을 듣고 있자니 잠시 황홀하기까지 했다. 왜 사람들이 외제차 값을 주고 스피커를 사는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전동킥보드 값의 에어팟을 잘만 쓰는 나도 하마터면 흔들릴 뻔. 아래에 잠시 감상 타임.
헤이리 마을과 콩치노콩크리트를 거쳐 파주 장단콩백반을 한 그릇 때리고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을 들러 오는 완벽한 일정. 그런데 아뿔싸, 어렵게 도착한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이 때마침 휴관이란다. 좌절. 아, 역시 P로 살 수는 없겠다.
사실 나는 죽음에 무감각한 편이다. 누군가의 부고를 듣거나 기사에서 안타까운 소식을 접해도 쉽게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나는 늘 알 수 없었다. 유족들은 왜 그렇게 격정적으로 오래도록 슬퍼하는가. 왜 미련해보일 정도로 이미 지나간 죽음에 매달리는가. 산 사람은 그래도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올해 만난 신형철 평론가의 글은 내가 완전히, 형편없이, 틀려먹었다는 걸 알려주었다.
언젠가 기타노 다케시는 말했다. "5천 명이 죽었다는 것을 '5천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라고 한데 묶어 말하는 것은 모독이다. 그게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5천 건 일어났다'가 맞다."
이 말과 비슷한 충격을 안긴 것이 히라노 게이치로의 다음 말이었다. "한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그 사람의 주변, 나아가 그 주변으로 무한히 뻗어가는 분인끼리의 연결을 파괴하는 짓이다."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가. 누구도 단 한 사람만 죽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살인은 언제나 연쇄살인이기 때문이다. 저 말들 덕분에 나는 비로소 '죽음을 세는 법'을 알게 됐다. 죽음을 셀 줄 아는 것, 그것이야말로 애도의 출발이라는 것도.
신형철, <인생의 역사> 中
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그와 관계된 많은 사람에게 깃들어 있는 그의 모습, 즉 분인分人까지 사라진다는 것과 같다. 그래서 누군가를 먼저 떠나보낸 이들은 이런 표현을 한다. '내 안의 어떤 부분이 죽어 없어진 것 같아요'. 그 말은 은유가 아니라 현상에 대한 적확한 서술이다.
'누구도 단 한 사람만 죽일 수는 없다'는 말은 ‘단 한 사람의 사망도 참사’라는 말로도 읽힌다. 그렇다면 여러 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진짜 참사'는, 도무지 언어로 표현할 길이 없어진다. 얼마나 많은 생명과 그와 관계된 분인들이 동시에 빛을 잃는 것인가. 떠들썩한 축제와 긴박한 구조요청이 공존했던 올해 어느 날의 이태원. 그날 스러진 이들의 숫자를, 100명이니 200명이니 셀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그걸 이제야 글로 읽고 어렴풋하게 안다.
2022년은 정말 바쁜 한 해였다. 비록 선택과 집중을 하느라 놓친 것도 많지만, 개인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실감을 가장 많이 한 해가 아닌가 싶다. 콕 찝어 설명할 수는 없어도 어쩐지 잘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러분들에게도 의미있는 한 해였기를. 2023년도 잘 부탁드립니다. 올해는 뻥 아니고 진짜 꾸준히 쓸게요.
(2023.01.04)
지난 TMI 어워드를 보면서 느끼는 점.
1.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매해 다른 종목의 술을 꼽고(의도한 바는 결코 아님), 여전히 장발에 도전하고 있다(소름).
2. 기록은 어쨌든 힘이 된다.
잘 변하지 않는 나를 보는 것도, 조금씩 꿈틀대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나를 보는 것도 즐겁다.
3. (2019년 기록에 따르면) 2023년에는 에세이를 출간하게 될 거라는데?
그러나 저러나 다시 열심히 쓰겠습니다. 500분의 구독자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다들 새해 복 오백 배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