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눈물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웬만한 슬픈 영화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별의 순간에도 결코 우는 일은 없다. 꽤 심각한 수준이(었)다. 옛날엔 스스로가 소시오패스가 아닌가? 하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그런데 이게 웬일이람. 자칭/타칭 로봇이었던 내가 친구의 결혼식에서 눈물 훔치는 주책 하객으로 등극하고 만 것이다. 단상과 너무 가까이 앉은 탓이었을까. 벌써 갱년기가 온 걸까. 신랑이 내가 업어 키운 아들도 아닌데, 그는 심지어 나보다 형인데.
결혼식에 문제는 없었다. 늠름한 신랑과 곱디 고운 신부가, 더없이 행복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퇴장하는 아름다운 예식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양가 부모님은 아주 온화하고 뿌듯한 얼굴이셨고 코시국에도 많은 하객들이 모여 진심 어린 축하를 전해주었다. 여러모로 빛나는 결혼식이었다.
하지만 나는 영 뜬금없는 맥락에서 눈물이 터지고 마는데. 차라리 신랑 신부의 행진 장면이나 감동적인 축가의 순간이었으면 핑계를 대기도 수월했으리라. 그러나 신랑 아버지께서 성혼 선언문을 읽고 신부 아버지께서 축사를 읊는, 다소 지루한 타이밍에 혼자 뿌엥~ 해버리고 만 것이다. 아오 쪽팔려.
전혀 이상할 것 없는 평범한 식순이었다. 간만에 말끔히 차려입은, 적당히 멋지고 적당히 촌스러운 중년의 두 남자가 (자녀의 결혼식에서 거의 유일할) 본인의 역할을 잘 해낸 것, 그것뿐이었다. 특별히 심금을 울릴 만한 멘트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왠지 모르게 울렁대는 마음을 멈추기 어려웠다. 신랑 아버지께서 단상 위로 올라올 때부터 무언가 뜨거운 것이 가슴속에 스멀스멀 맺히기 시작하더니, 신부 아버지께서 박수를 받고 내려갈 즈음에는 거의 고개를 파묻고 있었다. 그렇다. 모든 것은 아버지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내 곁에 없는 그 남자. 이제는 있었다는 사실도 가물가물한 그 남자.
길고 장황한 변명보다는 하나의 영상을 첨부하는 편이 낫겠다. 훈련소에서 틀기만 하면 5분 안에 전부 울음바다가 된다는 전설의 착즙 광고를 아시는지? 현재 누적 조회수가 1천만에 이르는 KB금융그룹의 2015년 작품이다. 지금 봐도 참 잘 만든 광고라고 호평이 자자하다. (혼자 있을 때 보시길. 안 그러면 꼴이 말이 아닐 수 있습니다..)
영상은 대략 이런 흐름이다. 아이를 둔 젊은 아빠들을 섭외해 설문(사실은 몰래 카메라)을 진행한다. 질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적어보세요', '현재 가지고 있는 아이의 사진은 몇 장인가요', '아이의 자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으신가요' 등등.
이윽고 두 번째 설문으로 넘어간다. '아이'에서 '아버지'로 대상만 바뀐 질문지.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을 적어보세요', '현재 가지고 있는 아버지의 사진은 몇 장인가요', '아버지의 자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으신가요'.
아이에 관한 질문에는 거침없이 답변하던 젊은 아빠들이 쉽사리 답을 적지 못한다. 오래 고민하는 그들의 앞에, 제작진이 미리 준비한 아버지의 영상 편지가 송출되고. 아들에게 못해주어 늘 미안한 마음이 든다는 늙은 아버지들의 고백이 이어진다. 누군가의 아버지이기 전에 누군가의 아들이었던 젊은 아빠들은 눈시울을 붉히고, 뒤이어 영상 속의 아버지가 문을 열고 등장하는데...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나는 아버지와 이렇다 할 애틋 모먼트도 없고, 그가 아직 세상에 있다고 해서 나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을 리 만무한데도, 이 영상만 보면 눈물을 쏟는다. 왤까. 그에게 받은 적 없는 진심 어린 사과를 대신 받은 느낌이라서? 내가 그에게 준 적 없는 깊은 존경의 포옹을 대신 건네는 느낌이라서? 이렇게 쓰고 보니 문득 어떤 시집의 제목이 떠오른다. <무언가 주고받은 느낌입니다>.
새로 출발하는 부부에게 두 아버지가 덕담을 건네는, 그런 흔해빠진 순간에 왜 칠칠치 못하게 눈물을 흘렸느냐고. 그 장면은 내가 절대 가질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힘차게 성혼을 선언해줄 남자도, 다소 따분한 축사를 낭독해줄 남자도 없으니까. 나는 친구의 결혼식에서 비로소 실감한 것이다. 그간 잊고 있던 아버지의 부재를, 어찌해도 채울 수 없는 그의 빈 자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마 나는 지금껏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왔던 것 같다. 아버지가 없어도 달라질 건 없다. 여태 그런 거나 다름없었으니 앞으로도 똑같을 테다. 오히려 마음의 짐을 덜어냈으니 홀가분하게 지내도 된다. 그렇게 되뇌며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인정해야겠다. 그가 필요할 때가 있다. 그에게 토로할 고민들이 있다. 그에게 따져 물어야 하는 질문들이 있고 꼭 돌려받아야 속이 시원할 대답들도 있다. 머리가 나란히 세어지는 오랜 세월에 걸쳐, '느낌'으로가 아니라 직접 '주고받아야 하는' 무언가가 분명히 남아 있다. 나는 그 기회를 빼앗긴 것이 두고두고 억울해서, 못내 분해서, 5분짜리 광고에 매번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이 틀림없다.
나는 가끔 상상을 한다. 미래에 있을지 모를 내 결혼식의 어떤 순간에 대해서. 혼주석에 홀로 계실 엄마 옆의 빈자리를 향해, 아주 길고 더딘 절을 올리는 모습을.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울음이 터지면 어떡하지. 엎드린 등이 들썩거리면 어쩌지. 너무 오래 엎어져 있으면 큰일인데. 나는 쓸데없는 상상을 하면서 또 눈물을 삼키고, 언젠가부터 나이를 먹지 않는 사진 속의 남자는 이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2021.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