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형 영웅에서 단독자형 영웅으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단식 부문 금메달을 획득한 국가대표 안세영의 행보는 경탄이 든다. 그는 결승 직후 공동취재구역에서 대한 배드민턴 협회의 대표팀 운영을 공개적으로 규탄했다. 당당하고 결기 서린 태도였다. 평범한 사람의 담력으론 엄두를 내기 힘든 행동이다. 무엇보다 여론이 매료된 건 “내 발언에 힘이 있을 때 말하고 싶었다”는 발언에 실린 승자의 위엄 같다. 안세영과 배드민턴 협회는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시간을 많이 거슬러 가는 이야기가 되겠지만, 이 대결 구도는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역사적 코드를 떠오르게 했다.
한국사를 흘러 내려온 위인의 대표적 유형은 ‘순교자형 영웅’이다. 이들은 기득권 세력과 맞서는 구도로 서 있다. 한국사 최고의 영웅 중 하나로 꼽히는 이순신부터 그렇다. 왜적을 바다에 수장한 불세출의 성웅은 못난 왕의 박해를 받아 삭탈관직 당해 백의종군했으며 왜란의 종지부를 찍는 전투에서 숨을 거둔다. 나라가 죽인 잃어버린 영웅이다. 옥좌에서 백성을 다스린 세종대왕 역시 한글을 창제하는 과정에서 문자를 쓰고 읽는 권력을 지키려는 신하들의 반발에 직면해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계백과 삼별초는 이길 수 없는 싸움에 결사 항전함으로써 타락한 지배 체제를 대속한 순교자들이었으며 외세의 침략에 맞서 일어난 민병들도 후세에 의해 순교자로 자리매김된 성격이 있다.
또 한 가지 한국사에서 빈번한 캐릭터는 ‘실패한 혁명가’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더냐!” 장렬한 외마디를 남기고 목이 잘린 노비 만적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홍경래가 있었고, 동학 농민군이 있었고, 임꺽정과 장길산, 홍길동 같은 화적이 세상을 엎으려 한 의적으로 스토리텔링 됐다. 신돈과 정도전, 조광조 같은 지배 계층 내부에서 등장한 개혁 세력 역시 숙원을 이루지 못했다. 한국사는 한 번도 혁명이 일어나지 못한 역사이기에 혁명을 꿈꾼 모든 이는 실패한 혁명가일 수밖에 없다. 한국사 위인들은 어떤 분야에서 어떤 역할을 했건 간에, 미망의 가시밭길을 걸은 순교자의 캐릭터가 강하다.
현재에도 겨레를 빛내는 영웅을 향한 열망은 세계화의 도래와 맞물려 사회 각 분야에서 꿈틀 거린다. 그들은 대개 기득권을 지닌 내부의 적에게 견제당하는 서사구조에 놓여있다. 이 구도가 드라마틱하게 재현되는 분야가 스포츠다. 스포츠 경기장이 말 그대로 세계에서 겨레를 대표하는 영웅이 활약하는 무대이며, 한국 스포츠계가 소수의 영웅을 길러내며 재생산되는 엘리트 체육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국제 대회에 출전하는 스포츠 종목 대부분이 비인기 종목이라는 사실과 맞물려 협회의 지원 부족과 부정부패가 수면 위로 떠올라 논란을 일으킨다.
협회 임원들은 명예와 잇속만 탐하는 타락한 기득권으로 지목된다. 김연아와 빙상연맹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박지성과 손흥민 같은 축구 영웅이 사랑받는 만큼 축구 협회는 무능과 인맥 축구의 상징으로 규탄당한다. 김연경이 이끌던 여자 배구팀이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따고도 김치찌개로 회식한 사진은 아직까지 떠돌고 있다. 얼마 전엔 감독 선임 과정 상의 문제로 축구 협회가 대대적 비난을 받았는데, 이번엔 배드민턴 협회와 안세영이 대립하는 구도가 세워진 것이다.
