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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디 Jan 20. 2021

14. 스탠의 애마

101일간의 좌충우돌 인도 네팔 여행기

네팔 카트만두에서 열리는 워크캠프에 참여하기 위해 레를, 아니 인도를 떠나야만 했다. 다른 사람들도 이제 비수기에 돌입해 공기가 서늘해진 레를 모두 떠나려고 하고 있었다. 우리가 묵고 있는 올뷰 게스트하우스도 곧 문을 닫는다는 소문이 들렸다.


우리는 여느 때처럼 아미고에서 끼니를 때우고 있는데 아미고 사장 스탠이 말을 걸어왔다. 자기가 이틀 뒤에 마날리에 볼일이 있어서 가는데 혹시 너네 중에 마날라에 가는 사람 있으면 태워다 주겠다는 이야기였다. 럭셔리 카라며. 심지어 현지 사람들은 마날리와 레를 오갈 때 중간에 킬롱에서 머물지 않고 바로 내리 달린다고 들어 알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14시간을 쉬지 않고 꼬박 달려 1박을 절약할 수도 있었다. 듣고 있던 우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마날리로 가는 사람은 요셉 오빠와 나 밖에 없었고 보미 언니와 승주는 스리나가르로 간다고 했다. 스탠은 내일모레 아미고에 저녁 5시까지 오라는 말을 남긴 채 떠났다. 우리는 스탠이 가고 나서 들뜬 마음을 감추지 않고 이야기를 나눴다.


"마날리까지 우리를 무료로 태워다 준다는 거지?"


능숙한 현지인의 차로 게다가 공짜로 갈 수 있다니 가난한 배낭여행자에게 이런 호재가. 우리는 새우잡이 배에 팔려가는 게 아니냐며 호들갑을 떨었고 다른 친구들이 놀려댔지만 신나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비로소 어렵사리 온 레를 떠나는 날이 정해졌다.


우리는 떠나는 날 구글에서 추천 한식 메뉴 레시피를 찾아 종이에 옮겨 적었다. 가난한 배낭여행자들은 스탠에게 뭐라도 답례를 하기 위해 생각해낸 것이었다. 한식당 사장님인 스탠을 위해 감자전 레시피 등 두세 가지의 레시피를 영문으로 적어 봉투에 봉했다.


그리고 레를 작별하기 위한 나만의 의식으로 우체국에 가서 가족들과 친구들, 그리고 나에게 보내는 엽서를 썼다. 과연 한국까지 무사히 잘 도착할까 반신반의하며.


올뷰 게스트하우스

우리는 숙소에서 짐을 모두 꾸려서 뒤뚱뒤뚱 배낭을 메고 아미고로 향했다. 자연스럽게 의식적으로 아미고에서 조금 이른 저녁 식사를 주문했다. 우리는 스탠이 언제 올까 눈치를 보며 식사를 했다. 하지만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도 스탠의 꽁무니도 보이지 않았다. 어찌 된 일인지 아미고 직원들에게 묻자 사장님 오늘 마날리 안 떠나신다며 다들 영문을 모른다는 표정이었다.


오늘 떠나지 않는다고? 뒤통수 맞은 건가?

커뮤니케이션에 오류가 있었나? 걱정이 밀려왔다.


30분쯤 지나자 기다리던 스탠이 나타났고 우리를 불렀다. 과연 한식당의 사장님답게 멋진 애마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는 믿음직스러운 표정으로 타라고 했다. 함께 걱정을 했던 요셉 오빠도 안심스러운 듯 보였다. 다시 기분이 좋아진 우리는 스탠의 마음이 바뀌기라도 할까 봐 냉큼 그의 차에 올라탔다.


스탠의 운전석 옆자리에는 프랑스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 프랑스 여자는 스탠을 원망하는 듯이 울면서 화를 내고 있었는데 차에 타자마자 눈칫밥 신세가 된 우리는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내용을 들어보니 이런 거였다. 스탠과 프랑스 여자가 어젯밤인가 사랑을 나누었는데 오늘 그녀의 지갑이 없어졌고 그녀는 스탠을 의심하고 있었던 것. 참고로 스탠은 한국인의 눈으로 봐도 굉장히 잘 생긴 외모를 가졌다.


