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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균 Oct 12. 2020

메타버스의 21세기 지킬과 하이드: 멀티 페르소나

페르소나(persona)는 연극할 때 사용하는 탈, 가면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사람(person), 성격(personality)의 어원이 페르소나입니다. 사회학적으로 보면 페르소나는 집단으로 살아가는 세상에서 개인이 겉으로 드러내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혼자 있을 때나 집에서 가족들과 있을 때와 밖에서 사회생활을 할 때의 모습이 조금은 다릅니다. 심리학자 구스타프 융은 페르소나를 개인과 사회적 집합체 사이의 일종의 타협이라 정의했습니다. 원래의 내 모습과 사회에서 기대하는 나, 이 둘 사이의 어딘가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현실 사회에서 당신의 모습과 라이프로깅 메타버스, 소셜미디어에서 활동하는 당신의 모습은 거의 같은가요? 아니면 꽤 다른가요?


저는 매년 한 두 차례 우리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고민 콘서트’라는 특강을 2시간 진행합니다. 보통 200~300명 정도의 학생들이 참여합니다. 첫해에 특강을 했을 때는 강의 시작 후 10분 정도 오프닝 인사를 한 후에 학생들에게 고민거리가 있으면 말해보라고, 질문하라고 했습니다. TV프로그램에서 유명한 연예인, 종교인 등이 나와서 현장에서 바로 묻고 답하는 식으로 강연을 진행하고자 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그 많은 학생들 중에서 입을 여는 친구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날 저는 평소에 학생들이 보내오는 상담 이메일에서 많이 봤던 고민거리를 끄집어내서 강연을 이어갔습니다. 두 번째 강연부터는 강당 앞쪽 대형 화면에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올려놓고, 접속하고 싶은 학생들은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실명 말고 닉네임으로 들어와서 갖고 있는 고민을 올려보라고 했습니다. 올릴 내용이 없는 친구들은 가만히 있으면, 옆에서 글 올리는 친구가 어색해할 테니 5분 동안 소셜미디어라도 보라고 시켰습니다. 이렇게 해보면 고민이 몇 개나 올라올까요? 제가 했던 여러 번의 이런 특강에서 대략 40~50개의 고민이 순식간에 올라왔습니다. 학생들이 올려준 고민 중에 겹치는 것들을 추려서 이야기하다 보면 2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습니다. 올해는 이 특강을 유튜브로 했습니다. 진행 방식은 비슷했습니다. 학생들이 닉네임으로 접속하고 채팅창에 고민을 올려주면 제가 답변했습니다. 그런데 대강당에 물리적으로 모인 상태에서 오픈채팅방을 통해 소통할 때와 물리적으로 모이지 않은 상태에서 유튜브 채팅창으로 소통할 때, 비슷했을까요? 학생들이 더 활발하게 소통에 참여한 것은 유튜브 채팅창이었습니다. 어떤 고민거리에 제가 답변하고 있으면, 함께 의견을 채팅창에 올려주거나, 그 고민에 관한 추가적인 질문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강의실에서 보다 좀 더 익살스런 댓글도 많이 올라왔습니다. 10년 넘게 교수 생활을 해오며, 강의실에서 제가 매년 만났던 학생들의 일반적 특성은 서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강의실 오픈채팅방과 유튜브 채팅창에서 만난 두 집단의 학생은 꽤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유튜브 채팅창 속 학생들이 훨씬 더 외향적, 적극적이며 유머러스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 명의 사람이 현실 세계와 여러 개의 메타버스를 동시에 살아가면서, 여러 개의 페르소나를 보여주는 세상입니다. 가정에서의 나, 직장에서의 나, 익명의 소셜미디어에서의 나, 온라인 게임에서의 나 등 각각에서 겉으로 나타나는 성격이 서로 다른 경우가 흔합니다. 이런 멀티 페르소나는 한 사람이 상황, 메타버스마다 다른 성향을 나타내어서 자신의 고유한 인격을 형성하는데 좋지 않다고 우려하는 의견이 있습니다. 내가 누군인지, 어떤 사람인지를 의미하는 정체성을 파편화하여 붕괴시킨다는 걱정입니다. 심지어 이를 디지털 세상에서 나타나는 다중인격이라 비판하기도 하지만,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의미하는 다중인격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해리성 정체감 장애 환자의 경우 한 명의 사람이 상황에 따라 여러 개의 상반된 인격을 보입니다. 문제는 한 인격이 등장해서 했던 행동과 기억을 다른 인격이 공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여러 인격 중에 극도로 폭력적인 성향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 메타버스에서 조금씩 다른 성향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가 이런 정신과적 문제를 안고 있지는 않습니다.

여러 메타버스에서 나타나는 서로 다른 나의 모습들을 다 합친 게 진정한 내 모습입니다. 강당에 모였을 때 수줍어했던 나, 오픈채팅방에서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나, 유튜브 채팅창에 올라온 모르는 학우의 고민에 위로의 말을 건넨 나, 이 모두가 다 나입니다.

이런 멀티 페르소나가 오히려 각광받는 시대입니다. 최근 방송인 김신영 씨의 둘째 이모이며 트로트 가수로 활동하는 김다비 씨가 화제를 몰고 다닙니다. 망원 시장에서 구매한 붉은색 골프 패션에 굵은 뿔테 안경을 쓴 40대 중반의 여성, 그러나 이는 허구의 인물입니다. 김다비 씨는 김신영 씨의 부캐(보조 캐릭터), 멀티 페르소나입니다. 랩퍼 매드 클라운이 만든 마미손, 방송인 유재석 씨가 만든 유산슬도 모두 같은 맥락입니다. 여러 메타버스에서 멀티 페르소나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방송에 대놓고 등장한 멀티 페르소나, 부캐에 열광합니다. 기업들은 앞으로 이런 멀티 페르소나에 주목해야 합니다. 제품 개발, 마케팅, 판매 단계에서 기업들은 제품, 서비스를 구매하는 소비자의 특성을 페르소나로 정의하고, 그 페르소나의 취향에 자사 상품이 얼마나 잘 맞는지 고민합니다. 예를 들어 기능성 원단을 사용한 고가의 운동복을 새로 출시한다고 가정하면, 그 제품을 주로 소비할 고객의 대표적 연령, 성별, 직업, 소득, 생활패턴, 성격 등을 몇 개의 가상인물로 설정하고 어떻게 하면 그 가상의 소비자가 우리 제품을 더 좋아할게 만들지 고민하는 식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한 명의 사람이 멀티 페르소나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의 운동복이라 할지라도 그가 직장인 일 때, 휴가 중 일 때, 소셜미디어 메타버스에서 놀고 있을 때, 각기 다른 페르소나가 등장함을 잊지 말고, 서로 다른 페르소나가 보이는 취향을 맞춰줄 전략을 짜야 합니다. 


* 이 글은 2020년 12월 플랜비디자인에서 발간 예정인 '메타버스, 디지털 지구에 올라타라(가칭)'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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