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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디 May 13. 2022

17. 패닉의 네팔 카트만두 입성기

101일간의 좌충우돌 인도 네팔 여행기

다음 역으로 출발한 열차는 희한하게 엄청 느린 속도로 달렸다.



'뭐지 이상한데?'



출발한 게 아니라 곧 정차할 것 같았다. 혹시 미처 내리지 못한 어린 양을 위한 신의 가호인가. 잘하면 기차에서 뛰어내리는 것도 가능해보였다. 나를 둘러싼 검은 얼굴의 흰 눈동자들도 내가 어떻게 할지 지켜보느냐 함께 커졌다.



"여기서 뛰어도 괜찮아?"



인도인들은 '뛰어내려라 괜찮다', '지금이다'라는 말과 손짓을 표했다. 머뭇거리는새 기차 승강장이 끝나가고 있었다. 어떤 한 사람이 내 보조 가방 하나를 기차 밖으로 던졌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람, 눈이 휘둥그레졌다.  에라 모르겠다, 눈을 질끔 감고 뛰어내렸다. 무려 12kg에 육박하는 배낭을 멘 채로.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몸에 무게를 달고선 그 어떠한 곳에서 함부로 뛰어내리면 안 된다는 사실을. 내가 생각했던 가볍고 상쾌한 착지가 아닌 묵중하고 탁한 소리를 내며 털푸덕 맨 바닥 위에 떨어졌다.


엎어져 바닥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데 등 뒤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내게 뛰어내리라고 했던 인도인들이었다. 이런 괘씸한 자식들 같으니라고. 몸에 충격은 있었으나 수치심에 최대한 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다리라도 부러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내가 뛰어내린 곳은 다행히 원래 내려야하는 역과 멀지 않았다. 알고보니 인도에는 한 지역에 서로 조금 떨어진 두 개의 다른 기차역이 존재한다. 고락푸르가 그런 지역이었다. 기차가 느리게 달린 이유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또 다른 역에 도착하기 때문. 그러니까 나는 조금만 기다렸다면 제대로 된 기차역에서 내릴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놈의 인도인들아!! 너네가 몰라서 그랬다고 생각한다. 일부러 속일 사람들은 아니니까!



욱신거리는 몸을 이끌고 기차길 건너에 보이는 역무소로 갔다. 역무원들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짜이 한 잔씩 들고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곳에 있는 역무원에게 소나울리를 가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물었다. 그들은 소나울리 행 버스 타는 곳을 알려주었다. 다행히 도보 10분 거리였다. 행운이었다.


인사하고 가려는데 짜이 한 잔 마시고 가라고 했다. 바닥에 맨몸을 찧은 충격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직 가시지 않고 있었던 차에 반가웠다. 배낭을 내려놓고 따끈한 짜이를 홀짝이며 숨을 가다듬자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고맙다는 인사 후에 아까보다 한결 나은 기분으로 소나울리 행 버스를 타러 갔다.


소나울리 행 버스표


인도와 네팔을 접하는 지역 이름은 인도에서도 소나울리였고 네팔에서도 소나울리였다. 인도 소나울리에 도착한 나는 릭샤를 타고 네팔 소나울리로 건너갔다. 가이드북에는 소나울리 지역이 치한이 좋지 않아 조심해야 한다고 했지만 낮에는 딱히 위험을 느끼지 못했다. 단지 국경도시라 크나큰 덤프 트럭들이 다녀 교통이 혼잡하고 엄청난 흙먼지가 날렸다. 혼돈의 카오스 같은 느낌을 받긴 했다.


네팔 출입국사무소에서 입국신고서를 작성하고 한 달 짜리 네팔 도착 비자를 받았다. 감격의 눈물. 드디어 네팔이다. 하지만 아직 안도는 이르다. 가야할 목적지는 한참 남았다. 같이 이미그레이션에 들어온 일본 남자 여행객은 소나울리와 가까운 룸비니로 가지만, 나는 소나울리에서 7시간이나 걸리는 카트만두로 가야했다.


