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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디 Jan 20. 2021

13. 레 근교 여행, 알치(Alchi)

101일간의 좌충우돌 인도 네팔 여행

판공초에 돌아온 나는 혼자서 쓰고 있던 더블룸을 보미 언니와 함께 쓰기로 했다. 외롭지도 않고 숙박비도 절반으로 줄일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었다. 판공초를 다녀온 후 부쩍 친해진 보미 언니와 요셉 오빠 그리고 나는 레 근교의 알치 마을을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로 했다. 이미 보미 언니는 혼자서 한 차례 갔다 온 뒤였지만 언니를 꼬셨다.


레에서 로컬버스로 2시간 정도 달리다 보면 정류소도 없는 곳에 내려주는데 강을 가로지르는 큰 다리를 건너면 알치 마을이 가는 길이 나왔다. 초행길이고 거리에 아무런 표지판도 사람도 없었지만 이미 다녀온 보미 언니 덕분에 헤매지 않고 수월하게 찾아갈 수 있었다.



알치 마을 입구까지는 그 다리에서 무려 1 시간을 걸어가야 했다. 우리는 히치하이킹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히치하이킹은 언젠간 꼭 해보고 싶었는데 혼자서는 위험할까 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다행히 동행이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차들은 우리 앞을 쌩쌩 지나갔다. 치켜들어 올렸던 엄지가 무안해졌다. 굴하지 않고 우리는 알치마을을 향해 걸어가면서 지나가는 차가 있으면 열심히 손을 흔들어댔다.


다여섯번의 시도 끝에 작은 소형차 한 대가 멈췄다. 드디어 첫 히치하이킹이 성공한 것이다. 우리는 몇 분 뒤 편하고 안전하게 알치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아기자기한 마을 알치는 불교 사원이 많았다. 사원은 주로 보통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신성한 곳이었다. 처마 기둥이나 벽화, 부조 등을 구경하고 있자니 사학과 재학 시절 답사 온 기분이 들었다. 전국에 유명한 사찰은 다 돌 정도로 많이 답사를 다녔었는데 이렇게 또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새로운 공간에 놓여 있는 게 신기했다.


알치는 레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엄청 조용하고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의 분위기가 차분했고 한적함이 느껴졌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장식품을 파는 상인들도 있었지만 소란스럽거나 우악스럽지 않았다. 확실히 때 묻지 않은 곳 같았다. 사람들이며 마을 풍경이며 사람을 되게 평화롭게 만들어주는 마을이었다. 어떤 근심을 가지고 와도 이곳에 오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릴 것 같은 곳.


사원을 구경하고 나와서 수십 개의 마니차가 놓여있는 길을 따라가니 인더스 강이 있다는 표지판이 있었다. 인더스 강? 인도 북부를 지나는 두 강, 그 갠지스와 인더스? 두 강을 세트로 세계사 시간에 암기하듯 중얼중얼거린 게 기억이 났다. 인도 여행하면 갠지스 강이었고 갠지스는 앞으로 갈 예정이라 잘 알고 있었는데 세트로 늘 항상 함께 외웠던 인더스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


난데없이 출현한 인더스 강은 반가우면서도 낯설었다. 들뜬 마음에 인더스 강 앞에서 여러 장의 사진을 남겼다.


근처 식당 겸 카페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살구 주스를 마셨다. 살구가 알치의 특산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특산물까지도 소박하고 아담한 살구 일까. 알치 마을에 잘 어울리는 특산물이었다. 맛있는 살구 주스를 먹은 우리는 넋 놓고 수다를 떨다 버스 시각을 완전히 깜박 잊고 말았다. 급하게 계산하고 나오느라 화장실도 들리지 못한 우리는 냅다 우리가 처음에 내렸던 버스 정류장(?)으로 뛰어갔다.


하지만 너무 먼 나머지 뛰다가 중간에 포기하고 해탈한 채 걸어갔다. 그제야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요하고 깨끗했다. 요셉 오빠는 다음에 다시 오게 된다면 레 말고 알치에서 숙박을 해야겠다고 했다. 가는 도중 수차례의 히치하이킹 시도 끝에 성공해 또다시 차를 얻어 타고 정류소까지 갈 수 있었다.


길거리에 주인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소들이 거닐고 있었는데 소구경을 하면서 한 시간쯤 기다렸을까 우리를 태울 버스가 도착했다. 우리는 혹여나 우리를 지나칠까 봐 열심히 손을 흔들어 우리의 존재를 알렸다. 돌아오는 버스 안은 노곤 했는지 금세 잠이 들었다. 한여름밤의 꿈같은 알치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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