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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Sep 21. 2024

유튜브에서 정의를 팝니다

업보의 세계에서 나락의 세계

언젠가부터 인터넷에선 ‘업보’가 유행어처럼 떠돌았다. 이 말은 스마트폰의 등장에 따라 인터넷이 과잉 발달한 2010년대 이후에 등장했다. 모든 기록이 웹 페이지에 ‘박제’되며 유명인들과 인터넷 유저들이 과거에 남긴 행적이 자신의 발목을 잡는 현상이다. 몇 년 사이엔 ‘나락’이란 밈이 나타났다. 유명인들이 악재를 맞고 휘청일 때 ‘나락 간다’ ‘나락각’ 같은 말을 쓴다. 업보와 나락은 상통하는 단어다. 업보가 인과응보에 따라 대가가 돌아오는 메커니즘이라면, 나락은 죄업을 짓고 굴러 떨어지는 지옥, 몰락의 결과를 지칭한다. 사람들은 이제 업보란 말을 예전만큼 쓰지 않는다. 대신 나락이 일상어가 됐다.      


이 현상은 특정한 행위에 따라 도덕적 책임을 묻는 인터넷 여론 재판의 작동 회로가 그저 책임을 묻는 것 자체에 치우치고 있는 방증처럼 보인다. 유명인이 비난받고 그의 몰락이 커뮤니티에서 생중계되며 쇼츠 영상으로 요약 버전이 퍼져 나간다. 인스타 계정 수, 유튜브 채널 수만큼 유명인이 늘어난 시대에, 유명인의 언동은 정제되지 않은 채 업보를 흩뿌리고, 사람들은 인과응보의 엔딩만 잘라 내서 소비한다. 나락은 인터넷 문화의 메인 콘텐츠가 됐다. 업보는 나락을 도출하기 위한 형식이 되었고, 도덕적 잘못은 징벌을 수행하기 위한 트리거로 부속돼 작동한다. 현재의 자신과 배치되는 과거의 언동이 있다면 집요하게 발굴 돼 나락 놀이를 위한 밈의 재료가 되고, 나락의 깊이를 더 깊게 굴착하는 ‘내로남불’로 돌아온다.  


최근 오킹, 이스타 티브이, 곽튜브 같은 인기 한국 유튜버들이 줄지어 나락에 빠졌다. 오킹은 방송으로 토크를 진행하면서 각종 대상을 향해 ‘일침’을 가하는 모습이 콘텐츠 중 하나였다. 이스타 티브이는 그 자체는 축구 채널이지만, 축구 협회란 거악을 비판하며 감독 선임 등의 문제로 협회가 비난받는 상황에 올라타왔다. 즉, 타자의 도덕적 문제에 호통을 치며 사람들을 대변해 주는 포지션으로 성장하고 활동했다. 문제는 그러는 동안 자신들의 어깨 위에도 비판의 수행에 따르는 도덕적 기준이 무게감 없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는 것이다. 오킹은 소위 비트 코인 게이트로, 이스타 티브이는 허술한 투어 상품을 내놓으며 나락으로 갔다. 인터넷 게시판에선 “180만 유튜버의 일침” “70만 유튜버의 일침”처럼 그들이 남겼던 ‘일침’ 어록을 반사해 그들 자신의 부도덕을 조롱하는 놀이 판이 벌어지고 있다.     


곽튜브 역시 그렇다. 그는 일침이 콘텐츠는 아니었지만, 특정한 타자를 비난하는 여론의 반대급부를 누린 것은 마찬가지다. 그는 ‘학폭’ 피해자 서사, ‘찐따’의 인간극장 서사를 품고 성공한 유튜버다. 학교 폭력은 한국 인터넷에서 가장 큰 공분을 모으는 '범죄 행위'다. 가해자는 절대적으로 비난받고 맥락 참작의 여지는 주어지지 않는다. 많은 유명인이 과거의 학폭 의혹이 폭로돼 나락 행 열차에 끌려갔다. 곽튜브는 여론에 의해 학폭 가해자들의 반대에 있는 선역으로 낙점되었고 사람들이 건네는 연민과 공감을 누렸다. 거기엔 피해자의 지위가 주는 도덕적 우위성이 걸려 있다. 그러다가 자신의 유튜브에 학교 폭력과 동료 괴롭힘 논란에 올랐던 유명인을 출연시키고 그의 결백함을 보증하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역풍을 호되게 얻어맞았다. 그동안 쌓은 피해자 캐릭터가 가해자를 편드는 것으로 뒤바뀌어 자신의 목젖에 역습을 가한 것이다. 저 셋은 모두 도덕적 우위를 바탕으로 영향력을 키워오다가 스스로의 도덕적 결함으로 무너진 셈이다.       


도덕의 지위가 땅에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시대이지만 도덕에 대한 수요는 예전보다 차고 넘친다. 조회수 시장에서 거래되는 재화의 형태로. 그것은 타인을 ‘나락’으로 보내려는 공격성과 분풀이, 진영 논리의 구현에 불을 붙여 주는 방아쇠다. 타인의 도덕적 오점에 일침을 가할 때 반대급부로 정의로움의 휘장을 걸칠 수 있다. 정의는 긍정적 양태의 실천을 통해 그 자체로 추구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비난하는 부정적 양태의 행위를 통해 반사적으로 성립한다. 정의로 향하는 외나무다리 아래엔 나락의 가시밭길이 깔려 있고, 정의를 싼 값에 대행하면 언제든 ‘업보’를 치르게 된다. 이 상황이 닫힌 고리처럼 반복되면서 인터넷 광장의 가치 체계가 돌아간다. 


오랜 시간 이 사회를 지배해 온 도덕주의가 손잡이 빠진 날붙이처럼 가학적 맹목성만 남긴 채 다다른 한 극단의 사회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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