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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Sep 27. 2024

대상화되는 남성성

외모로 평가 받는 남성들

내가 느끼기엔 요즘 이삼십 대 남자들은 이성에게 대상화되는 상황을 견디질 못하는 것 같다. 달리 말해, 여성에게 자신의 매력 자원이 평가받는 것에 자격지심을 느끼는 것 같다. 남성 커뮤니티에는 섹슈얼리티나 젠더가 엮인 사회관계 모든 측면을 남자의 외모로 환원하는 글이 자주 보인다. 잘 생기면 다 허락된다는 식의 진담 섞인 농담이다. 반대로 자신이 여자들에게, 나아가 사회적으로 소외당하는 현실을 외모 탓으로 돌리는 글도 많다. 심지어 남자가 잘 생기면 성희롱을 해도 성희롱이 아니다,라는 황당한 말까지 보인다.


자기 합리화다. 이성 관계도 인간관계다. 남자들도 여자들도 이성의 외모뿐 아니라 성품을 평가하고 호감과 비호감을 느낀다. 거기엔 사회적 가치관도 포함 된다. 염색체 종류를 떠나 인간으로서 매력이 없고 세상을 보는 관점이 삐뚤어져 ‘패싱’ 당하는 것을 외모 탓으로 돌리면 문제를 표면에 한정할 수 있다. 나에게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라 네가 나에게 편견을 가지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동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상황은 어찌 됐건 여자들에게 존재를 허락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남자들이 있다는 뜻이다. 예전에 비해 사람을 외면으로 평가하는 풍조, 외모 지상주의가 짙어진 것도 사실이다.


남성의 매력 자원이 평가받는 경향이 강해지긴 했다. 남자도 이젠 외모가 스펙이다. 연애는 물론 취업과 사회생활에서 그렇다. 그 정황 증거가 1조 원 이상의 시장 규모로 성장한 남성 뷰티 산업이다. 젊은 남자들이 가족 재생산의 토대가 되는 내 집과 안정적 수익을 신붓감에게 제공하는 게 쉽지 않아 졌다. 초혼 연령이 높아진 데다 여자들은 비혼주의를 통해 가부장 제도에서 벗어나는 삶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남성의 가치가 평가받는 기준이 결혼을 위한 가장의 조건에서 연애 상대로서의 매력, 젊음과 얼굴과 육체로 일정 부분 이동했다. 페미니즘 보급을 통해 여성들의 자립심과 의식화가 더해진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외적 매력을 통해 존재 가치가 가늠되는 건 원래 여성들에게 부과되던 기준이었다. ‘꾸밈 노동’과 ‘탈코’(탈코르셋의 줄임말, 여성들이 꾸밈에 대한 사회적 강요에서 탈주하는 현상) 같은 신조어는 그 비대칭적 기준에 대한 문제의식과 사회적 저항이 함축된 단어다. 이제는 그것이 남성들에게도 부과되기 시작한 것이다. 남성 뷰티 산업 규모는 여전히 여성 뷰티 산업에 비해 미미한 크기다.


자신의 외모에 대한 남성들의 자조와 남성의 가치를 외모로 환원하는 놀이는 젠더 관계의 일정 국면에서 남녀가 서로를 대상화하는 경향이 어느 정도 균형을 얻은 결과다. 그에 상응하는 수평적 대안 규범을 세우지 못했기에 심리적 분열 상태가 터져 나온다. 젊은 남자들은 남성이 평가당하는 존재라고 배우지 않았다. 평가하는 존재라고 보고 자랐고, 그런 남성상이 표준형이자 이상향처럼 제시되어 왔다. 현실이 의식을 따돌리며 비탈길을 굴러가는 간극 속에서 공격적이고 자학적인 사회적 정동이 분출된다.


남자인 내가 여자에게 평가당한다는 사실에 수치심을 느끼면서도 여자들의 선택을 갈구한다. 날 무시하는 여자들에게 분노를 토하고 세상을 증오한다. 이 사태는 혼란스럽고 모순적인 형체로 날뛰고 있다. ‘존잘’에 이르지 못한 대다수 남성의 심경이 토로되듯 ‘남성도 약자다’라는 표어가 웅변된다. 하지만 가부장제가 주던 남성적 특권에 대한 환상과 상실감이 뒤섞인 채 남성들 스스로 서로의 서열을 매기며 모욕을 주고받는다. 남성 커뮤니티에선 돈 많고 잘 생긴 남성 셀렙을 우상처럼 숭배한다. 여타 커뮤니티 유저들의 ‘현생’을 밑도 끝도 없이 깔아뭉개는 악플이 기계적으로 작성된다. 상대를 ‘루저’라고 욕하는 댓글은 전형적인 악플 레퍼토리였지만, 어느샌가 돈과 능력에 더해 “못 생겼다” “‘틀딱’이다”라며 외모와 나이, 남성 유저의 매력 자원을 폄하하는 쉐도우 복싱이 추가 됐다.


'알파 메일'은 이 맥락에서 의미심장한 유행어다. 남녀 관계를 젠더를 비롯한 일체의 사회적 개념을 초월한 원초적 차원으로 되돌리고, 여자들에게 선택당하는 게 아니라 모든 여자를 선택의 대상으로 거느리는 일등 수컷을 찬미한다. ‘이대남’, ‘삼대남’의 결핍이 투영된 남성 판타지이자, 여성혐오를 ‘인셀’ 같은 밑바닥 남성의 ‘종특’처럼 규정하며 남성성에 서열을 매기는 넷 페미니스트의 세계관이다. 그 둘이 만나서 탄생한 '젠더 합작'의 신조어다.


사실 가부장 제도는 남성 역시 대상화하는 제도다. 여성이 남성이 획득하는 재화로 대상화될 때, 남성 역시 그 재화를 얻을 수 있는 능력에 따라 평가받는다. 전통적 규범에 의하면 금권과 사회적 지위가 평가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외모의 우열 관계마저 더해졌다. 남성이 파운데이션을 찍어 바르고 피부 관리를 받는 모습은 언 듯 보기엔 성별 경계가 흐려지는 유니섹스적 현상처럼 보인다. 진실은 특정한 틀에 인간을 끼워 맞춰 값어치를 평가하는 현상이 성별을 넘어 넓어지고 더 강력해진 것이다. 외모에 대한 평가 기준을 성찰하고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는 진보와는 반대로 가고 있다. 심지어 남성성에 줄을 세우는 고장 난 관념에 대한 망상적 향수와 공명한다. 기성 체제의 폐허 위에서 새로운 질서가 도래할 전망은 캄캄한 지금 이곳의 사회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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