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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디 Jan 05. 2021

11. 라다크의 심장, 레(Leh)

101일간의 좌충우돌 인도 네팔 여행기

아침에 일어나서 숙소의 창문을 열고 몸을 빼죽하니 내밀었다. 청명하게 높은 하늘, 차갑지만 상쾌한 공기, 크고 길죽한 나무들이 반겼다. 레였다. 드디어 다른 세계에 온 것이다.


얼른 숙소를 나와 레를 둘러보기로 했다. 정확히 레가 어떤 곳인지는 모르지만 베스트셀러 '오래된 미래'에 나온 곳이며 굉장히 척박한 땅이라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때묻지 않은 순수한 자연과 사람 들이 있는 곳이라는 것 정도도 추측할 수 있었다.


잔뜩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숙소를 빠져나왔다. 라다크스러운 돌로 된 건축물들과 돌담, 길죽한 나무들을 보며 새로운 세계에 당도한 기분을 느꼈다. 그런데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레의 메인 거리로 나왔다. 약간 이국적이긴 했지만 그저 평범한 상점과 도로가 보였다. 심지어 길을 걷다보니 삼성 핸드폰 매장까지 있는 게 아니던가. 완전한 오지, 순수한 마을 사람들을 상상했던 나는 생각보다 상업화된 모습에 놀랐고 실망했다.


하지만 곧바로 함부로 실망을 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이 오지가 세상에 개방된 것은 입소문을 타면서 나와 같은 여행자들의 유입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자본의 유입과 문명화로 인해 라다크 사람들의 생활 수준이 나아졌다면, 그들의 삶이 향상됐다면 한낱 여행자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곳을 평가절하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완전한 이상향을 꿈꿨던 나로선 김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고생길을 자처해서 찾아올만큼의 희귀한 모습이 아니었으니까. 설레게 할 무언가가를 발견하지 않을까하는 심정으로 레를 한 바퀴 돌았다. 하지만 좁은 골목골목에도 상점들은 기념품 가게들만 즐비했고 이제 레는 오지에서 관광지로 변모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때 레를 가는 휴게소에서 본 요셉 오빠를 마주쳤다.


이미 8년 전에 레를 방문한 경험이 있는 요셉 오빠 또한 현재 레의 모습에 적잖이 실망한 눈치였다. 실제로 요셉오빠가 8년 전에 묵었던 숙소가 너무 좋았어서 (말에 따르면 주인 아주머니의 인심도, 숙소의 뷰도 최고였다는데) 다시 찾아갔더니 그 당시 아무것도 모르던 얼굴은 한 순수한 아줌마는 이제 서너 채 딸린 게스트하우스 아니 거의 호텔급의 건물을 가진 사장님이 되어있었다고 했다. 아마도 8년 전과 동일한 건물이었던거 같은데, 몇 천 루피라는(좋은 숙소라면 응당 그렇긴 하지만 그 전의 가격과 비교하면) 말도 안되는 가격에 숙소를 운영하고 있어서 조용히 나왔단다.


세월이 흐르고 우리와 같은 관광객들이 유입되면서 이곳도 이곳 사람도 그에 맞게 변해버린 것이다. 누굴 탓할까. 과거에는 먹고 살기조차 어려웠던 척박한 땅이 이제는 돈이 모이는 땅이 되었다.


블로그에서 판공초 티셔츠를 직접 제작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옷 가게에 방문했다. 기분 전환 겸 판공초에 가기 위한 준비로 내가 원하는 색감으로 판공초 티셔츠를 맞추기로 했다. 사장에게 내 이니셜도 박고 싶다고 했더니 추가 금액을 내란다. 그래서 고심하다 그냥 됐다고 했다.


사장은 직원에게 내가 고른 남색 티셔츠를 건넸다. 어느새 사장은 안 보이고 직원이 보는 앞에서 미싱으로 내가 입을 옷을 작업했다. 대화나 해볼 요량으로 판공초를 가봤냐고 물었다. 그는 아직 가본 적 없다며 수줍게 일만 했다. 그 순간 미안한 감정을 느꼈다. 고작 몇키로 떨어진 곳을 몇 천키로미터 떨어진 곳에 사는 여행자는 가고 그는 가지 못하는 상황인 것 같아서.


그와는 별다른 대화를 이어가지 못하고 무난할 거 같은 남색 배경으로 고른 티셔츠에 판공초는 진한 푸른색, 노을진 하늘은 갈색으로 박아달라고 했다. 갈색은 이상하다고 안 된다고 노란색으로 박아준다고 하길래 우리는 주황색으로 합의봤다.


101일 인도 여행 동안 이 옷만 입고 다녔다는 후문.


* 정보 (2017년 기준)

올뷰 게스트하우스 1박 400루피 (당시 한화 7천 원)

올뷰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은 츤데레로 알려져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1박에 1천 루피를 받는 둥 의중을 알 수 없고 괴팍한 면모도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성수기 끝물에 가서인지 학생이라서였는지 굉장히 친절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묵게 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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