네팔 관광 비자 신청서



네팔에 도착하자마자 입국날에 샀던 인도 유심이 작동하지 않아 인터넷이 끊겼다. 가지고 있던 인도 루피는 몽땅 급 종이조각이 됐다. 전날부터 기차에 있어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한 우선 식당에 들어가 짐을 풀었다. 식당 주인의 도움을 받아 근처 ATM 기계에서 네팔 루피를 뽑았다. 네팔 루피가 손에 들어오니 마음도 푸근해졌다. 그럼 이제 식사를 시켜볼까? 굶주린 배를 채우고 식당 와이파이를 이용해 카트만두 가는 방법을 검색해보기로 했다.


입맛 없어... 의무감에 시킨 토스트


식당 주인은 옆에서 내게 지프 타고 카투만두를 가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버스보다 비싸서 거절했지만 버스를 타면 그는 끈질기게 권유했다. 버스는 훨씬 오래 걸린다는 이야기였다. 더이상 체력이 남아있지 않아 조금이라도 빨리 카트만두에 도착하고 싶었다. 이번에 식당 주인은 카트만두에 아는 숙소가 있는데 예약해줄까? 물었다. 나는 호갱으로 아는 걸까. 얼마를 커미션으로 받는 거야. 숙소는 뭔가 깨끗하지도 않은데 비쌀 것 같았다. 그는 아까처럼 다시 끈덕지게 숙소 이야기를 하며 이번에는 팸플릿을 건네주며 외내부 사진까지 보여줬다. 못미더웠지만 염두해 놓은 마땅한 곳도 없어 못 이기는 척 예약해 달라고 했다.



오후 3시, 카트만두 행 승합차에 탑승했다. 승합차 안에는 여행객 보다 현지인들이 많았다. 드디어 카트만두를 가는구나! 설렘은 잠시, 흙먼지가 운전석 앞 유리를 뿌옇게 가득 채울 정도로 정말 도로사정이 열악했다. 심지어 내부에도 매캐한 공기가 들어왔다. 다들 가지고 있는 천으로 코와 입을 가리기 바빴다. 하필 그날은 축제 기간이라 거리에는 차와 사람들로 가득 찼다. 도저히 차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날씨는 덥고 습하고 승합차 안은 점점 숨 쉬기가 힘들었다. 국경을 넘으며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내가 자초한 일인 데 누굴 탓해'.


7시간을 달린 끝에 기사는 도착했다는 소식을 알렸다. 시각을 보니 밤 11시었다. 내리라고 한 곳은 한 주차장 공터였다. 사방이 암흙에 아무 것도 없어서 여기가 카트만두인지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두려움이 엄습했다. 기운 없는 몸을 일으켜 사람들을 따라 떠밀리듯 내렸다. 숙소 직원이 픽업하기로 온 게 다행이었다.


'휴, 그 식당 주인 말 안 들었으면 국제 미아될 뻔했네'


하지만 10분, 15분이 지나도 아무도 나를 데리러 오지 않았다. 다른 이들은 벌써 이미 한 명씩 한 명씩 떠나 없었다. 공포가 몰려왔다. '큰일 났네. 인적도 없고 차도 끊긴 거 같은데 어떻게 숙소를 찾아가지? 게다가 나 지금 인터넷 유심도 없잖아!' 국경에서 유심이라도 살 걸 후회가 몰려왔다. 그때 남은 사람이 택시를 잡아줄까 물었다. 이 밤에 홀로 택시를 타는 것도 무서웠지만 그렇다고 아무도 없는 공터에 혼자 남아있다간 사람이든 짐승이든 먹이감이 될 것만 같았다.


"네 잡아주세요!"


택시는 몇 분 뒤 도착했고 기사에게 식당 주인이 준 팸플릿을 보여주면서 여기로 가달라고 했다.


'설마 없는 곳이라던가 이상한 데로 가진 않겠지?'


기사는 숙소로 보이는 건물에 도착했고 숙소 직원은 미안하다며 마중나와 있었다. 직원은 나 대신 택시 기사에게 요금을 지불했다. 방을 안내 받은 나는 씻고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도합 44시간 끝에 도착한 네팔 카트만두의 첫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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