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이대남 그래프>. 2-30대 남성으로 대변되는 청년 남성 그룹의 연대의식 부족을 꼬집고 싶었나 보다. 소득 수준이 높아질수록 타인을 돕겠다고 응답한 인원이 다른 연령대나 성별 그룹에 비해 현저히 적은 (것처럼 보이는) 그래프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실제로 저렇게 극단적인 차이가 날 수 있다니. 나는 청년 남성 그룹에 속해있으며 중상위 소득 구간에 위치하면서도 타인을 도울 의사가 꽤 높은 편인데. 억울해서 더 들여다봤다.
<KBS 세대인식 집중 조사> 본문 내용
호오. 설명이 더욱 가관이다. 기자는 '학계에서 발견한 적 없는 현상'이라며 청년 남성의 왜곡된 공동체 인식을 지적한다. 자아 정체성이 형성될 시기부터 어떠한 문제가 내재했을 거라고 확언한다. 덧붙인 말이 우습다. "10대 남성이 각자도생의 경쟁사회만을 체득할 때 어떤 인식이 만들어지는가." 게다가 다짜고짜등장하는 '성인지 교육'여부는 본 연구와 어떤 관련성이 있는가. 기자가 연구 주제에 대해 알고는 있었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급기야 성별 간 차이를 분석하기 위해 사회학보다 뇌과학/진화학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다는 코멘트를 덧붙인다. 조크였을까, 조롱이었을까.
아니나 다를까, 나만 이상하게 생각한 게 아니었다. 학계에서도 큰 이슈였는지 관련된 추가 자료를 요청하는 등 문의가 쇄도했다고 한다. 이에 연구진은 데이터를 공개한다.
각 군의 모집단 수는 300. 사실 이 작은 표본을 또 10개로 나눈다는 점도 석연치 않지만, 더 문제인 것은 소득 수준 군별 모집단 수가 고루 분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심지어 청년 남성의 최상층 9, 10에는 해당자가 아예 없다. 다른 연령대와 다른 성별에서도 마찬가지다. 소득 수준 8 이상으로는 데이터가 너무 적거나 없다.
출처 : "KBS ‘나쁜 이대남’ 그래프, 응답자 없는 구간을 추정치로 채웠다" 조선일보 기사
'중급 통계 시간' 운운하며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라며 눙치는 연구진. 그가 저격한 무지렁이 일반인 입장으로서 그들의 염려가 고맙기는커녕 몹시 고까웠다. 열 받아서 실제로 그들의 연구 자료를 찾아 읽어봤는데 진짜 이해할 수 없어서 더더욱(부들). 다 알아들을 순 없어도 그들의 해명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 보도한 KBS가 문제라는 거네?
요컨대 통계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하나 그 결괏값을 보도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다는 얘기다. 거기에 더해 일차적인 데이터만을 가지고 가치판단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입장을 더한다. 그러나 KBS의 기자는 생각이 조금 달랐나 보다. 기사 본문 전반에 흐르는 호전적인 뉘앙스나 그래프의 Y축을 교묘히 수정한 점 등을 보면 확실히 그렇다. 망치를 든 사람 눈에는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는데. 통계라는 도구는 이용하는 사람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무서운 사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로날드 코스 교수의 명언.
사실 연구 데이터를 100% 공개한 것이 아니고 세세한 비하인드를 모두 알 수는 없으므로 누가 문제라고 예단할 순 없는 일이다. 연구진이 꼬리 자르기를 시전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아니면 기사 제작 혹은 연구에 돈을 대는 사람의 의도가 들어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어쨌건 편향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아주 찝찝한 기사였다. 아마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 많은 논란이 재생산되리라 생각한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저 문제의 그래프가 인터넷 세계에 박제되어 또 다른 무고한 일반인들을 선동하거나 세뇌하는 데 사용되리라는 것. 잘못 사용된 통계 자료가 이래서 무섭다.
앞서 언급했듯 '망치를 든 사람에겐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는 말이 있다. 요즘은 망치를 들고 엄한 곳을 두들기고 다니는 사람들을 부쩍 많이 접하는 것 같다. 그런 세상에선 다들 모가지를 편하게 내놓고 다닐 수 없다. 언제 뚝배기가 깨질 줄 알고. 결국 모두가 헬멧을 사서 쓰고 다니게 될것이다. 억울한 마음에 너도나도 앞다투어 망치를 들게 될 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망치 몇 개가 그렇게 무섭다. 하루빨리 모두가 망치를 좀 내려놓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소망한다. 마스크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답답한 세상이다.
(2021.07.02)
함께 읽을 책 : <불안사회>, 에른스트 디터 란터만 저, 이덕임 역. 2019, 책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