스탠의 애마는 굉장히 좋았고 무려 직원 3명이나 두고 있는 한식당 사장님이라 스탠이 지갑을 훔칠 인물로는 보이지 않았다. 차에는 냉기가 돌았다. 우리는 스탠에게서 프랑스 여자에게서 눈알을 왔다 갔다 하며 이 상황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결국 스탠은 안주머니에서 자신의 지갑을 꺼내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그녀에게 주었다. 그녀가 욕을 하며 그의 차에서 내렸고 상황은 일단락 되었다.


프랑스 여자 때문에 잊혔지만 운전석 뒤에 앉아 있었던 스탠의 친구가 스탠의 옆자리로 옮겨 탔다. 그는 한국 배우로 파마한 오만석을 닮았는데 한국어 능력자였다. 넉살 좋은 인상을 지닌 그는 예전에 한국에서 일을 하다 왔고 한국인 가이드로도 활동했었다고 한다. 다행히도 스탠의 친구 덕분에 아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우여곡절 끝에 출발하긴 했다.


프랑스 여자 사건이 있은 직후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차는 달렸다. 그런데 얼마되지 않아 외딴 곳에 정차했다. 갑자기 검은 얼굴의 행색이 남루해 보이는 새카만 얼굴의 남자들이 우르르 스탠의 차에 탔다. 알고 보니 도로포장을 하는 인부들로 스탠이 공사장까지 태워다 주며 약간의 돈을 받는 듯했다. 넓어 보였던 스탠의 차가 순식간에 한 자리 차지하기도 비좁은 곳으로 바뀌었다. 다시 우리는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남루한 인부들의 남루한 짐을 스탠의 차 천장에 매고나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가는 길은 올라왔던 길과 마찬가지로 역시나 험난하고 험난했다. 일단 날이 어두워지면서 바깥에 차가워진 공기가 그대로 들어와 차 안인데도 손발이 시려웠다. 오들 오들 떨면서도 낭떠러지를 시원스럽게 달리는 차 안에서 우리는 생명의 위협을 느꼈는데, 어떻게 하면 차가 떨어져도 살 수 있을까 머리 쪽을 보호해야 할까 등 그런 온갖 종류의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혹시나 졸음운전할까 봐 요셉 오빠는 스탠과 친구에게 거의 30분에 한 번씩 레드불을 권유했다.


얼마쯤 달렸을까 갑자기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었다. 스탠이 운전석에 내렸다. 창문으로 지켜본 바깥 상황은 이러했다. 차 천장에 매달아 놓았던 인부들의 짐이 모두 날아가 버린 것. 가뜩이나 가난해 보이는 인부들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인부들은 그것을 알고 깔깔대며 웃는 게 아니던가. 그 모습에 저게 웃을 상황인가 경악해 이차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짐을 들고 타길 천만 배 잘했다며 스탠의 친구가 알아들을 수 없게 조용히 소곤거렸다.


스탠이 인부들에게 미안하다는 말과 미소를 짓고 다시 출발했다. 인부들은 몇 키로 안 가서 공사장 같은 곳에 내렸고 차를 태워준 스탠에게 돈을 건넸다. 인도인을 알기란 아직은 멀어보였다.


이제 진짜 평화의 시간이 왔다. 차 안에는 스탠과 스탠의 친구, 요셉 오빠와 나 넷만 남았다. 하지만 새벽이 가까워올수록 추위는 더욱 심해졌고 그 와중에 차 안에서는 라다크 전통 민요가 무한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이제는 낭떠러지가 문제가 아니었다. 어두워서 절벽은 보이지도 않았다. 추위를 참기 위해 억지로 잠을 청하기도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아주 요란스럽고 중독성 있는 리듬의 라다키 민요에 정신을 홀려가며 오들 오들 열 네시간을 ‘무사히’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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