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일간의 좌충우돌 인도 네팔 여행기
짜이는 고난의 연속인 인도 여행에서 작은 위안이다. 레를 가는 도중에도 역시나 휴게소에서 한 잔의 뜨거운 짜이를 비웠다. 여행길에 지친 빈속을 달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식사를 하고서도 마시지 않으면 뭔가 빠뜨린 서운한 느낌이 들어서, 짜이를 홀짝인다.
홍차에 설탕과 우유, 그리고 인도 특유의 향신료(마살라)를 넣고 끓이는 인도식 밀크티 짜이는 자판기 커피 같다. 달짝지근한 달고나를 녹인 것 같은 맛과 색깔, 그리고 부담되지 않는 가격에 한잔의 여유와 사치를 누릴 수 있다는 점, 또 그래서 자꾸만 찾게 된다는 면에서.
인도의 국민차 짜이는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으면서 생겨났다. 원래 인도사람들은 차를 마시지 않았다. 식민지배 시절 홍차를 즐겨먹는 영국인들(동인도 회사)이 가격이 비싼 중국산 차를 대신해 찻잎을 인도에서 재배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인도의 차 문화가 생겨났다.
대량의 차(茶)가 인도에서 생산되었음에도 그 당시 차는 고급 기호식품이어서 정작 인도인들은 차를 즐길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낮은 품질의 찻잎을 구해 소량으로 차를 끓여마셨다. 인도인들은 맛이 떨어지는 차를 커버하기 위해 홍차에 우유와 설탕, 향신료를 넣고 오랜 시간 끓였는데 이것이 바로 짜이다. 여행자들이 아무 것도 모르고 마시는 이 달달한 짜이에는 인도인들의 아픈 역사가 숨어있는 셈이다.
덕분에 오늘날 인도는 세계 최대의 홍차 생산국이다. 우리가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즐링과 아쌈티가 바로 인도 다즐링과 아쌈 지역에서 재배되어 유명해진 홍차다. 다즐링을 가게 되면 우리나라 하동의 다원보다 몇 만 배 넓은 차밭 장관이 펼쳐진다.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삼십년간 식민통치를 받아도 이렇게 크고 작은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백여 년간 식민 지배를 받은 인도는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았을까.
영어가 공용어인 것만 해도 알 수 있다. 문화적으로 민족적으로 말살정책을 펼쳤던 일본과 달리 영국은 인도의 경제적 수탈에 집중해 우리나라와 상황이 완전히 같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말하고 싶은 건, 긴 식민지배의 시간이 우습게도 인도는 그들만의 나라 색이 굉장히 진한 나라라는 것이다.
길거리를 걷다보면 인도 여자들은 여전히 인도 전통복장 사리를 두르고 있고 힌두교 문화는 그들의 계급, 정신, 생활 등 뼛속까지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인도인들은 커리를 먹을 때 도구를 이용하지 않고 여전히 손을 이용해 조물조물 커리를 밥에 묻혀가며 먹는다.
하지만 이들의 문화가 그들 안에만 머무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커리는 일본을 통해 카레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도 친숙한 음식이 되었고, 명상과 호흡, 스트레칭이 결합된 복합적인 심신 수행법인 요가는 전 세계적으로 열풍이다. 커리, 요가, 사리, 헤나, 벵글 팔찌와 같은 장식품 등 의(衣)와 식(食)을 포함한 것들이 우리 삶 속에서 스며 들어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이만한 색을 가진 나라가 없다. 독보적인 나라다. 그것이 그들에게 때로는 독이 되기도 때로는 약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인도가 전 세계의 여행자들을 홀리며 유혹하고 있는 건 분명하다.
인도에 가면 'Coffee? or Chai?' 라는 물음을 수없이 들을 정도로 짜이는 커피만큼 아니 커피보다 훨씬 더 대중적이고 인도인들이 사랑하는 음료이다. 그들은 하루의 시작과 끝, 잠깐의 휴식 시간에도 모두 짜이를 홀짝이며 시간을 보낸다. 어쩌면 그들이 짜이를 마시는 것은 마치 힘든 표정을 감춘 채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살아가려는 또 하나의 의지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