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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Aug 06. 2024

메이저의 세대와 마이너의 세대

한국 오타쿠 일세대는 누구인가

지난주에 쓴 ‘오타쿠가 되고 싶은 영피프티’라는 글에 대한 반응을 보고 놀랐다.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아우성이 빗발쳤기 때문이다. 70년대 후반~80년대 초중반생, 그러니까 지금의 40대 정도가 한국형 오타쿠 일 세대에 해당한다고 서술했었는데, 그 이전 세대에도 한국에는 오타쿠가 엄연히 존재했다는 규탄이었다. 이 대목은 ‘영피프티’ ‘젊은 50대’가 오타쿠 일 세대 이전의 세대라는 중심 논조를 받쳐주는 명제이므로 결코 사소한 서술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과 내 주장 사이엔 어긋남이 존재한다.


내가 오타쿠 일 세대라고 한 것은 오타쿠로서의 경험을 유년기에 형성한 첫 세대 집단이란 뜻이다. 반면 비판자들이 말하는 일 세대는 오타쿠 커뮤니티 내부에서 가장 먼저 오타쿠 활동을 시작한 집단을 뜻한다. 나는 전체적인 세대 집단의 관점에서 따진 것인데 저들은 오타쿠 계 내부의 족보를 따지는 문제로 받아들인 것이다. 반발이 이해는 간다. 내가 명시적으로 둘을 구분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오타쿠’라는 낱말에 자의식을 걸고 있거나 ‘자기 분야’로 여기는 이들 입장에선 민감할 것이다. 역사를 지닌 문화 집단의 계보에서 선각자들의 존재가 지워지는 것은 경계할 일이다. 하지만 그 글의 제재가 오타쿠가 아니라 ‘영포티’라는 세대 집단에 관한 것이었다는 선명한 문맥을 헤아린 사람이 없다는 건 글을 쓴 입장에서 갸우뚱한 사실이다. 개중에는 위화감이 느껴질 만큼 격앙된 말투로 폭언을 쏟아내는 이들도 있었는데, 이런 케이스는 당신의 그 폭룡적 감정은 출처가 내 글은 아닌 것 같아 보인다는 말 밖에 해줄 수 없다.


개중에는 거대 서사의 종언을 말하려면 오쓰카 에이지를 먼저 말해야지, 라는 일갈도 보였다. 아즈마 히로키의 관련 저서에서 오쓰카 에이지의 선행 논의가 주요하게 참조되긴 하지만, 거대 서사의 종언은 포스트 모던적 현상의 일반적 특징으로 거론되는 명제다. 아즈마 히로키도 그것을 가져가서 자기 논지를 펼친 것뿐인데 이건 무슨 취지의 지적인지 의도를 진짜 모르겠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서브 컬처 집단 내부의 토픽이 아니라 그와도 연관이 되지만 더 범주가 넓은 주제에 관해 글을 썼다.


세대를 구분 짓는 건 기준이 필요하다. 앞선 글에서 세대란 개념을 쓴 것은 그것이 연령으로 나뉘는 동 세대 전체에서 어느 정도는 보편성을 가지는 경험과 특질이 있어야 한다는 관점으로 썼다. 이를테면, 코호트(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역사적 경험과 행동 양식 등을 공유하는 집단)나 생물학적 세대 내부에서 집단의식을 형성하는 기층 경험을 공유하는 일정 규모의 이들을 일컫는 것이다. 그러자면 그 경험을 주형하는 인프라가 필요하다. 일본 애니메이션 등 서브컬처를 공식적·비공식적 루트로 접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고 그것이 90년대에 개설 됐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물론 칠팔십 년대에도 일본 애니메이션이 수입돼 방영되기도 했고 일본 만화가 해적판으로 밀수입 됐다. 그것들은 일본 문화의 라벨을 떼고 국산 문화의 딱지를 붙여 놨었고, 그것을 소비한 이들이 일본산 서브컬처에 곧장 접근권을 갖거나 서브컬처를 소비한다는 자의식을 형성하기란 힘들었다. 그 좁디좁은 구멍을 뚫고 서브컬처에 천착한 소수가 있었기에 이들의 존재는 기억되고 존중받아야겠지만, 그 시기에 기층 경험을 구성한 세대의 특질로 규정할 수는 없다. 물론 오타쿠 활동이 이후 세대에서 어느 정도 보편적인 것이 되는 데에는 그 소수가 활동하며 구축한 동호회 인프라 같은 것들이 주춧돌의 일각이 되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1989년 국내 만화 잡지 아이큐 점프에서 ‘드래곤볼’이 정식으로 소개 됐고, 이후 이 잡지에선 그 외의 일본 만화가 다수 연재 되었다. 1995년에 케이블 방송 시대를 타고 ‘만화영화’ 전문 채널 투니버스가 개국했다. <슬레이어즈> 같은 애니메이션이 투니버스를 거쳐 SBS에서 방영된 것도 이때 이후다. 1998년에는 로컬라이징의 딱지를 달고 소비되던 일본 문화를 맞이하는 창구가 공식적으로 개방 됐다. 이 무대 위에서 유년기의 기층 경험을 구성한 이들을 ‘대중문화’와 구분되는 정의의 서브컬처에 대한 적응력을 형성한 첫 세대라고 판단했다. 그때도 오타쿠 문화가 마이너한 시기라 세대 전체의 보편성으로 보는 데는 한계가 있겠지만 말이다.


