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일간의 좌충우돌 인도 네팔 여행기
사실 레를 온 이유는 판공초를 보기 위해서였다. 한국에서 나름 인기 있는 인도 영화 '세 얼간이'의 엔딩 배경이 된 판공초는 여름에 인도를 여행하는 한국 여행자에게 특히 인기 있는 곳이었다.
레에서도 오프로드 5시간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판공초. 함께 갈 파티원을 구해야 했다. 나는 레를 올라오는 길에서 만난 한국인 부부님과 요셉 오빠와 함께 승합차를 빌려서 2박으로 다녀오기로 했다. 그런데 파티원 한 명이 딱 부족했다. 함께 레를 올라온 승주는 판공초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간다고 했다.
일단 우리 넷은 판공초를 가기 위한 준비를 하기로 했다. 현지 여행사에서만 가능한 판공초 퍼밋을 발급받고 판공초에서 먹을 식량을 위해 장을 봤다. 우리의 주 요리는 닭이었기 때문에 여러 마리의 닭과 닭요리를 위한 채소, 그리고 대놓고 술을 팔지 않는 레에서 비싼 값을 주고 킹피셔도 어렵사리 구입했다.
불을 피울 수 있는 번개탄은 구할 수 없었는데 우리의 아지트인 한식당 아미고에 가서 물어보기로 했다. 아미고에 오늘따라 한국인 여행자가 많았다. 아니 레에는 우리 밖에 없는 줄 알았더니? 판공초 혹시 함께 가겠냐고 물으니 다들 이미 갔다 왔다고 한다. 그런데 한 명, 아직 가지 않았다는 사람이 있었다.
보미 언니는 레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여행자였다. 엊그제 비행기를 타고 레에 도착했는데 갑자기 높아진 고도 때문에 두통이 심하고 속이 울렁거리는 등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했다. 언니는 고민 끝에 우리 일행과 합류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드디어 5인 완전체가 된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아미고에서 번개탄도 구할 수 있었다. 여러모로 산뜻한 출발이었다.
다음 날 우리는 각자 숙소를 떠나 판공초를 가는 승합차에 올라탔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판공초를 가게 되다니! 그것도 일행과 함께! 우리는 가는 도중 판공초에서 불을 지필 장작이 필요해 나뭇가지를 주워 부러뜨려 차에 싣었다. 가는 길이 험난하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었으나 아직은 설렘뿐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레를 올라온 길과 마찬가지로 지프가 아닌 스카이 콩콩을 타고 있는 기분을 느꼈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자동차 도로, 창라 고개를 지날 때는 공기가 차가워 눈이 녹지 않아 있었고 오들오들 손발이 떨렸다. 따뜻한 짜이를 겨우 사서 마시자 조금 진정이 되는 듯했다. 이곳 휴게소의 화장실은 가지 않았는데 들은 바에 의하면 한쪽이 벼랑으로 뚫려있다는 말에 겁이 나 오줌을 참았다. 이렇게 가는 길이 어려운 걸 진즉에 알았더라면 난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미 내 몸은 판공초를 가는 차를 타고 있는 것을.
하지만 가는 길이 험난한 만큼 그 풍경도 기가 막혔다. 자연을 보고 설렌 적이 있는가? 판공초를 가는 길은 그 당시 내가 살면서 본 풍경 중에 가장 야생적이고 가장 아름다웠다.
우리가 머물게 된 판공초 메락 마을은 그 정점을 찍었다. 바다 같은 넓고 거대한 호수 하나도 놀라웠지만 그 뒤에 병풍처럼 자리 잡고 있는 히말라야, 초록과 노란빛이 섞인 너른 들판, 그리고 오로지 자연으로만 충족하고 충족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 모든 것들의 조화는 가히 완벽했다.
그 풍경을 보고 있자니 너무 아름다워 가슴이 미워졌다. 도리어 소박해서 수려한 자연. 그 전원적인 풍경에 나는 마음을 빼앗겼다. 이걸 보러 레에 왔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정말 보여주고 싶은 풍경. 여기라면 힘들어도 레를 다시 한번 올 의향이 있었다. 다만 그때는 버스가 아니라 비행기를 타고….
(안타까운 건 풍경이 사진에 잘 안 담긴다)
우리가 판공초에 온 시기는 이미 9월이라 호수 바람이 굉장히 추웠다. 저녁이 되자 급속도로 기온이 낮아졌다. 부부 언니는 레에서 구해 온 닭으로 백숙을 끓여주었다. 킹피셔와 백숙. 그리고 각자의 러브스토리. 끝내주는 판공초 메락 마을의 밤이 지나갔다.
그리고 우리는 닭은 너무 많이 산 나머지 3일 내내 닭만 먹었다고 한다. 닭백숙, 훈제 바베큐 치킨, 닭볶음탕...
레에 돌아와서 입에 닭냄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