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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준 Oct 04. 2020

전쟁도 막지 못한 유럽의 크리스마스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던 그들의 형제애..

(사진제공 : Wikimedia Commons)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다. 프랑스는 보통 크리스마스가 끼어있는 주간으로부터 2주간 바캉스가 시작되는데, 코로나 사태로 인해 요즘 고민이 많다. 며칠 전 읽은 기사에 따르면, 크리스마스 연휴를 안전하게 보내기 위해 연휴가 시작되기 전까지 2주 동안 봉쇄령을 내리는 게 좋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엉뚱한 의견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들이 크리스마스에 거는 기대치를 생각한다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주장이다. 이처럼 유럽인들에게 크리스마스는 1년 중 가장 중요한 날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코로나가 아무리 극성이라지만 크리스마스까지 방해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그런데 비슷한 사례가 100년 전에도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때는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다. 벨기에를 통과하여 들어온 독일군을 막기 위해 프랑스군은 영국군과 연합하여 북쪽 그리고 동쪽 지방에 전선을 형성하게 된다. 그런데 전쟁이 쉽사리 끝날 조짐을 보이지 않자, 양 진영은 휴전협정을 계획하기 시작한다. 국적을 떠나 모두에게 해당하는 공휴일엔 전쟁을 쉬어가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군인들은 크리스마스가 찾아오면 총을 내려놓고 전우들과 휴식을 만끽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로 인해 전선 여기저기에서 기이한 장면이 연출되기 시작한다. 1914년 영국군과 독일군이 맞서고 있는 전선에서는 양 진영이 파놓은 참호 위에 크리스마스트리가 심기는가 하면 그 모습을 보고, 상대 진영의 병사들이 찾아와 선물을 교환하는 이벤트가 벌어질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때로는 양 진영 간의 축구 경기가 펼쳐지기도 하고, 노랫소리도 종종 들렸다고 한다.

    이는 프랑스군이 머물고 있던 전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15년, 혹독한 겨울이 찾아오고 크리스마스를 앞둔 시점에 양국 사이에 휴전협정이 체결된다. 이렇게 전선을 지키던 병사들은 자신들이 파놓은 참호 속으로 들어가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되는데, 이때 자리를 찾지 못한 이들은 어떻게든 추위를 피하기 위해 적군의 참호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한 곳에 모인 양 진영의 병사들은 다음 신호가 떨어질 순간만을 기다리면서 추위를 견뎌내야 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로 총을 겨누던 사이였던 이들이 같은 참호에서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다툼이 일어날 법도 했지만 이들은 결코 서로를 적대시하지 않았다. 전쟁은 그들이 원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참호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며 그들은 돈독한 우정을 쌓아갈 수 있었다. 추울 땐 서로 끌어안으며 몸을 녹이곤 했고, 식량과 담배가 부족할 때에는, 서로 나누기도 했다. 이 모든 사건들이 당시 프랑스군에 소속되어 있었던 35세의 젊은 하사관 '루이 바르타스'의 일기장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일기장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적어두었다고 한다.


    누가 알겠니? 언젠가 사람들이 우리의 우정을 기리기 위해 기념비(monument)를 세울지. 우리는 서로를 죽여야만 하는 전쟁의 공포에 떨고 있었지. 하지만 이는 결코 우리가 원한게 아니야.


    이렇게 국가, 민족을 떠나 전쟁을 통해 꽃 피운 그들의 우정은 1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여운을 남기고 있다. 1974년 바르타스의 일기장이 세상에 공개되었고, 2005년에는 'Joyeux Noel(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이름으로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개봉되었다. 그리고 2014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지 100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아주 다양한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게 되는데, 그 일환으로서 세계대전의 격전지 중 하나였던 Neuilly Saint-Vaast의 중심에 'Monument des fraternisations('화해' 혹은 '형제가 되었음'의 기념비)'가 세워지게 된다. 결국 한 세기가 지나고 나서야, 바르타스의 예언이 적중한 것이다.

    그 밖에도 이 기념비 주변에는 세계대전을 거치며 희생당한 병사들의 묘지가 위치해 있다. 프랑스만 해도 500만 명에 가까운 희생자를 낳았던 전쟁인 만큼 묘비의 숫자는 셀 수 없이 많으며, 국적도 영국, 독일 등 굉장히 다양하다. 이렇게 많은 묘지를 사이에 두고 탄생한 장소이기에 이 기념비가 더욱더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 같다.


관련 홈페이지 : https://www.arraspaysdartois.com/en/remembrance/the-monument-to-the-fraternizations-a-symbol-of-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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