마찬가지 구분으로 본다면 60년대 후반~70년대 초중반생들의 코호트적 특성은 매스미디어를 통해 소비하는 메이저 대중문화의 개화를 경험한 첫 세대다. 힙합과 댄스 음악, 발라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같은 것들이다. 이 시기에 문화적 자율화와 해외 문화의 본격 개방이 이루어졌다. 이들이 세례 받은 문화의 속성은 현재까지 국내는 물론 해외 상업 문화의 구성 요소를 이룬다. 때문에 이들이 옛날의 사오십대와 달리 그 나이에도 상업 문화 유행에서 낙오되지 않고 ‘젊음’의 명패를 붙잡고 있다. 이건 ‘영 피프티’라 불리는 집단을 일반적으로 정의하는 속성을 풀어쓴 것이기도 하다.


사실, 이렇게 구분하지 않더라도, 국내 서브컬처 문화가 인프라를 갖춰 태동한 첫 시기를 90년대로 잡아도 틀리지 않은 정의라고 생각한다. 말했듯이, 나는 그 이전에는 오타쿠가 없었거나 일본산 서브컬처가 전혀 소비되지 않았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이상의 논의 맥락에서 구태여 오타쿠라는 토픽을 끌어들여서 고찰할 핀 포인트가 있다면, ‘메이저’와 ‘마이너’란 코드의 매칭 구도다. 앞선 글에서 말했듯이, 현재 한국에서 오타쿠 혹은 덕후는 메이저와 구분되는 마이너의 자의식이다. 서브컬처 향유가 궤도에 오르고 보편화된 2010년대 전후로 ‘십덕’ ‘오덕’ 같은 말이 유행했고, ‘아싸’ ‘찐따’ ‘존못’ 같은 마이너한 정체성을 가리키는 신조어가 나타나 일상어로 자리 잡았다. 그런 유형의 동류의식이 젊은 세대에 퍼져 있다. 너도, 너도, 그리하여 우리는 ‘인싸’들의 리그에 끼지 못하는 보통 이하의 존재라는 투의 농담은 인터넷 공간 곳곳에서 오간다.


이건 사회의식적 차원의 주제이기도 하지만, 미디어의 파편화를 타고 메이저 문화가 사라져 가는 현실의 다른 얼굴이다. 반면 ‘영피프티’라고 불리는 세대는 사회문화정치적 차원에서 새로운 메이저가 밀어닥치는 시기에 자의식을 형성했다. 신세대, 엑스세대, 신인류처럼 사회의 집중적 호명을 얻었다. 그것은 이들을 사회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불러내는 이름이었다. 이러한 주인공의 자의식은 ‘영피프티’란 말을 비틀어 암묵적으로 꼬집어지는 이들의 ‘도끼병’의 근원일지 모른다. 나는 아직도 젊고, 아직도 젊은 문화를 소비하고, 아직도 이 사회의 주인공이라고 자부하는 데서 오는 부조화와 젊은 세대의 반감이다.


반면, 현재의 젊은 세대, 2030의 지배적 정서는 자조와 분노인 것 같다. 언론 역시 이 언저리 세대를 88만 원 세대를 거쳐 삼포 세대 같은 우울한 이름으로 호명해 왔다. ‘영포티’ ‘영피프티’는 90년대가 귀환한 10년 전부터 이 사회에 장기 집권하는 이름이자 담론이 되었다. 젊은 세대 역시 엠지 세대, 젠지 세대, ‘이대남’ 같은 이름으로 불리지만 이들 사이에 맴도는 것은 주인공이 아니라 주변인의 자의식이다. 이 차이는 호황과 격변의 시대에 젊음을 보낸 이들과 불황과 침체의 시대 속에 태어나 자란 이들의 현실에서 오는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화와 담론은 현실을 그저 뒤따르고 반사하는 역할을 하는 걸까? 아니면 현실의 방향을 재설정하고 사회경제적 현실과 다른 층위에서 사회를 구성하는 역할도 하는 걸까?


‘영피프티’는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경우라도 호명의 과잉으로 이들의 주인공적 자의식을 강화하고, 젊은 세대 담론은 그들을 연민의 어조로 챙겨 주는 경우라도 그렇기 때문에 주변인의 자의식을 부추긴다. 두 담론은 공히 각각의 세대가 가져야 할 사회에 대한 책임 의식과 주체로서의 객관적 자각을 갖추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오타쿠 계보를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차원의 의문을 던지는 것이 내가 제기한 테마가 이어지는 곳이다. 그동안 ‘영피프티’에 관한 글을 여러 차례 쓴 나 역시 이 의문에 답할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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