순교자형 영웅을 향한 애착은 역시 역사적으로 내려온 관료 집단을 향한 불신과 이어진다. 조선은 중앙집권제 국가였으며 헌정 이후 지방자치 단체장 선거의 역사도 짧다. 중앙 권력의 존재는 너무 멀리 있고 중앙 권력을 대행하는 관리들은 수탈의 주체처럼 여겨졌다. 한국 민중들은 기층에서부터 이해관계를 조직하거나 자신들의 삶을 지켜 주는 통치 권력과 신뢰를 다지는 관계를 쌓은 경험이 부족하다. 억울함에 골수가 삭은 백성이 상경해 왕의 귀에 들리길 애원하며 북을 두들기는 것처럼 관료 집단을 단번에 우회해 최종 권력을 향해 사태를 고발하거나 사회에 공론화하는 신문고 판타지가 만연하다. 최근 윤석열 정부가 축협 사태, 배드민턴 협회 사태에 개입하며 심판하는 제스처를 취한 것은 그런 판타지를 재현하며 민심을 챙기려는 모양새다.
순교자들은 관료집단과 빛과 그림자처럼 대조되는 영웅적 개인으로서 기성 권력에 대한 불신과 그것을 갈아엎을 대안 권력을 향한 갈망을 받아 안는 존재다. 정치사회적으로 본다면 중요한 선거마다 나타나는 새 인물 증후군, ‘백마 탄 초인’ 판타지로 표출되곤 했다. 지배 체제의 성채는 강고하고 민중이 조직돼 온 전통은 없기에 세상을 바꾸는 것은 요원하다. 저 영웅적 개인들이 마주하는 엔딩은 두 가지다. 체제 밖으로 제거되며 순교하거나 체제 안으로 편입되며 또 다른 기득권으로 타락하는 것이다. ‘사회를 바꾸고 싶으면 네가 힘을 길러라’,라고 사회 문제가 각자도생의 엘리트주의로 귀결되는 가치관이 어른들이 겪은 진실처럼 설파돼 온 건 후자의 케이스를 학습하고 합리화한 결론이다. 축구팬들 사이에서, 월드컵 4강 영웅들이 축협과 한 배를 탄 적폐처럼 지목되는 것도 순교자가 타락하며 변질됐다고 규정되는 사례다.
안세영이 스포츠 계의 여타 순교자들과 다른 점은 협회 관료들과 맞서는 양상의 서사에 놓인 걸 넘어 그 영향력으로부터 이탈하려 한다는 점이다. 그는 단순히 협회의 병폐를 고발하고 선수들 권익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대표 팀을 빠져나와 개인 자격으로 대회에 출전하려 한다. 이런저런 갈등으로 한국 국적을 버린 운동선수들은 존재하지만, 안세영은 국적을 다른 국적으로 바꾸려는 게 아니라 집단에 대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다. 그 의지를 가장 큰 위업을 이룬 순간 세상을 향해 공표했다. 여기엔 겉으로 보기에 알기 힘든 속사정이 있을 수도 있고 무슨 가치 판단을 내리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국가 대표 선수들이 사람들의 열광과 열망을 받아 안아 온 영웅이라고 할 때 시대의 풍향을 감지할 수 있다.
안세영이 선택한 것은 온전한 개인으로 남을 권리이고, 올림픽 금메달은 나라를 위한 헌신의 징표를 넘어 개인의 영역을 확보하기 위한 힘이다. 체제에 항거하는 순교자도 체제에 포섭되는 변절자도 아닌, 체제를 버리고 단독자로서 단단한 울타리를 세우는 것이 선택지로 떠올랐다. 사람들은 그 결심에 공감하고 있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개인의 능력과 결단이 시대의 윤리가 되었다. 한 없는 내리막 길만 펼쳐진 시대에, 공동체에 대한 미련을 끊고 탈출하는 단독자형 영웅은 사람들의 새로운 우상과 역할 모델이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